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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24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으리오....
| 아침 저녁으로 이젠 제법 찬 바람이 불어댄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 하지만 이젠 대자연의 흐름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름이 물러가면 이제 시원한 가을!
한낮의 뜨거운 태양빛과 대지를 흠뻑 적셔주는 빗물을 머금은 오곡백과가 무르 익어가는 이즈음은, 마음의 양식 또한 가꿔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그래서 떠오르는 건...... '문학'이다. 책 읽기 좋은 가을에 더위에 지쳐 쫓기듯 지내온 여름을 잊어버리고, 이제 시원한 바람 느끼며 차분하게 싯구절도 읊조려보자.
대전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다음 일정이 있는 대구를 향하던 중 옥천을 잠깐 들리기로 한다. 충청북도의 청정지역이기도 한 이 고장엔 한국 현대시의 거성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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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옥천의 구읍 - 정지용의 고향 |
 | 옥천나들목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가면 안내표지는 읍내 입구에서 좌회전을 가리킨다. 5분쯤 달리면 길은 '정지용 생가' 방면 마을 안길로 이어진다. 그렇다. 구읍은 지명이 아니라 옥천의 옛 읍내를 뜻하는 동네이다. 1900년대 초반, 읍내에 역사가 생기는 걸 마을 주민들이 반대했고 결국 역사는 1905년 현재의 옥천읍에 들어선다. 이 때부터 옥천군청 등 중요 시설물들이 역사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구 옥천읍 일대가 옛날 동네가 되버렸고 이름 또한 구읍으로 불리게 것이다. 허름한 집들.....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
| | 거리풍경은 퇴락한 옛 마을임을 느끼게 한다. 수십년 된 낡은 건물이 태반인 구읍은 정지용 시인이 없었더라면 동네 자체가 진즉 사라져 버렸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거리 이름은 시인의 대표작인 '향수'의 이름을 따서 '향수 1로' '향수 2로'로 명명했고, 가게 간판에서는 나름대로 예쁘게 장식한 시인의 시 제목과 싯구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인의 생가 근처에 있는 '향수 치킨 호프'의 간판 여백엔 향수의 구절 일부를 적어 놓았다, '흑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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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 - 정지용의 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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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내을 가로지르는 실개천 위에 걸린 작은 다리 건너에 눈에 띄는 초가집 한 채, 안내표지가 없더라도 한 눈에 '정지용 생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1902년 5월 15일 이 곳에서 태어난 시인은 옥천공립보통학교(지금은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여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시 '향수'의 무대인 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해방 후 경향신문 편집국장과 이화여전 교수를 지내던 시인은 한국전쟁 와중에 납북되어 1950년 9월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되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시를 음미하다보면 1989년 그의 흉상 제막식 때 처음 불려진 이동원과 박인수의 노래가 절로 콧소리가 되어 흘러나온다. 사실 1988년은 정지용과 정지용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아니 우리 모두에겐 의미있는 한 해였다. 그 전까지 납북시인이란 이름 아래 시인은 일반에겐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군사독재 아래 '북'이라는 글자 하나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도도한 물결 아래 '해금'의 자유를 누리며 정지용의 시들은 그제서야 당당하게 노래될 수 있었던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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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짝 열어놓은 싸립문 안으로 들어선다. 돌아가신지 38년이 지나서야 사람들과 편하게 만날 수 있었기에 누구든 언제나 찾아오는 이를 시인은 반기고 있지 않을까. 100여년 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자취야 찾을 수 없겠지만 분위기 만큼은 옛날로 돌아가는 듯 하다. |
 | 생가 외벽엔 '생가유적 제1호, 1974년에 허물어진 것을 1988년 새 집이 들어섰다.'라는 현판을 붙여놓아 생가의 역사를 알게 해준다. 방 안을 들여다보면 벽면에 시인의 사진과 시 '호수'를 쓴 액자가 걸려있는 걸 볼 수가 있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그리움의 표현을 어디다 비길 것인가, 싯구절마다 시인이 가히 한국 서정시의 대표라 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념과는 관련없는 시인을 그리 오랫동안 금지문학에 가두었을까? 잠깐동안이나마 좌익문학단체에 관계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납북되어 생사를 몰랐기 때문일까. 어쨋든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의해 문학마저 이념이라는 틀에 가두었던 안타까운 시대가 있었음을 시인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된다. |
| 한국 모더니즘의 시작 - 정지용 문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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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가 바로 뒷편엔 2005년 5월에 개관한 '정지용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시인의 삶의 발자취와 시세계를 두루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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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는 무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요일 그리고 매년 1월1일, 설날, 추석날은 휴관.
정지용 사이버문학관은 http://www.jiyo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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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서 생가 앞을 흐르는 실개천을 바라다본다. 다시 떠오르는 '향수'! 많은 주옥같은 시를 남겼지만 우리에겐 어쩔 수 없이 '향수'로 친근한 시인 정 지 용! 고향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많은 우리 민족이기에 그에게 더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번듯한 지금처럼 편리한 집은 아니지만 도란도란 가족끼리 모여앉아 이야기 나누던 옛날의 고향집,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살붙이의 정이 실개천의 물처럼 쉼없이 흐르던 곳! 그런 우리의 고향집이 더더욱 그리워지는 계절, 올 가을엔 여기저기 문학관 여행을 다녀봄이 어떨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