우리는 진실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이 극은 언어가 난무하지만 사실은 진실한 소통이 부재한 한 가족을 통해

'듣기'에 대한 의미있는  고찰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들을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될 것이다.

2010년 창단한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다섯번째 작품, 2014년 국내 초연.

2014.11.8-12.14/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150분/만14세~/일반석 50,000원/관람:11.23.일.3시 시민평가단 3rd

알리바이연대기로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긴 극단, 노네임씨어터컴퍼니.

확실히 서울연극인대상 시민평가단은 그래도 일반 초대보다는 훨씬 좋은 자리 주로 R석을 준다.ㅎ

항상 입냄새에 대한 걱정때문에 공연 전에 사탕 하나를 먹고 들어가는 나와 달리

별로 걱정 안하고 다니는지 모르는지 오른쪽 옆 좌석 관객입에서 나오는 괴로운 냄새가

나를 지나쳐 내 오른쪽 관객에게까지 전달이 되는지 인터미션때 친구와 그 괴로움을 토로한다 ㅋㅋ

손수건으로 코와 입 막고 봤다.

참, 빌리다운 옷차림이다. 턱까지도 감추는 터틀넥 쉐타.

지나치게 비판적이기만한 아버지, 지나치게 유쾌하기만한 어머니,

부모와 비슷하게 닮은 성격으로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면서 경제적 능력이 모자라 부모에게 얹혀사는 둘.

뭔가 문제인 듯 보여지는 빌리의 형 다니엘과 정서적으로 불안해보이는 누나 루쓰.

빌리가 세상을 넓혀간다면 다니엘은 거꾸로 세상을 좁혀가는 듯한 모습.

그래도 부딪히기만 하면 금속끼리 긁어대는 소리가 나듯 불편한 관계인 아버지와 다니엘의 관계보다는,

다니엘과 빌리의 관계는 괜찮아보인다. 둘의 서로에 대한 애정도. 하지만 빌리가...많이 예민하다.

환청증세를 겪고 있는 다니엘. 아마도 고학력실업자들이 겪는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같다.

실비아의 등장으로 극의 전과 후가 많이 달라진다.

왜...실비아는 하나같이 저렇게 임산부같은 옷을 입는 것일까..의상도 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텐데..

이 하루의 저녁식사초대. 실비아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설전들. 늘 이 가족의 모습이 그렇듯.

실비아는 구순법이 익숙치않아 따라가기 벅차하고 결국에는 수화의 한계성을 가지고 토론이 시작된다.

실비아는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점차 청력을 잃어가고 있는 중.

들을 수 있을 때 배웠던 피아노. 1막의 끝장면 실비아가 피아노로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고 모두 그녀를 둘러싸는데

무대 앞쪽으로 나와 그들과 떨어져 혼자 공허한 표정으로 선 빌리. 아주..강렬한 인상을 준 장면이다.

1,2막을 통털어 아무 대사도 없었던 이 짧은 순간이 뭔가 기대감을 던져준다.

시를 수화로 통역해 내고 나서, 시는 그렇다치고

감정을 다 말로(수화로) 표현할 수 없지 않느냐는 공격적 질문에 실비아가 이렇게 대답한다.

"감정을 말로 고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맞다. 우리는 사랑한다라는 흔한 말보다 더 나의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은 표현을 찾고자 몸부림친다.

때로는 하도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있고 나 자신조차 그 감정의 순도를 뭐라 정의할 수 없어 할 말을 잃을 때도 있다.

수많은 감정, 사람마다 다른 감정, 정도가 다른 감정, 순수한 감정, 복합적인 감정....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까.

빌리가 실비아를 만났을 때, "마음속에 전구가 켜진듯한 느낌"이라고 한 눈에 반한 것을 표현하는 부분이 사랑스럽다.

"어떤 사람의 단점이 그 사람의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언어밝힘증환자다운 아버지의 대사이다.

2막이 오르고 실비아와의 교제를 통해 수화를 배우고 경찰청 증거전문가라는 직업을 갖게되어

가장 학력이 짧음에도 입술을 읽는 능력이 있어서 가장 확실한 직업을 갖게된 빌리는 독립하여 실비아와 함께~!

그러나 그는 행간의 의미를 지나치게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꾸며내는 바람에 곤경에 처한다.

