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5시가 다 되어서야 룩소르를 떠났다. 버스는 생각보다 크고 안락했다. 시티투어에서나 탈 수 있는 그런 버스였다.

역시 출발하자 마자 에어컨을 강하게 틀기 시작한다. 아부심벨가는 새벽버스에서도 당한지라 이번엔 긴바지에 두꺼운 가디건까지 챙겼다.

버스는 바로 큰 길로 나가지 않고 근처 작은 동네 골목길을 돌며 손님을 더 태웠다. 고속버스가 픽업서비스라니.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버스는 인가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인가를 벗어났는가 싶었는데 또 작은 마을에 들리더니 이번엔 기름을 넣는다. 그런데 주유원 손에 담배가 들려 있다.

주유소에서 담배라니. 그것도 주유 중에.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였다.

관광버스에 의레 있는 작은 테레비에 성룡의 썬더볼트가 아랍어 더빙으로 나온다. 외국인을 위한 써비스인가?

처음 한 30분은 괜찮게 보고 있었다. 성룡영화야 짜고 치는 화려한 액션 이 반이니 머리 어지러운 아랍 더빙은 큰 문제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잡음이 깔리기 시작한다. 뭔가 노래 같기도 하고 판소리 같기도 하고. 비슷한 구절이 반복 재생되는 듯한 잡음.

이것이 그 말로 만 듣던 이집트 장거리 버스의 코란 독경 고문이였다. 생소리로 목을 쥐어짜내며 끝없는 비성으로 꺾는 독특한 음색.

저음대도 아닌 고음대 고주파로 쏘아대는 초강력 요들과 유사한 꺾기 기술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영화에 집중도 되지 않고 어차피 한참 달려야 할 거, 한국인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외국인들도 멀리 있어 대화도 못하는 상황이겠

다, 다합까지 기절한 듯 잠에 빠지기로 했다.

한참을 자다 보니 뭔 신음소리도 아니고 비명소리도 아닌 것이 귀를 때린다. 신경이 쓰여서 다시 잠에 들 수 가 없다.

일어나 앉으니 테레비에선 성룡영화는 끝난지 오래고 007을 패러디한 아랍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이 사람들. 그 괴로운 코란 독경과 비디오를 동시에 보며 웃고, 혀를 차고 하며 있는 것이다. 놀라운 멀티테스킹 능력이었다.

해도 저문지 한참되어 사막의 차가운 밤공기와 고막을 찢을 듯한 고주파의 코란 독경.

도대체 이스마일은 누군지 왜 그렇게 독경하면서 찾아대는지.

정말 계획했던대로 기절하듯이 잤다. 숙면이 아니라 테러와 같은 상황에 그냥 지쳐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새벽이었다. 동도 터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6시간 남았단다. 12시간 넘게 달려 왔는데 아직도 6시간.

떠오르는 해를 보며 또 잤다. 그러다 여권 확인 할 때 다시 깼다.

시나이 반도는 군사상의 요지이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스라엘이 맞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간히 테러 사건도 많이 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도시 입구와 길 중간중간에 항상 여권을 확인하는 초소가 있다.

버스는 샤름엘쉐이크에서 한번 사람을 내려주고 다시 달렸다.

주변의 풍경이 지금까지 본 이집트와 사뭇 달랐다. 모래사막이 아닌 울퉁불퉁한 암석질의 산악.

몇일 전의 비 피해를 말해 주듯 도로 여기저기가 무너지고 산사태의 흔적에 뭍혀있다.

잘 다듬어진 데피니션이 분명한 남자 근육같은 산 사이로 난 길을 달리다 보니 눈 앞에 'Welcome to Dahab'이라고 쓴 표지판이 보인다.

아,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버스가 머리를 돌리자 눈 앞에 바다가, 저 멀리 바다가 반짝인다.

어제 오후 4시에 올라서 도착한 시간이 오늘 12시 경. 근 20시간이 걸린 길고긴 여정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바닷 바람이 느껴진다. 버스에서 만난 성일형, 종국형 그리고 지호랑 숙소를 찾아 마을로 갔다.

해변가에 늘어져 있는 다합은 정말 지금까지 보던 이집트의 여느 도시와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캘리포니아나 마르세이유 같은 곳에 온 느낌이었다. 일단 길거리를 지나다녀도 호객을 하거나 사람을 잡아끄는 이가 없어 행복했다.

마음편히 아무 방해 받지 않고 길거리를 활보 할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해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우리 숙소는 한국인 다이빙 강사님 '영반장'님이 운영하시는 조하라 호텔이였다.

호텔이라는 어마무시한 이름이 붙었지만 가격은 친절한 곳이었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은 낙원이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

영화에서나 보던 넓찍한 마당에 한켠에 자리잡은 카페. 그리고 그를 둘러싼 하얀 벽의 2층 건물. 리조트였다.

지금까지 복닥복닥 서있는 건물 사이에 비집고 위치한 호텔에서 어두컴컴한 방에서 지냈는데, 탁트인 공간에 밝은 방.

게다가 친절한 스텝. 그리고 쿨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우릴 마중나오시는 멋진 '영반장'님. 이곳은 정말 지상 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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