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정지용과 함께하는 감성 간판 여행
충북 옥천 구읍 소경
작은 풍경이 깃든 마을이 있습니다.
곳곳에 스며든 '큰 마음'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오고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 그곳.
차마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그곳에는 고즈넉한 풍경과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가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 줄 문장으로 모진 세상에 금빛 웃음을 던지고, 한 뼘 마음으로 번잡한 세상에 햇살 한 줌을 뿌리는 시인의 노래.
"우리도 마침내 시인을 가졌노라"고 극찬을 받았던 한 시인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언어는 시대를 초월해 메아리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머리로 구상하고 시를 썼다는 시인.
언어에 얽매이지 않고 풍경을, 사람을, 그리고 삶을 먼저 탐닉했기에 이토록 맑고 순수한 시가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이겠죠.
세상 사람들의 마음줄을 튕기는 시인의 순박한 언어.
그 여운이 집집마다 깃든 오래된 마을이 있습니다.
서울에선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서울 미용실'.
일요일 오전, 닫혀 있는 저 문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시인 정지용.
어린 시절, 그에게 풍요로운 감성을 선물했던 작은 실개천이 옥천 구읍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습니다.
그땐 좀 더 작고 소담스러웠겠지요.
감히 시인의 마음으로 실개천을 바라봅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거리 간판 문화를 개선해보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을 1년 동안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공공 디자인이 왜 중요한지 알리고, 이해시키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1년 동안 어디를 가나 제 눈에는 간판만 보였고,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근사한 간판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이었죠.
최근, 도심 곳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간판 정비 사업.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과 불만이 많습니다.
뭐, 여러 가지 행정적인 사정과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획일적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게다가 그저 보이기 위한 간판이라는 거죠.
사실 간판은 그 가게의 역사와 주인의 마음, 그리고 숨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하는, 일종의 얼굴입니다.
아무리 작고 소박해도, 혹은 오래되어 낡아도 간판을 보는 순간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금방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간판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유럽이나 일본 등으로 취재를 가고, 그곳에서 '간판의 궁극적인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을 이해하는 감성'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시인 정지용이 나고 자란 옥천.
이곳 사람들에게 향수처럼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시인을 기억하기 위해 곳곳에 그의 언어를 새겨 놓았습니다.
특히, 그의 생가가 있는 구읍으로 가면 아주 특별한 간판들을 만날 수 있지요.
요즘 언어로 얘기하자면 '스토리텔링 간판'이라고나 할까요.
마음 먹고 마을 한 바퀴를 돌아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아주 작은 읍내.
그곳엔 시인이 있고, 시가 있는 풍경이 있고, 그리고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감성 어린 간판이 있습니다.
담장이 없거나 낮고, 집 옆 텃밭엔 변변한 울타리조차 없는 순박한 마을, 옥천.
길가에 옹골옹골 탐스럽게 열린 산딸기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내 것이 아니면 아무리 흐드러지게 열린 자연이라도 탐하지 않는 맑은 곳.
'느리고 맑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옥천에서의 하룻밤.
시인의 마을.
그리고 시인의 노래.
푸르른 바람이 들녘에 내려 앉은 옥천의 여름은 비록 얼룩배기 황소의 게으른 울음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여유로운 쉼을 가슴 가득 안을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걸음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