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SBS '나쁜남자'가 뜨거운 호응 속에 첫 방송을 내보냈다. '나쁜남자'라는 직설적인 제목탓에 주인공인 건욱은 자연스럽게 나쁜남자를 지칭하게 되었지만 그 면면은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
'나쁜남자'가 선 복수의 출발점에는 가족이 있다. 피붙이라는 오해로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던 해신그룹은 그 피가 다르다는 이유로 어린 건욱을 가차없이 내쳤다. 이로인해 가족일 뻔 했던 모네(정소민 분)와 태라(오연수 분)은 복수를 위해 접근해야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복수로 감출 수 없는 것은 등에 난 상처 뿐이 아니었다. 누나였던 태라와 동생이었던 모네에 대한 그리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
태라에게 뺨을 맞은 건욱은 반론 대신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 쉴새없이 자신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대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그리움에 갇혀있던 것. 하지만 이내 본연의 목적을 되새긴 건욱은 섬세한 손길로 태라의 머리카락을 집어내며 얼음장같던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런가하면 유모차에 앉아있던 동생으로 기억된 모네는 건욱과의 통성명을 통해 "고마워요 건욱오빠"라고 인사를 전하며 어쩌면 정말로 오빠라 불리웠을지 모를 과거의 인연을 되새기기도 했다. 결국 해신그룹의 파멸로 대변되는 건욱의 복수극은 부에 대한 탐닉이 아닌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보상인 셈.
이와 같은 섬세한 연출탓에 자칫하면 통속적일지 모르는 복수라는 소재는 다분히 감상적인 것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내면의 잔상을 다루면서도 지루할 틈이 없다. 건욱의 복수심처럼 경계가 모호한 하늘과 바다를 오가며 화려한 영상미를 선보이기 때문.
거기에 더해 선연한 피, 끝없는 낙하, 외부와 차단된 바다속 암흑 등 주인공의 심리나 상황을 엿보이는 시각적 장치를 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쯤되면 칸에 입성한 '하녀'를 "명품 막장드라마"라고 일컫은 임상수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통속적인 이야기를 고급스러운 영상과 섬세한 대사로 풀어냈다는 것이 그의 논지. 결국 작품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무엇을 다루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풀어내는 가에 있다는 것을 '나쁜남자' 또한 증명한 셈이다.
신아인 기자/ idsoft3@reviewsta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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