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이렇게 됐을까 ? "

단돈 300만원으로 제작했던 연출 데뷔작 <가시꽃>을 통해 호평을 받으면서 단숨에 주목받는 신예 감독으로 떠오른 '이돈구' 감독의 두번째 장편인 <현기증> 역시 전편과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발생했던 치명적인 실수에서 기인하여 시작되는 가족의 해체와 파국,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드라마가 잔인하리만큼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었던 <현기증>, 정말 '현기증'이 날만큼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아기가 태어나면서 행복에 젖어들었던 가족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벌어진 사고로 인해 그 행복은 깨어지고 맙니다

< ▲ 단란하고 행복했던 이 가족들 >

'영희'(도지원)와 '상호'(송일국) 부부 사이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아기가 태어나면서 더없는 행복에 젖어드는 영희의 어머니 '순임'(김영애)과 영희의 동생 '꽃잎'(김소은) 그리고 부부.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순임'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아기가 죽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고 만 것이었는데, 그 사고는 순임의 치매 증상으로부터 기인한 비극적인 것이었지만 그 사고 이후로 이 가족들에게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집니다. 이처럼 <현기증>이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돈구 감독이 다소 극단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이런 설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가족에게든 벌어질 수 있는 '실수'와 그로 인해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였던 것인데 때문에 다분히 현실적으로 보이는 영화이기도 했었습니다.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가족, 그들 모두에게 부여되고 있는 드라마

< ▲ 하지만 치명적인 사고로 인해 이 가족은 빠르게 해체됩니다 >

그리고 이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에게 모두 드라마를 부여하고 있으면서 그 사건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리고 가족이지만 모르고 있던 숨겨진 이야기까지 버무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끔찍한 실수로 인해 단란하고 행복했던 가족이 찢어지고 가족들이 고통받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옥같은 하루 하루를 보냈던 어머니 '순임', 유산을 한번 했었기 때문에 더더욱 소중했던 아기를 잃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참담한 슬픔과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던 '영희', 그런 아내를 바라보면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위로'밖에 없었지만 역시 지독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던 '상호', 그리고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힘든 상황을 결코 이야기할 수 없었고 때문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오롯이 홀로 그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던 '꽃잎'까지, 네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이 됩니다. 그 행복했던 가족이 해체되는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죠.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했던 '순임'을 정말 괴물같은 연기로 표현한 김영애씨

때문에 '순임'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그녀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 ▲ 엄청난 감정의 소모가 있었던 인물 '순임'.

김영애씨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연기로 그녀를 소화해냈습니다 >

특히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순임'을 연기한 김영애씨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치매' 증상에서 비롯되어 일어나버린 이 엄청난 사고로 인해 지독한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럴수록 그녀의 증세는 더더욱 심해지고 급기야 망상에 시달리며 현실감을 잃어갑니다. 그야말로 끔찍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그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고 실수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도 없었는데 이처럼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순임'을 김영애씨는 정말 괴물같은 연기로 소화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빛, 파르라니 떨리는 입술과 손, 그리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실려 있는 감정들 등등 그야말로 흠잡을 수 없을만큼 멋진 연기를 선보여주신 김영애씨 덕분에 이 작품이 더더욱 인상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구요.

현 시대의 가족이 갖고 있을 문제들을 담아내는 영화 현기증

문제 발견후 '봉합'과 '화해'를 향하는 보통의 가족 영화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 ▲ 학교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알릴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홀로 감당해야했던 '꽃잎'(김소은) >

그 어떤 가족이나 약간의 '갈등'은 갖고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실제로 들이닥쳤을때 어떻게 그 문제에 대응하는가는 천차 만별의 모습이기도 하겠죠. <현기증>이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는 그 중 하나, 혹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일부에 불과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현 시대의 가족이 갖고 있을 다양한 문제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영화'들의 경우엔 이러한 문제들이 발견되고 난 뒤에 '봉합'과 '화해'를 향해 가고 그 마지막에는 '감동'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과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하고 있는 이 작품 <현기증>은 그래서 더 인상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단 두편의 장편을 연출했지만 확실한 스타일이 느껴지기도 하는 '이돈구' 감독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