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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카는 디지털 사상가다. 그가 쓴 책들은 최신 기술에 대한 의구심을 전제하고 있다. 2010년에 출간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한국어판 부제는 `인터넷이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그는 인터넷 검색이 깊이 없는 정보와 지식을 추구하면서 사람들의 사고 습관까지 경박하게 바꾸어놓고 있다고 주장 했다. 이같은 주장은 그리 색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시대의 부작용을 걱정하며 그것을 문제삼아 왔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로 전자 기기에 대한 중독은 빠르게 진화해 왔다. 컴퓨터, 게임, 인터넷, 스마트폰과 중독이란 단어는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니콜라스 카는 최근작 <유리감옥>에서 한뼘 더 나아간다. 그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이젠 `자동화'다.
그것은 최신 개인용 정보 기기인 스마트폰을 넘어서 정보기술과 첨단산업에서 적용되고 있는 모든 자동화 기술을 총칭한다. 개인과 사회 구조, 그리고 산업과 문명을 뜯어 고치는 이런 기술이 인간에게 결코 유익만을 건네주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 구체적 사례로 하나씩 분석해 나간다. 최근 자동화 부분에서 가장 큰 진전을 이룬 것은 자동차와 비행기다. 공장 자동화도 좋은 예이긴 하지만 니콜라스 카는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자동차와 비행기에 적용된 자동화 사례의 문제부터 짚고 나간다.
클러치가 필요없는 `오토기어'의 자동차는 대중화된지 오래다. 저자는 어린 시절 운전면허를 따고 기계치 였던 자신이 수동기어에 익숙해져가는 과정을 아릿한 추억처럼 묘사한다. 예전 자동차 운전자들은 면허를 딴 것만으론 운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수동 기어의 조작을 통해 자동차와 내가 하나가 되는 오랜 수련을 거쳤다. 요즘은 수동기어를 가진 자동차는 보험사로부터 패널티를 먹는다. 수동 기어가 운전을 방해한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하여, 사람들은 운전을 좀더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여객기 조종사들은 이착륙 하는 몇 분 간을 제외하곤 조종간을 잡을 일이 없다. 컴퓨터의 제어로 자동화된 첨단비행기가 출시된 이후 비행 자동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항공기 제조 회사인 에어버스 같은 경우, 비행기를 제작하는 철학이 이를 말해 준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조종사가 필요없는 여객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많은 기계적 계기판들은 사라지고 컴퓨터 모니터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조종사가 할 일은 조종간을 잡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에 다양한 자료를 입력하는 것이 전부다. 모든 것은 컴퓨터가 통제한다. 비행기의 역사는 비행인력 감축의 역사다. 초기 비행기에는 항공사, 무선 통신사, 항공 기관사, 그리고 조종사 두 명 등 고임금 전문가들이 탑승해야 했다. 비행 자동화는 결국 `인간 전문가' 들을 기계로 대체해 버렸다. 그런데, 이같은 자동차와 항공기의 자동화는 사람들을 편리함과 안전의 유토피아로 인도했을까.
니콜라스 카는 자동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편리함과 더불어 적지 않은 해악을 자동화가 건네주기 때문이다. 구글이 만들고 있다는 무인자동차에서 인간은 한 명의 승객으로 전락한다. 그는 운전중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개입할 수 없다. 자동화의 기술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윤리적인 문제들도 발생한다. 위험시에 핸들을 어떻게 꺽는가, 라는 문제는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설계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누구를 희생시키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신 자동항법 기술이 적용된 여객기에서 최근 일어난 항공기 사고는 대부분 조종사의 실수나 조종 미숙으로 일어났다. 지나친 자동화가 조종사들이 조종간을 잡는 시간을 줄여놓는 바람에 자동 시스템이 제어할 수 없는 위기 순간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산업 부분에서 자동화는 어떤 의미를 내포할까. 오늘날 공장 자동화는 사람들이 해야 할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기계로 대체하며 사람들에게 여가와 안전이란 보상을 건네주고 있다. 그런데, 공장 자동화에 앞장서는 것은 노동자들이 아닌 경영자들이란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니콜라스 카에 따르면, 그것은 경영자들이 인간 노동자들보다 기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 근로자들과 달리 기계는 자본주의자들의 투자 이익에 대해 일정한 몫을 요구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병가를 내거나, 유급 휴가를 바라거나, 매년 연봉 인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노동은 발전이 해결해주는 문제다."(61쪽)