실비아는 늘 같은 얼굴 같은 말투 같은 대화가 맴도는 청각장애인들의 좁은 세상에 점점더 환멸을 느끼고

잃어가는 청력때문에 더욱더 괴로워한다. 반면 빌리는 수화를 배우게 되어 소리를 듣는 가족들 사이에서

이방인처럼 고립되어 살아온 집을 떠나 직업도 갖고 더 많은 사람과 만남을 통해 자신의 세상을 넓힌다.

빌리도 시간이 지나면 실비아처럼 느끼게 되는 걸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듯 보여진다. 마치 다니엘과 빌리처럼.

빌리를 빼앗아가지 말라고 말한 뒤에 왜 다니엘은 실비아에게 키스를 한 것일까?

두 사람의 격렬한 다툼이 대사하나없이 수화로 진행된다. 적잖이 숨막히는 순간이다.

자막이 없었다면 작가의 의도 100%였을까? 듣는 것보다 읽는 것이 훨씬 시간과 에너지면에서 손해이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 섞여 같이 살아가려면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가?

아니면 실비아라는 인물을 통해, 빌리의 이 껍데기뿐인 듯 보여지는 가족을 통해

이 시대에 늘상 주고받는 대화만이 늘어나고 진심과 공감조차 1초에 누를 수 있는 아이콘에 불과한

멸종위기에 처한 진실한 대화, 공감, 소통으로의 회귀를 부르짖는 것인가?

물음표가 늘어나고 있다. 좋지 않다...

마지막부분에서 더욱더 헷갈리게 한다. 헤어졌던 빌리와 실비아의 재회를 예고하는 빌리의 말.

한결 편안해진 듯 보여지는 빌리이지만, 가족이란 이 부족으로 진정 돌아오고 싶었던 것인지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세상을 겪고 사랑을 선택했던 그의 가족에 대한 증오가 사라졌는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라는 듯 빌리를 반기는 가족들의 모습도 이상하고...순간일지라도

마치 여태껏 보여지지 않던 가족애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지...? 이런 느낌이다.

잘 뻗어가던 한 직선 그래프가 중간부터 사방 팔방으로 화살표 방향 뒤죽박죽이 된 여러개의 직선이 된 느낌.

속마음과 수화내용을 알 수 있었던 자막이 가족을 상징하는 집 위에 비추어지는 구성도 좋았고

배우들의 몰입도, 연기도 훌륭해서 저절로 손이 꽉 움켜쥐어지는 답답하거나 긴장되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냈지만,

결과적으로 얘기하고자하는 작가의 메시지 전달은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긴가민가하는 느낌으로 결론이 난 듯해 조금 아쉽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의 빌리와 실비아는 가장 순수하게 감정을 드러내던 캐릭터들임에도 내면이 잘 읽혀지지 않았다.

또한 부족이라는 의미는 빌리의 가족에서 각자 자신의 집을 가진 결코 한 집에는 살지 않는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이 그저 주어진대로 모여사는 부족일 뿐. 가족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듯 보여져 씁쓸하기도 하다.

물론 현실도 그런 추세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이부분에서 내가 극을 잘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듬거리는 마지막씬의 다니엘을 포함해 빌리와 실비아, 젊은 연기자들의 연기가 돋보였다.

역시 수화로 연기하는 장면의 노력이 엿보이는 연기. 두 세계에서 갈등하고 가족,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연기.

"다수는 언제나 틀린거야" 크리스토퍼(빌리의 아버지, 언어밝힘증환자)

"내가 배우고 있는 것 중 제일 중요한 건 공감이라는 거야" 베스(빌리의 어머니, 추리소설작가)

"빌리를 빼앗아 가지 마요. 빌리를 나한테서 빼앗아 가지 말라고" 다니엘(빌리의 형, 언어에 관한 논문을 쓰는 중)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거는 귀찮잖아. 그게 우리 가족이야. 우린 다 이기적인 자아도취자들이거든"

루스(빌리의 누나, 오페라 가수 지망생)

"나는 이 가족의 마스코트에요. 그건 가족이 아니죠. 나는 내가 이 집 식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요." 빌리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것도 그다지 재미있지 않아요." 실비아(빌리의 청각장애인 여자친구)

데이킨 박은석보다는 못해도 히스토리보이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포스너 이재균님~!

어눌한 말투~~~다시 보아도 연기 좋다^^

주회:노네임씨어터컴퍼니, 예술의 전당 / 제작: 노네임씨어터컴퍼니 / 작가:Nina Raine / 번역;이인수

연출:박정희 / 출연: 남명렬(아버지), 남기애(어머니), 김준원(형), 방진의(누나), 이재균(빌리), 정운선(실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