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같은 소리 하지 마라
(출처 : '남다른 감자탕' 페이스북)
“어서 오십시오. 2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기다릴래? 아니 딴 데 갈까?”
“기다리지 뭐. 사람들이 이렇게 줄을 설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
내 인생의 첫 감자탕 가게는 개업 첫날부터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손님들이 가게 안을 꽉 채운 걸로도 모자라 문밖에서 대기까지 하고 있었다. 처음 며칠간은 소위 말하는 개업발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얏! 완전 대박인데? 가게 자리가 좋은가?”
“자리가 좋긴, 이전 주인이 여기서 닭갈비집을 했는데, 그땐 파리만 날렸대.”
“그래? 그럼 저 녀석이 운이 트인 모양이네."
하루 10만 원도 못 팔던 가게를 인수해 하루 30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대박가게를 만들어놨으니 나 역시 ‘운’말고는 딱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 ‘운’이 전부가 아님도 알고 있었다.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시작한 일을 어찌 운에만 기대겠는가.
점포를 계약한 이후부터 남들보다 더 열심히 뛰어다녔다. 당시 나는 감자탕 점포의 개인 창업이 아닌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선택했다. 제대로 된 장사 경험도 없는데다 음식장사라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유심히 관찰을 했던 것이 전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대신 프랜차이즈 본사가 제공하는 정보나 교육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나의 땀을 보탤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았고, 수고와 열정을 아끼지 않으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감자탕 장사를 시작했던 17년 전엔 지금처럼 전문성을 갖춘 프랜차이즈 외식 기업이 많지 않았다. 내가 선택했던 브랜드 역시 창업자를 위한 이렇다 할 교육 체계가 없었다. 가게를 개업하기 며칠 전 본사 직영점에 들러 반나절 주방 교육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필요에 따라 교육을 더 받아도 됐지만 대부분은 반나절이면 충분하다며 다시 오지 않았다. ‘반나절’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교육 시간에 의구심을 가진 나와 아내는 최소 일주일은 교육을 받아보자며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아니, 이 양반들 또 왔네. 별로 배울 것도 없는데 뭣 하러 계속 와요?”
아내와 내가 며칠째 계속 나와서 이것저것을 살피고 물으니 직원들이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별도의 교육장 없이 실제 영업을 하는 직영점 주방에서 교육이 이뤄졌으니 일하는 데 방해가 됐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린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기에 꿋꿋하게 주방을 지켰다. 대신 갈 때마다 빵, 아이스크림 등 간식거리를 잔뜩 사들고 갔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고 바쁠 때는 이걸 이렇게 하는 게 좋아요.”
하루도 빠짐없이 조공한 간식의 힘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의 정성에 감동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침내 주방 고수들이 그들만의 노하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의 잘한 점은 배워서 그대로 따라했고, 부족한 점은 반드시 개선하고 채워 넣었다.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것은 장사 노하우를 배울 때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내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먼지를 뒤집어쓰며 조수 역할을 했고, 짬이 나는 대로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전단지를 돌렸다. 개업 이후에도 노력은 쭉 이어졌다. 24시간 영업을 하는지라 직원들은 주간반과 야간반으로 나눠 출근을 했지만 아내와 나는 20시간 넘게 가게를 지켰다. 우리는 홀과 주방을 쉴 새 없이 오가며 그릇을 치우고 음식을 내어가고, 청소를 하고 계산을 하면서도 손님이 들어오고 나갈 때 인사 한 번 놓치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1억 2천만 원에 달하는 빚을 모두 갚기까지 그렇게 4달을 악과 깡으로 버텼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내가 이룬 성과들에 대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흘린 땀방울을 기억하는데 어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겠는가? 그런 무책임한 말만을 믿고 하염없이 ‘운’만을 기다리는 아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분명하게 말해줘야 한다. “나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했다!”라고 말이다. 내게 운을 보낸 것은 하늘일지 몰라도 그 운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이고 꽉 움켜쥐고 지킨 것은 분명 나의 정직한 땀방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