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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뤄놨던 한국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고 있는 중이다. 8월 한 달 동안 [스텔라]를 시작으로 [불도저에 탄 소녀]까지, 무려 열 편의 2022년 개봉한 한국 영화를 봤고, 9월에도 [핸썸]을 시작으로 아직 수 편의 한국 영화를 더 봐야 한다. 대부분 극장에서 개봉을 하긴 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작은 영화들인데, 솔직히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는 않다. 특히 최근에 본 [불도저에 탄 소녀]와 [핸썸]은 영화를 보면서 한숨이 나올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두 영화에 대해서 쓴소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불도저에 탄 소녀] - 가난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대책 없이 사는 것의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감독 : 박이웅

주연 : 김혜윤, 박혁권, 오만석

이제 스무 살인 혜영(김혜윤)은 팔에 새긴 용 문신처럼 무엇 하나 두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어느 날 중국요리집을 운영하던 아버지, 본진(박혁권)이 자동차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피해자는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집이자 유일한 삶의 터전인 중국요리집은 2주 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다. 어린 동생 혜적과 둘만 남게 된 혜영은 본진의 사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고 사건의 진실을 캐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진실의 끝에는 중장비 회사 회장이자 보궐 선거에서 유력 후보자인 최영환(오만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진 것 하나 없는 혜영은 악으로 깡으로 최영환과 맞서 싸운다.

강자를 향한 약자의 반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영화에서는 꽤 자주 써먹는 소재이다. 관객들은 약자가 강자에게 통쾌하게 한방 먹이는 장면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우리가 영화를 즐기는 이유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불도저에 탄 소녀] 또한 그와 비슷한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주인공은 완벽한 약자이다. 이제 막 스무 살인 혜영의 유일한 보호자인 본진은 뇌사 상태가 되었고, 오히려 그녀는 어린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입장이 된다. 그녀의 상대는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최영환. 자,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최영환에게 통쾌한 한방을 먹일 것인가.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통쾌하긴커녕 오히려 답답하고 찝찝하다. 그 이유는 최영환과 본진의 관계에 있다.

8년 전 아내의 죽음으로 패인이 된 본진을 불쌍하게 여긴 최영환은 그에게 놀고 있던 땅에 중국요리집을 하도록 배려를 했다. 그 덕분에 본진은 8년간 어린 두 남매를 키웠고, 중국요리집 사장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하지만 이제 최영환은 본진의 중국요리집을 사촌에게 맡기려 한다. 본진에게 그만 가게를 비워 달라고 한 것이다. [불도저에 탄 소녀]에서 모든 사건의 원인은 세 들어서 중국요리집을 운영했으면서도 그곳이 자신이 것인 양 생각한 본진의 착각에 있다.

물론 최영환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본진에게 충분한 권리금을 줬어야 했다. 하지만 2년 전 1층짜리 중국요리집을 2층에서 리모델링을 하며 5억 원의 빚을 진 본진 역시 잘 한 것도 없다. 누가 세 들어서 장사하는 건물에 자비를 들여서 대공사를 한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니 권리금으로 5억을 내놓으라면 본진의 주장이 최영환에게 먹힐 리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본진은 식칼을 들고 최영환을 찾아간다. 그래 놓고는 2년만 더 시간을 달라며 협박 같은 부탁을 한다. 그러한 협박이 잘 먹히지 않자 칼을 휘둘러 여직원에게 상처를 입혔고, 최영환의 차를 훔쳐 달아나다가 음주운전 상태에서 차 사고를 낸다. 영화를 보며 '뭐 저런 대책 없는 인간이 다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계획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8년 동안 돈을 열심히 모아서 내 가게를 낼 생각을 했어야 했다. 거액을 들여서 남의 가게 건물을 리모델링할 생각을 하지 말고...

대책이 없기는 본진의 딸인 혜영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마치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환자 같다. 사춘기가 지났어도 오래전에 지났을 나이이지만 여전히 사춘기 반항아 같은 행동만 한다. 특히 그녀가 최영환에 맞서는 장면에서는 도저히 그녀의 편을 들어 줄 수가 없다. 석유를 들고 최영환의 집에 쳐들어가서 불을 지리거나, 영화 후반부에는 영화의 제목처럼 불도저에 올라타서는 최영환의 집을 부수려 한다. 이건 명백한 범죄가 아닌가? 만약 최영환이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감옥에 갔어도 할 말이 없다. 그냥 그 아빠에 그 딸이다.