자동화를 전체적 맥락으로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똑똑한 인간들의 기술로 발명된 자동화라는 마술이 인간을 `퇴화'시킨다는 역설로 이어진다. 뇌는 게을러지고 사람들은 유리로 표상되는 자동 기계에 의존한다. 인간이 해야 할 많은 일을 기계들이 대신해 주고 있다. 기계들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으며 동시에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자극 받을 때 활성화 된다. 자동화는 뇌가 자극 받는 피곤함을 줄여 준다. 캐나다 북부 이글루릭 섬에 사는 이누이트 족은 4천년간 섬에 있는 집을 나와 순록과 다른 사냥감을 찾기 위해 수십 마일 거리의 얼음과 툰드라를 횡단해왔다. 그들은 얼음으로 뒤덮혀 있어 이정표가 없는 척박한 지형에서도 놀라운 장거리 여행 기술을 대대로 익혔으며 전수해 왔다. 지금은 어떤가. GPS 수신기가 내장된 스마트 기기에 의존하면서 이누이트족은 그들이 가진 전통적인 길찾기 능력을 다 잃어버렸다. 이제 그들은 기계가 고장나면 사냥을 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 컴퓨터 스크린이라는 유리감옥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쇠약해질 뿐이다. 대신에 세상은 훨씬 의미가 없어진다. 지구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거주자인 인간은 더 능률적으로 변한 세상에 적응하면서 세상이 인간에게 준 것을 지각할 수 없는 실정이 되고 있다. 위성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젊은 이누이트 족처럼 우리는 눈을 가리고 여행한다. 그 결과 자연과 문화가 우리에게 행동하고 지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가버리면서 우리는 `존재론적 궁핍'을 경험한다. " 323쪽, 니콜라스 카 <유리 감옥>
최근 유럽 우주국(esa)이 쏘아올린 로제타 호가 태양과 목성 주위를 공전하는 추류모프 게라시멘코 혜성(P67)에 무사히 착륙했다. 마침 영화 `인터스텔라'을 본 직후였지만 사실 영화보다 더 짜릿한 우주 쇼에 홀딱 빠진 며칠이었다. 10년간 총알보다 17배 빠른 혜성을 쫓아가 중력이 지구의 10만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혜성 표면에 착륙하는 순간을 인터넷 생중계로 지켜보는 것은 esa의 연구원들의 표정과 해설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 경험이었다. 과학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불가능의 영역들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존재한다. 스마트 폰의 다양한 기능에 놀란 사람들은 손안의 컴퓨터에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구부정한 자세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은 중독 혹은 목디스크의 위험을 경고한다.
<유리 감옥>이란 극단적인 표현으로 저자인 니콜라스 카는 자동화 시대 스크린의 부작용을 고발한다. <논어>에서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를 가르친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핵무기 개발에 과학적 이론을 제공한 아인슈타인은 그것이 사용되는 것을 지겨본 후 `후회'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과학적 진보는 그 자체가 절대 진리가 아니다. 견제받지 못한 권력은 부패로 나아가듯이, 통제받지 못한 기술은 인간을 파괴하는 법이다. 자동화가 편리와 진보라는 가면 뒤에서 인간의 활동적인 영혼을 무기력하게 한다면 어떤 달콤한 기술에도 `저항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동화로 세상을 점령하려는 자들이 `노동은 발전이 해결해 주는 문제'로 치부하는 경영자들이란 것을 안다면 이같은 저항이 21세기의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 운동)의 성격도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그러나,
상당히 유려한 문체로 쓰여졌을 원문이 번역의 투박함 때문에 손상된 것은 아쉽다. 읽는 맛을 떨어뜨리는 이 책의 번역 때문에 읽는 동안 상당히 지루했음을 밝힌다. 자동화를 생활속에서 깊숙이 즐기고 있는 내게 아직 부작용은 크게 와닿지 않는 점도 있다. 디지털 비평가 답게 니콜라스 카는 자동화라는 문제의식을 염두해 두고 그걸 집중해 파고들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주로 일정 관리와 전화, 뉴스 검색 등이 전부다.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진 않는다. 내 자동차의 풍부한 옵션은 언제나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미래에 무인 자동차가 나온다면 기계에 내 목숨을 맡기진 않을 것 같다. 장롱 면허 소지자인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듯이^^ 이미 나는 저자의 우려가 있기 전부터 기계를 믿지 못하거나 자동화에 저항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판단력 혹은 분별력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