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외곽지역인 '라데팡스'에서 회의가 있었다. 워낙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곳이라 비싼 택시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라빌레트역은 호텔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티켓을 구입하려고 했더니 안내소에서 무인자동발급기를 이용하란다.




외국에 나오면 어쩔 수 없이 헤맬수 밖에 없나보다. 불어를 모르는 탓에 세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안내소직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티켓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파리는 도시 곳곳 어디든지 지하철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가는 여정은 파리 북동쪽의 라빌레트역을 출발하여 서쪽 끝의 라데팡스이다.




라빌레트역이 있는 7호선을 타고 가다 중간에 1호선으로 갈아타야한다.
입출구는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다.




라빌레트가 외곽이라 그런가, 아님 9시가 넘어 러쉬아워가 지나서일까...... 역 구내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곧 전철이 도착하고...... 차량 안이 우리나라와 조금 달랐다. 일반 철도차량처럼 2인용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1호선과 만나는 환승역은 루브르 박물관역.




1호선은 파리 중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노선이다. 귀에 익은 역이름들이 쭉 이어진다. 리옹, 바스티유, 꽁꼬르드, 샹젤리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이름을 딴 역도 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내어 파리 시민들을 해방시켜준 때문일까.




중심노선 답게 차량 내부는 꽤 혼잡했다. 그런데 왠걸, 어느 역에선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구걸하는 사람들이 올라탔다. 지하철 안 풍경은 파리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출발한지 약 40분 지나 우리의 목적지이자 종착역인 라데팡스에 도착하였다. 지상으로 나왔더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주변은 온통 현대식 고층빌딩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오래된 회색빛 저층건물들이 가득한 파리 시내 중심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라데팡스'(La Defense)는 미테랑 대통령 정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추진된 '파리재개발계획'으로 만들어진 부도심구역, 오래된 도시 파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30여년간에 걸쳐 조성한 상업, 사무실, 주거, 문화공간을 갖춘 복합공간이다.




광장 끝 쪽에 가운데 공간이 텅 빈 커다란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해야 할 사무실이 입주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아니 무슨 건물을 저렇게 비효율적으로 지었나'하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 건물은 이른바 'Grand Arche', 이른바 '신 개선문'이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그랑드 아르슈'는 35층으로 높이 105m.

이 거대한 건축물은 나폴레옹 황제가 승리의 상징으로 추진했던 '에뚜알 개선문'과 일직선상에 자리하며 서로 마주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미래형 복합도시를 건설하면서 프랑스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겠다는 의지를 담은 건물이 아닐까? 건물의 효율성보다는 건물의 의미에 더 가치를 두는 프랑스 사람들의 가치관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라데팡스 주변엔 도로가 보이지 않았다. 차들이 자취를 감춘 이유를 현지 관계자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라데팡스 일대는 전철을 비롯한 버스 택시 고속철도 등 모든 교통수단이 지하에 있단다. 에뚜알 개선문에서 뻗어나온 도로는 지하로 라데팡스 광장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대형빌딩들이 들어차 있어도 일체의 교통혼잡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미팅을 끝내고 나왔더니 그랑드 아르슈 계단엔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휴식을 취하러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주변을 다시 살펴보았다. 직사각형의 천편일률적인 빌딩들로 가득찬 우리나라의 강남을 떠오르게 한다. 갖은 형태의 건축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풍경이 도시를 만들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하늘로 높이 솟은 빌딩과 빌딩 사이 작은 광장에 손가락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Le Pouce', 프랑스의 유명한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의 작품으로 청동으로 만든 높이 12m의 '엄지손가락'이다. 우리나라 올림픽 조각공원에도 그의 '엄지손가락' 작품이 있다. 라데팡스의 작품의 딱 절반 크기인 6m 높이이다.




좌우대칭형의 '팔레 드 라데팡스'도 라데팡스의 명물 중 하나이다. 조개껍데기를 엎어놓은 듯한 형상의 이 건물은 기둥과 기둥 사이가 238m에 이른다고 한다.




광장을 가로질러 점심식사를 하러 가기위해 음식점을 향한다. 현대식 고층빌딩 사이 저 쪽엔 270년 전에 지어진 개선문이 다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옛날과 지금이 하나의 선에서 한데 어우러지며 발전을 끝없이 추구하고 있는 파리가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