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는 파란 대문이 유난히 눈에 띈다.
제주도에 오지 않았다면,
올레를 걷지 않았다면
이렇게 정겨운 파랑을 알 수 있었을까.
봄의 푸르름을 찾아 떠났던 5월의 제주,
올레길 위에서 행복했던 4박 5일
제주 시외 터미널, 10:00 am
가볍게 국수 한 그릇
짐을 푼 민박집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내가 딱 원하던 그런 집.
올레길 1코스 시작
15km
조곤조곤한 풍경들을 지나고
갈림길이 나왔다.
고민하던 나는,
조금 더 넓어보이던 왼쪽 길로 들어섰다.
몇 십분을 걸었는데 막다른 길이 나왔다.
아아. 탄식하며 빽.
역시 진리는 좁은 길이구나,
자책하며 오른쪽 길로 들었으나
반전. 이것마저 막다른 길.
나는 또 빽.
알고보니 나는 이미 초반에 길을 잘못 들어있었다.
올레길에는 파란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큰 길만 따라가던 무지의 소산
올레의 모든 길은 파란색으로 통한다.
왼쪽 길로 갈 때 만났던 도랑
전날 비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불었다더니
길이 물에 잠겨 강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나는 길 옆에 놓인 타이어 더미에 올라타
나뭇가지와 잎새들을 움켜잡고
'올레길은 이렇게 험한 것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타잔처럼 도랑을 건넜더라는
슬픈 이야기
올레길이 정답고 친근한 이유는
이렇게 개인 소유지인 목장도
빗장을 열고 들어가 총총 가로질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올레꾼에겐 제주의 모든 길이 열려있다. 활짝.
초반의 갈림길에서 진을 다 빼고
아이고, 내 다리야
아이고, 내 발바닥아
하던 내게 뿅 나타난 해갈의 바다
낮에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 집 안에 사람이 없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현관문도 열려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설고 희한했던 그 느낌.
"가방 내려놓고 올레 다녀오심 됩니다예"
당황해하는 내게
수화기 너머 허허 웃으시던 아주머니.
다녀오니 거실에 사람들이 있었다.
좀 들라며, 먹고 있던 참외를 건네던 여자 둘은
처음에는 딸인가 했다가, 동네 주민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민박집에 묵은 지 하루된 올레꾼들이었다.
아주머니에게 이모, 이모 하며 말을 건네는 걸 보며
참 넉살들도 좋구나 싶었는데
하룻밤이 지나고 이젠 내가
아유 이모, 아유 이모, 하고 있을 줄은
그 순간에는 꿈에도 몰랐지 말이다.
해녀이기도 한 아주머니가
물질해서 올린 해산물로
싱싱하고 푸르게 채워주시던 식탁
몸과 마음이 맑아지던 올레길의 첫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