박이웅 감독은 강자를 향한 약자의 속 시원한 반란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전혀 속 시원하지도 않았다.) 혜영이 탄 불도저에 의해 본진의 중국요리집은 순식간에 무너지지만 최영환의 집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 장면을 통해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강자와 약자의 처지를 비유한다. 약자는 쉽게 무너질 수가 있지만, 강자는 그 어떤 강력한 공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영화에서는 나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러한 난리통 속에서도 최영환은 보궐선거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사회 고발성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박이웅 감독이 [불도저에 탄 소녀]를 사회 고발성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면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고통받는 약자도 많은데, 본진과 혜영은 그렇게 고통받는 약자라기보다는 그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대책 없이 막 사는 인간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본진의 사고도 커플이 무단 횡단을 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본진의 음주 운전에도 분명 책임이 있다. 최영환은 장사가 잘 되는 본진의 중국요리집을 빼앗으려는 의도가 있긴 했지만 8년 동안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오히려 리모델링 공사를 한 본진의 멍청함을 두둔할 수도 없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부자보다 더욱 치밀하게 대책을 세우고 준비를 해야 한다. 칼 들고, 석유 뿌리고, 불도저를 타고 깽판을 부릴 것이 아니라. 그나저나 본진이 남긴 거액의 생명보험금을 탄 혜영은 과연 예전과는 달리 치밀하게 대책을 세우며 잘 살게 될까? 혜적을 위해서라도 제발 철 좀 들기를...

[핸썸] - 못생긴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무능력의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감독 : 김동욱

주연 : 신현준, 박솔미

착하고 순한 성격과는 달리 얼굴만 보면 조폭에 더 어울리는 경찰 노미남(신현준)은 경찰서의 사고뭉치이다. 그러던 그가 동료 형사의 싸움을 말리다가 사고를 당해 수술 후 한 달 만에 깨어 난다. 그런데 깨어난 미남은 인지 장애를 겪으며 자신의 얼굴이 세계 최고의 미남이 되었다고 착각한다. 미남의 나르시시즘은 점점 심각해지고, 그로 인하여 자꾸 수사에 방해가 되자 국내 최대 마약 조직 수사를 앞두고 강력계 반장은 그를 변두리 미용실 잠입 수사로 떨어뜨려 놓는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곳의 원장 아리(박솔미)가 바로 마약 조직의 범죄를 신고한 내부 고발자였으니... 과연 미남은 마약 조직을 소탕하고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

못생긴 남자가 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후 자신의 얼굴이 잘생겨졌다고 착각한다는 내용...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바로 2018년 국내에 개봉했던 에이미 슈머 주연이 코미디 영화 [아이 필 프리티]의 설정이다. [핸썸]은 주인공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고, 주인공의 직업도 강력계 형사로 설정하면서 [아이 필 프리티]의 변형한다. 문제는 주인공의 성별, 직업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핸썸]은 코미디 영화이면서 전혀 웃기지 않다. 그저 신현준의 코믹 연기에 기대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그러한 시도가 먹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먹히질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무능력이다. 미남은 자신의 못생긴 얼굴 때문에 콤플렉스를 겪는다. 하지만 그가 경찰서 내 사고뭉치가 된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조직폭력배의 마약 거래 현장에 위장 투입되어 증거 사진을 찍으라고 했더니 실수로 셀카나 실컷 찍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후 이번엔 다단계 사기꾼 검거 작전을 망치는 장면에서 분노까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이러니 영화 속 강력계 반장은 오죽할까.

미남이 변두리 미용실에 위장 잠입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미남의 활약을 보여 준다. 하지만 미남의 활약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아리와의 썸을 타는 것뿐이다. 때마침 아리가 마약 조직에 염증을 느끼고 내부 고발을 해서 결과적으로 미남이 마약 조직 일망타진이라는 공을 세우지만, 이걸 미남이 잘 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이니 다행이지, 실제로 저런 경찰이 있다면 대한민국 경찰을 어떻게 믿고 치안을 맡기겠는가? 코미디 영화를 보며 내 일상에 공포가 느껴지긴 또 처음이다.

[핸썸]에서 심각하게 무능력한 것은 비단 미남뿐만이 아니다. 감독인 김동욱의 무능력은 미남을 능가한다. 영화 초반 미남이 사고를 당하는 장면. 이거 극의 진행을 바꾸는 중요한 장면인데 김동욱 감독은 아무런 임팩트도 없이 설렁설렁 흘려보낸다. [아이 필 프리티]에서 르네(에이미 슈머)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장면은 전혀 안 중요하게 연출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바로 무능력.

미남의 직업이 강력계 형사이다 보니 [핸썸]은 수사극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 속 강력 범죄 수사 장면은 무슨 아이들 장난 같다. 조폭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다. 코미디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이다. 미남이 얼떨결에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은 더욱더 어이가 없다. 그냥 김동욱 감독이 영화를 대충 만들으려고 대놓고 수작질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주인공과 감독이 함께 무능력하니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한 박솔미의 고군분투로도 영화적 재미는 빵점에 가깝다.

현대 사회에서 외모 콤플렉스는 꽤 중요한 이슈이다. 요즘처럼 다양한 개인 미디어가 난무하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를 자의적, 타의적으로 평가받게 되고, 그렇게 평가된 외모가 곧 능력이 되어 버린다. [핸썸]은 그러한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사회 고발성 코미디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자신 없으면 [아이 필 프리티]를 참고해도 된다. 그런데 이동욱 감독은 외모 콤플렉스를 꺼내 놓고 신현준의 바보 연기로 관객을 웃으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맨발의 기봉이 2]를 찍을 것이지, 포커스를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