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올레 16.1 km
우도는 원래 올레가 없는 곳이다.
5월 23일은 우도 올레가 처음 열리는 날이었고,
내가 우도에 가려던 날도 5월 23일이었다.
우도 올레를 하라는 뜻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우도. 우도.
이름만 들어도 바다 냄새가 나던
우도, 걸어서 한 바퀴 돌기
우도 올레가 첫 공개되는 날이니만큼
개장 행사가 열렸고 걷는 이들도 많았다.
마실 나온 우도 주민들도 많아서
우리처럼 정색하고 갖춘 복장이 아닌
슬리퍼 직직 끌며 걷는 모습 보는 것도 좋았다.
보리밭
마늘밭
호밀밭
호밀맡과 돌담길
파란 화살표들
모름지기 성공적인 올레를 위해서는
화살표의 전체적 모양을 잘 살피는 관찰력이 필수다.
머리의 방향과 몸통의 기울기,
둥그렇게 휘어졌는지, 45도 경사는 아닌지.
행여 파란색 화살표 또는 리본이 없이 두 블럭 이상을 갔다면
길을 잘못 들었노라 확신하며 되돌아가기
이 사실만 미리 알아도 길을 잃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불행히도 나는 이것을 마지막 날에야 깨우쳤다. ㅠ
처음 올레를 걷고자 했을 때는
묵묵히 길을 걸으며 정리할 것들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올레꾼들이
나와 같은 이유에서 올레를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첫날도, 둘째날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올레는 누구에게도 쉽게 말을 건네고
누구와도 쉽게 동무가 될 수 있는
쾌활하고 밝은 길이다.
여기에서 잠시 쉬어가며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개장 행사 기념으로 주최측에서 마련해 준
흙돼지구이에 막걸리와 김치(단돈 천 냥!!), 그리고 해물 냉국수로
든든하게 요기했던 점심
어찌나 맛이 좋던지 막걸리가 술러덩술러덩 잘도 넘어가고
우리는 술기운에 올레 걷겠다며 와하하 웃음보를 터뜨리고.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
끝내줘요 제주 쌀 막걸리
반 병을 마셨는데 속이 말짱. 완전 순해! 완전 꼬소와!
옥돔, 갈치, 감귤 초콜렛 다 필요없어.
서울 갈 때 막걸리 싸가겠다며 낄낄거렸지.
슈퍼 갈 타이밍을 놓친 게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이 블로그 보고 올레 다녀오는 이 있으면 감귤 막걸리 한 병만 부탁해요. 굽신굽신 -
해물이 꼬드득 꼬드득. 해물냉국수
바람 불던, 우도
날씨가 그리 좋다가도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니
가벼운 내 몸이야 날아갈 것 같았다.
막걸리 사오려다 맘 접은 이들,
미안해요. 농담이예요
우도 올레 킹왕짱!
첫 날은 네 시간 걸으니 죽겠더니
우도는 아침 10시 반에 시작해서 4시까지.
나중에는 발바닥이 하도 아파 땅에 대지도 못하고
뒤뚱뒤뚱 안짱다리로 걷는데
넋을 잃을 풍경에 발걸음은 절로 이어진다.
첫 날 1코스를 마치고
반 팔 티 아래로 팔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얼음마사지 하고 감자 썰어 붙이고
다음날부터는 긴 팔을 입었는데
치명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다리.
딱 저 라인,
반바지와 양말 사이.
봤다하면 누구나 으하하하 빵빵 터지게 만드는
올레가 남긴, 유일한 회한의 자욱.
레깅스만큼이나 선연하게
금이 그어진 커피색 종아리.
덕분에
올 여름, 난 무조건 롱스커트.
화려하기도 하지
양귀비
이것이 그 팔뚝.
첫 날의 네 시간만에 이뤄진 참극
지금은 정신없이 허물벗고 있는 중
얼굴, 목, 팔
삼단 분리 -_-
들어는 봤나요. 멸치찌개
칼칼하니 국물이 끝내주는 멸치찌개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가 끝이 없다.
몇 코스 어때요 정보를 교환하고
어디 꼭 가요, 어느 숙소가 좋아요
그 곳에서 이 친구를 만났죠. 그리고 같이 여행중이예요.
우리 나라에서는 맡아보지 못했던 신선한 풍경.
외국의 백패커에 머무는 그런 느낌
아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이야기는 저녁식탁을 넘어 치킨에 맥주로 이어지고
열어놓은 문지방으로 청량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밤하늘엔 별이 반짝이는데
지역과 말씨와 삶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함께하는
제주도 민박집의 두번째 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