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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입부터 젓가락보다도 굵은 비가 시원스레 내린다. 이럴땐 집에 앉아서 그 동안 여행 다녀왔던 곳이나 들추어봐야지 싶어 사진을 찾아보다 5월 중순에 다녀왔던 승봉도가 생각이 났다. 서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물 맑은 바다와 푸른 솔숲과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있던 작고 소박해서 아름다운 섬 승봉도에 대한 추억을 슬쩍이 풀어봐야지.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해 있는 승봉도는 행정구역이 몇 번이고 바뀐 참으로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곳으로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고 고려때에는 수원에 속해 있다 그 후에 인천으로 편입되었단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했고, 1800년 말에 인천부 덕적면에 배치되었는데, 1914년 부천면 덕적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66년에는 영흥면 자월출장소로 변경되었으며 1983년에 마침내 지금의 옹진군 자월면으로 완전이 편입되었다고. 완전 이동네 저동네를 들락날락거리다가 마침내 제 자리를 찾은 섬이랄까.
페리에서 내려 부두를 따라 걸어가다 하얀 모래 사이에 예쁜 전구 하나와 만난다. 언제가 이 친구도 저 푸른 바다의 파도를 타고 넘실넘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날이 올까. 아니다, 그렇게 표류하다 이 좋은 섬 승봉도에 정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구에 담긴 찰랑이는 물이 이 친구가 다녀온 세상에 대한 기억을 슬며시 담고 있는지도 모르지.
다시 걷기 시작한지 10여분. 마을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리는 정겨운 표지판을 지나, 마을길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올라가 걷는 길에 아름다운 숲이 있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리로 향한다. 5월 중순이라고 해도 이젠 제법 해가 뜨듯하여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배이니 시원한 곳을 찾는가보다.
숲이 좋아 잠시 그쪽으로 걸음을 했다가 내려와 가던 길을 마저 걷다가 이대로 걸으면 섬이 끝나지 않을 듯 싶어 작은 오솔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걸어가다 아래로 내려서니 어라 완만한 곡선이 아름다운 해안가 이일레 해수욕장이다. 푸른 바다와 함께 푸르게 펼쳐진 바다의 풍경은 모래밭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이다.
모래밭을 따라 걷다가 예쁜 해당화와 갯완두와도 마주한다. 내가 승봉도에 와야지 했던 이유를 만들어주었던 꽃들. 5월초~7월초에 승봉도는 이 아름다운 꽃들이 해안가에 핀다는 걸 여행책에서 미리 봐둔터였다. 내가 찾아갔을때는 아직 5월 중순이라 꽃들이 피었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날이 덥더니 때이른 친구들이 활짝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시와 털이 많은 해당화는 여름이 지나면 열매를 맺고, 보라색 갯완두는 비와 바람에 색이 하얗게 변하는 꽃이란다. 언젠가 여름이 지나 찾아가면 그 변한 모습도 볼 수 있으려나. 이일레해수욕장에서 나와 다시 마을에서 완만한 고개를 넘어가 도착한 곳은 부채바위와 남대문바위가 있는 해변. 낮은 산을 에둘러 걷다가 부채 바위도 한 번 돌아보고, 산 아래 신기하게 깍인 남대문 바위에서도 잠시 머물러 본다.
뻥 뚫린 바위 사이로 바다가 보일까 하여 기웃거리다가 잠시 자갈 깔린 바닥에 주저 앉아 바람소리도 듣고 엉덩이 탈탈 털고 일어나 다시 해변을 거닐어 오던 길을 되돌아 간다. 시간이 좀 더 허락한다면 저 멀리 촛대바위 구경도 가고, 목섬이며 금섬도 보고 하면 좋겠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늘은 패스.
만약 여름이라면 이곳에서 해수욕도 즐기고, 조개도 캐고, 산책도 즐기고 어른들이라면 낚시도 하고 가까운 사승봉도도 다녀오며 즐거운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아담하니 사람도 많지 않고, 인천에서도 멀지 않으니까 가족들과 다시 와보면 어떨까. 아쉬움은 초록빛 어여쁜 친구들을 바라보면 가라앉히고 미련 꾹꾹 눌러담은 채 그곳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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