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가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다.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벗어나자 차창에 맺힌 빗물 사이로 희미하게 산이 비치기 시작했다.
한 고개를 넘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비에 젖은 봄 풍경들..
시냇물이 흐르는 땅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풍경들..
한 번인가..갈림길에서 길을 가르쳐 준 가이드 총각은 계속 꾸벅 꾸벅 잠만 자고.. ㅡ.ㅡ
힘든 상황, 힘든 길에서 노련하게 운전해 준 밍쥔...정~~~~말 수고했다.
다시 마을에 들어서자 지나가는 동네 아이들이 차를 향해 거수 인사를 한다.
오잉? 이건 무슨 분위기~~??!
단조로운 듯 단정해보이는 마을의 풍경
어느 새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고..
마을 풍경에 잠시 빠져든다.
다시 오르기 시작한 고갯마루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가슴 시원한 드넓음..
산자락 사이로 펼쳐진 광할한 대지 위로 굽이굽이 강이 흐르는 풍경에
잠시 오그라들었던 마음이 펴지는 듯했다.
산마루 위에 일구어 놓은 너른 밭..멀리서 보면 공항처럼 보일지도..
이 길도 공사중. 근데 일하는 사람들이 다 여자...
단정한 복장의 청일점은 다른 차의 운전기사되시겠다.
우리보다 더 관광객처럼 보이던 즐거운 운전사..
산을 돌아 내려가자 다시 날은 흐려지고..
길 끝에 보이기 시작한 호수..
장족 총각 가이드와 함께 떠나온 지 다섯 시간만에 만난 것은..
왠지 낯익은 호수
이전 날 트레킹하며 걸었던 길의 그 루구호가 맞다.
하루 반나절 걸려 떠나왔던 길을..우리는 다섯시간만에 다시 돌아왔다.
산 속에서 지체한 시간을 빼고..중국청년의 과장을 감안해도 말도 안되는 거리..
이틀만에 다시 눈 앞에 나타난 루구호 앞에서,
갑자기 기억이 하얗게 증발하는 듯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잠시 차량의 타이어를 정비하는 사이,
시간과 거리의 마법에 빠진 것처럼 몽롱한 상태에서 두 눈에 들어온 그림은..
떨어지는 빗방울이 차 위의 먼지를 적시며 만들어내는 안개 속 어두운 숲...
온 몸에 쌓인 무거운 먼지를 씻어내고 호텔방 창문에서 내려다 본 동네..결국 여기에 다시 왔구나..
장기두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시간을 잊은 도끼자루 이야기가 떠올랐다.
꿈 같이 희미해진 시간들..사실과 현실이 모호한 시간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사람들..
루구호의 라파이구집으로 고고~~
뜨거운 국물과 빠이주 한잔으로 귀환을 축하해야 할지..위로해야할지..
어쩜 이 사람들..
평생 이 동네에서만 일년을 하루같이 십년을 일년처럼 살지도 모르는데..
매일 아침 야크와 함께 저길을 가고, 저녁이면 야크와 함께 돌아오는 한결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이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은 어느 하늘 아래, 어느 산 아래일지...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