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진짜 이기다니
16강 진출만큼이나 기쁜 이 마음 뭐람 훗
유럽 대부분이 런치 메뉴를 코스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타삐에스 근처 아무데나 골라 들어간 Bem ber
온갓 손짓발짓으로 런치 메뉴에서 고기+ㅁ+ 선택
이때의 일화 한가지라면,
스페인어 문맹으로 (장하게도) 샐러드와 뽀요(닭) 요리를 어찌어찌 시키고는
드링크를 물어보는 영어 문맹 웨이터씨
'와인'이라고 하자 '띤또? 블랑코?'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져스트 와인', '하우스 와인' 해보며 서로 한껏 괴로워하다 그냥 '띤또'했는데
알고보니 레드와인이 '비노띤또', 화이트와인이 '비노블랑코' -_-
이후 절대 잊어버리지 않게 된 단어 ㅎ
탄수화물의 대부분을 감자로 섭취하는 서유럽 사람들
어디든 알몸으로 냅다 튀겨주는데
패스트푸드점 후추맛 프렌치프라이보다 맛있음
이상하게도
식당에서 가장 집중이 잘됨
카페보다도 더 배제되고 무시되는 환경이라 그런듯
타삐에스를 보러 갔다가 로비에서 진주귀걸이 발견
까사밀라, 타삐에스를 무려 하루에 다 봤는데도 해가 지지 않자
오늘의 마지막 미션을 이 귀걸이 주인 찾아주기로 정하고는
까딸루냐, 라람블라, 코끼리공원을 거쳐 한 스패니쉬아파트먼트에 찾아들기까지
길 위의 모든 여자들의 한쪽 귀만 보고 다녔다
그러나 결국 한달을 함께해 용산구 청파동에 함께 돌아온 진주귀걸이 한쪽;
그 커플을 본건, 바르셀로나에 막 도착했을 때.
톨게이트를 지나고 터미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언제쯤 모스크바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잇는 서른시간 넘는 이 강행군에서 벗어나
따뜻한 물과 포근한 침대로 찾아들 수 있을지 막막해하던 그때.
감지못한 머리와 씻지 못한 얼굴, 뻑뻑한 렌즈에 힘겨워했던 목요일 아침 8시
자정 마드리드발 밤버스가 바르셀로나 시내를 지날 때쯤 처음만나는 이 도시에서 그들을 본거지, 머리가 반쯤 젖은.
오월의 바르셀로나 아침은 햇살이 눈부셨는데, 약간의 소금기가 있는 미풍은 아마 지중해에서 흘러온 것일테지.
눈부신 거리엔 드문드문 사람들이 걷고 있었고, 모두 지하의 메트로로 급히 사라지고 있었네.
그런데 그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유난히 느린 걸음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바쁜 바르셀로나의 아침 속에 그들만 슬로우모션처럼 눈에 띄게 느렸네.
손도 잡지 않은, 허나 친한 친구만큼의 거리로 나란히 걷던 여자와 남자,
평범한 옷에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아침 8시,
그들의 머리칼은 젖어있었지.
몇마디 없이, 그들은 아침 스페인의 봄을 걷고 있었네. 적당히 젖어있는 머리카락이 그들의 밤의 궤적을 보여주네.
햇수를 꼽으려면 두 손이 필요한, 7년, 혹은 8년쯤 된 그들의 이름은 어쩌면 후안과 마리아.
수요일 저녁마다 람블라거리의 단골집에서 상그리아를 마시고 목요일 아침 나란히 출근하는,
그들이 머무는 그녀의, 혹은 그의 집엔 이미 낡은 두개의 칫솔이 나란히 꽂혀있고, 여분의 속옷 하나 정도는 같은 서랍에 개져있겠지.
차례로 샤워하고 나왔을 그들의 머리칼은 메트로에서, 거리에서, 직장에서 천천히 마르겠지.
지중해의 바람이 머리칼을 천천히 어루만지는 동안, 그들은 지난밤 TV 코미디쇼를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지을지도.
창 너머 그들을 떠나보낸 밤버스는 코너를 돌아 터미널에 승객들을 쏟아내네.
캐리어와 배낭을 들고 힘겹게 걷는 거리엔 봄햇살만 푸졌는데
그리 오랜시간 지쳤던, 허나 젖은 머리칼로 조용히 걷던 그들을 본 뒤,
개운한 샤워를 막 끝낸 것처럼, 가운 차림으로 막 꺼낸 상그리아를 마시고 있는 것 처럼,
내 머리카락도 기분좋은 샴푸향에 젖어 있는 것처럼,
왠지 상쾌하고 싱그러운 느낌으로, 여행자는 바르셀로나를 걸었네.
그리고 며칠뒤 대서양고래재단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칠 줄 알았다는 듯
예지자 민소는 이 투우반대엔지오에 기부금을 쾌척
(좋은 일 할 땐 한국인이라고 꼭 말하자)
http://blog.naver.com/minsoism/150088741556
201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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