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꾸준히 해 오다 보면 딱 하나의 문제를 안게 된다. 책을 둘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 수입이 없던 학생 시절에야 동네며 학교 할 것 없이 생활 반경에 있는 도서관에 출석 도장을 찍었지만, 월급쟁이가 된 이후로는 책 10만 원어치를 한 번에 사는 데 쓰는 로망을 실현하기 바빴다. 자연스레 책들이 쌓이고 새 책장을 연이어 채워나가며 책등과 높이를 요리조리 맞추는 정리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방 하나의 삼면을 채우고 거실 벽까지 책장으로 바꾼 후, 즐거움은 더 큰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어디에 놓지?

이런 마당에 '장서의 괴로움'은 아이러니하게 또 한 권의 책으로써 장서의 괴로움을 더한다. 이 책에서는 장서의 괴로움에 허덕이는 독서가이자 헌책 마니아로, 책에 관한 글들을 쓰며 사는 작가 오카자키 다케시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본인 생활 속 고충은 물론, 메이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주로 일본의 장서가들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저자와 등장인물들의 '괴로움'은 내 것과 비슷한 부류이나 비교될 수준은 아니었다. 너무 책이 많아 집이 무너지고 책들이 불에 타도 오히려 옮기기 쉬워졌다며 안도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어떤 장서가가 '같은 병을 앓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언급되니, 이쯤 하면 병인 게 맞겠다.

장서의 괴로움은 한정된 공간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포기하기가 쉬워지는 작은 집에서보다도 적당히 공간의 여유가 있는 집에서 이런 괴로움이 심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 듯하다. 아무리 넓은 집, 용량이 큰 책장을 갖춘다 해도 책을 들이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책의 가치를 얼마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와 관련해서도 문제다. 책을 모으고 수집하는 이들은 그저 책이 좋아 읽다 보니 쌓이는 내 경우와 차원이 다르더라. 읽는 속도를 능가해서 수집에 의미를 두고 사 들이게 되니 속도가 엄청날 뿐 아니라, 집착이 생겨 무서워져버리는 것이다.

결국 장서의 괴로움에 가장 결정적인 건 물질에 대한 의미 부여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소유욕으로 지니게 되는 것이 문제다. 사랑하면 곁에 두고 싶고, 보고 싶은 게 당연하다. 장서의 괴로움에 허덕이는 이들을 보면 박애주의자 같은 느낌이 든다. 평범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책 몇 권을 중히 여기거나 책 자체에 그런 어마어마한 애정을 쏟진 않는다. 생활에서 적당히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며 소수의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 보통 사람처럼. 하지만 훨씬 많은 사람의 삶을 모두 보살피려 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겪기 어려운 풍파 속에 살기도 한다. 장서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 속 누군가의 가이드에서 500권 이하의 책이 적절하다고 한다. 곁에 두고 싶은 책만 추려내고 나머지는 처분하는 것이다. 추려진 책의 목록은 독서를 해 나가며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이상적인 모델. 내가 내년쯤 계획된 이사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게 이런 것이긴 한데, 500권보다 적게 골라내야 하는 상황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거나 청첩장 같은 초대장을 보낼 때 누구까지 선 안으로 들여올지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진 모든 책을 살펴야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적잖은 공수가 들 것 같다. 실제로 이런 가이드를 소개하는 이 책의 저자 역시 자신은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각 장마다 장서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교훈을 안내하는데 보통의 장서가라면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다. 저자만큼 고충이 심한 사람에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지나친 애정과 소유욕은 역시 무서운 것이다.

책을 처분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용기'니까. (34쪽)

책이 느는데도 책장을 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책장 살 돈이 있으면 책을 샀기 때문이다. (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