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천은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필자는 60년 쥐띠라 58년 개띠의 명성에 못 미친다. 디지털세대를 위해 58년 개띠의 명성을 좀 소개한다. 1974년 고교 평준화에 의거 은행알 돌려 중학교에 진학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요새야 개나 소나 국가 정책에 옆구리차지만 당시는 바로 안기부 행이라 전부 조용했다. 맞으면 나만 손해라. 이른바 뺑뺑이 1세대다. 명문고 갈려고 열심히 공부해 봐야 나무아비타불.

로또복권은 그나마 자신이 숫자 써넣어 행운을 기대하지만 이 뺑뺑이는 자기 의사와 전혀 상관없다. 만날 여차 친구 쫓아다니던 친구나 만날 도서관에서 궁둥이 짓무르도록 공부하던 친구나 똑같다는 야그다. 그럼 공부할 필요 없다. 그 옛날 박통의 외아들이 58년 개띠라 그랬다나 뭐라나. 58년 개띠의 비애다.

그래 58년 개띠들은 수학보다는 철학을 선호한다. 그만큼 도인도 많다. 김개천의 휴대폰 번호는 1003이다. 10월 개천절에 태어나 이름도 開天이고. 하늘을 연다. 숙명. 생각해 보라. 하늘을 열려면 얼마나 힘들지. 아직도 열고 있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한 김개천은 특례보충역으로 잘나가던 삼환기업에 취직. 군복무대신 5년동안 봉사해야된다. 중동으로 날아간다. 여기서 탄탄한 기초가 다져진다. 미국 최대의 엔지니어링 그룹 SOM. 그 유명한 솜이 설계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National Commercial Bank의 실시설계에 참여. 평당 건축비 수천만원짜리 하이테크다. 아 참, 여의도 63빌딩이나 역삼동 지에스 타워의 설계자도 솜이다.

사막 열사의 나라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9시까지 도면 그린다. 아, 컴퓨터 없던 시절. 디지털세대는 생소하겠지만 티자에 삼각자 들고 연필깍아가면서 하이테크를 제대로 배운다. 손가락에서 쥐나던 시절의 야그.

2천년 10월 리노베이션 의뢰가 들어온다. 직원이 포트포리오를 보여주었지만 퇴짜맞고. 다른 디자이너의 그림을 토대로 부분 철거가 시작된다. 2001년 다시 연락이 온다. 이제야 김개천은 현장 방문. 15년 된 2층의 조적조. 슬래브를 마구 쓸어낸 상태. 붕괴할 위험이 농후함. 내가 설계 안해도 좋다. 이 건물은 새로 지어야 된다.

평창동 산동네의 9각형 250평 대지 지적도 위에 트레이싱지 덮고 붓으로 스케치한다. 그리드는 생각을 한정한다…….자유로운 생각이 좋다. 그의 붓 필치는 수묵화에 가깝다. 난을 치듯이 라인을 친다. 그리지 않는다. 친다. 그의 선은 기능을 구분하기보다 느낌을 구획하는 획이다. 더 어려워 졌나.

자연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 붙을까. 조선시대에 선혜청. 지금으로 말하면 농수산부의 쌀 창고가 있던 곳이라 평창동이다. 피아노 건반 모양의 대문을 열고 계단을 한 참 올라가야 된다. 눈을 감고 오르자. 후동석을 밟으면서 등산이다. 그의 건축은 내부를 먼저 들여다봐야 된다. 왜냐고! 껍데기엔 관심이 없으니까.

평면은 세 칸으로 구분된다. 먼저 4.5미터의 첫 칸은 메이저 스페이스. 남향이다. 가운데 2.2미터 칸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움직임의 공간. 마지막 3.6미터 칸은 주방을 비롯한 가사노동 공간. 현관 들어서면 좌측으로 파석이 깔린 돌의 공간. 정면에 대나무가 심어진 중정. 안뜰이다. 정지된 수묵화. 하늘로 열린 공간. 이름이 개천이라 자꾸 연다.

라임스톤 바닥재를 밟으며 우회전하면 다실이다. 바닥에서 한 뼘 올라간다. 평상平床이다. 창밖으로 백일홍이 펼쳐진다.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는 백일홍 말이다. 내부공간은 온통 백색. 아니 무색이다. 무색무취한 한지. 선도, 그리드도, 색깔도, 향도 없다. 자연을 열기 위한 배경막일 뿐.

블랙 소파에 앉아 동측 창을 바라보자. 거실의 돌바닥재가 온돌마루재로 바뀐다. 돌과 나무가 직접 만난다. 몰딩도 없고. 경계가 모호하다. 창 넘어 풍경화가 압권이다. 지면으로 암반이다. 암반위로 소나무. 소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저 멀리 북악 스카이 웨이의 팔각정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위는 떠다니는 구름이고. 둥실 둥실. 없는 게 없군. 이 한 폭의 움직이는 수묵화를 위해 공간내의 모든 언어들은 침묵한다. 이 집의 모든 창은 각기 픽처레스크다. 4계절 365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수묵화. 그에게 건축은 자연과 놀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하다.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과 건축이 같이 한다.

몇년전 성황리에 종영된 드라마 <봄날>과 <파리의 연인들>을 자세히 보신 분은 눈치챘겠지만 그 촬영장소가 바로 이 집이었다. 집주인은 한동안 빌려주고 수억 받았다니. 건축가에게는 왜 저작권료 안주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