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학교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 넓게 더 높게 더 화려하게 만드느라
머릿카락 사이사이며 젖은 옷소매자락이며 할것없이 흙으로 범벅이 되버리기 일수였던 날들이 말이다
해넘이가 시작될 무렵부터 밥먹으러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손짓도 못본채하며
두꺼비집이 부셔지랴 모래성 성곽이 무너지랴 잠시도 눈을 때지 못했던 그 날들이 말이다
은각사의 모래성을 보니 어린시절이 떠올랐다면
내가 너무 늙어버려서인지
내가 너무 멀리 와 버려서인지
눈부실정도로 하얀 모래성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끔은 누구라도 붙잡고 모래밭으로 끌고가서
"두껍아~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다오~"
주문을 외우며 어린시절의 소소한 기억들을 꺼내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은지
은각사 곳곳에 소꼽친구처럼 보이는 커플들이 종종 보인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가 저리도 많은지
말만 통한다면 불쑥 끼어들어가 말참견이라도 할지 모를일이다
발걸음의 박자를 맞춘후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만의 암호로 이야기 한다는 것만큼 아찔하게 통하는 즐거움이 또 있을까?
푸른 햇빛과 맑은 나뭇잎사이로 눈이 투명해질정도로 예쁜 친구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문득 서울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을 떠나서 말한마디 통하지않는 곳으로 여행한것이 처음도 아닌데
여지껏 한번도 이국에서 외로워 본적도 없었는데
자꾸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게 된다
철없던 어린시절부터 수많은 날들을 함께 했었던
그녀석들이 보고싶어진다
한동안 뜸하고 서로를 잊고 지내면서도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는게 마음이 묵직해져온다
길을 잃은 것이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길을...
조금씩 무관심해지고 잊혀지면서 벽이 생기고 있었나보다
서로가 벽 건너편에서 애타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같은쪽으로 건너가 벽에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은각사를 뒤로하는 내 손에는 검은색 플라스틱 뭉치가 들려져 있다
"나야! 임마!"
2010 오사카의 은각사 담벼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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