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을지도 모르겠다고... 하긴 영화라는 것이 애초에 현실을 반영하며 발전한 것이니, 평범해 보이는 내 이야기일지라도 영화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단지 그 장르가 무엇이 될 것인지가 중요한 것일지도. 여기 영화 같은 삶을 살은 두 남자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에 좀 더 살을 붙인다. 그럼으로써 더욱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어디에서부터가 진짜 이야기이고, 어디에서부터가 영화적 상상일까? 어쩌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다. 좋든, 싫든,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영화가 만나는 방식이니까.

[원티드 킬러] -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릿을 내세워 열다섯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 내다.

감독 : 빈센트 도노프리오

주연 : 제이크 슈어, 에단 호크, 데인 드한, 레일라 조지, 크리스 프랫

아버지가 술에 취해 어머니를 때려죽이던 날, 열다섯 소년 리오(제이크 슈어)는 총으로 아버지를 쏴 죽인다. 그리고 아버지만큼이나 폭력적인 삼촌 그랜트(크리스 프랫)를 피해 누나인 세라(레일라 조지)와 도망을 친다. 도망 도중 전설적인 무법자 빌리 더 키드(데인 드한)와 만나게 되고, 그가 소문과는 달리 포악한 악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날 연방 보안관 팻 개릿(에단 호크)에 의해 빌리 더 키드는 체포되고, 세라 또한 그랜트에게 잡혀 사창가로 팔려 가게 된다. 자신을 도와 세라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빌리 더 키드밖에 없다고 생각한 리오는 빌리 더 키드의 탈출을 돕게 된다. 하지만 세라를 구하는데 관심이 없던 빌리 더 키드는 결국 팻 개릿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 이제 리오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개릿뿐이다. 리오는 개릿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빌리 더 키드... 미국의 서부시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수많은 영화, 게임, 만화 등에서 빌리 더 키드는 악명 높은 서부시대의 무법자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본명은 윌리엄 헨리 매카티 주니어. 1859년에 태어났으며, 1880년 12월에 팻 개릿에게 체포되었다가 4개월 후인 1881년 4월에 탈옥에 성공하였지만 그로부터 3개월 후인 7월 14일 결국 팻 개릿의 총에 맞아 스물한 살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원티드 킬러]는 빌리 더 키드가 죽기 전 마지막 7개월을 영화로 한 셈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티드 킬러]의 주인공은 빌리 더 키드도, 팻 개릿도 아니다. 네이버, 다음 등 대형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줄거리는 빌리 더 키드와 개릿 위주로 적혀 있다. 이를 토대로 이 영화를 본다면 전설적인 무법자 빌러 더 키드와 그를 쫓는 역시 전설적인 보안관 팻 개릿의 쫓고 쫓기는 서부 액션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영화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죽이고 삼촌에게 쫓기는 리오 위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릿은 그저 비중 있는 조연에 불과하다. 아직 [원티드 킬러]를 보지 않았다면 그 점을 꼭 유의해야 할 듯.

그렇다면 리오의 입장에서 [원티드 킬러]의 내용을 다시 조합해 보자. 리오는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이성을 잃어 어머니를 죽였으며, 그대로 놔뒀더라면 세라 역시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죽인 후에 충격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버지만큼이나 위험한 삼촌 그랜트가 이들 남매를 뒤쫓았으니까. 리오에겐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만이 힘으로 그랜트를 무찌르고 세라를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릿이다.

처음 그가 빌리 더 키드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의식 때문이다. 만약 팻 개릿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은 다른 살인자들처럼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 리오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팻 개릿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세라가 그랜트에게 붙잡힌 이후에도 빌리 더 키드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빌리 더 키드가 리오를 도와 줄리가 없다. 애초에 그는 악당이었고, 지금 당장은 팻 개릿을 피해 숨어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한 리오에게 빌리 더 키드는 느긋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빌리 더 키드가 죽었다. 이제 남은 희망은 팻 개릿뿐이다. 그에게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 순간 리오는 세라를 구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죽인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팻 개릿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리오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팻 개릿이 리오를 도와줌으로써 세라를 구할 수가 있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랜트를 쓰러 트린 것은 팻 개릿이 아닌 리오 그 자신이었다. 그렇게 리오는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리오와 빌리 더 키드, 그리고 팻 개릿은 서로 닮았다는 점이다. 리오는 아버지를 죽였고, 빌리 더 키드는 어머니를 강간하려던 남자를 죽였으며, 팻 개릿은 자신을 죽이려 한 동료를 죽였다. 그들 모두가 살인자이다. 하지만 첫 살인 이후의 행보는 달랐다. 빌리 더 키드는 무법자가 되었고, 팻 개릿은 연방 보안관이 되었다. 여기에서 리오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 리오는 빌리 더 키드처럼 무법자가 될 수도, 혹은 팻 개릿처럼 정의를 지키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처음 빌리 더 키드를 선택했던 리오는 마지막에 가서는 팻 개릿을 선택하며 올바른 길로 접어든다. 이렇듯 [원티드 킬러]는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릿을 내세워 열다섯 소년 리오의 성장을 그려낸 영화이다.

[피부를 판 남자] - 자유롭지 못했던 난민이 캔버스라는 물건이 되자 자유로워진 역설

감독 : 카우타르 벤 하니야

주연 : 야흐야 마하이니, 코엔 드 보우, 모니카 벨루치, 디아 리엔

기차에서 즉흥으로 혁명을 외쳤다는 이유로 시리아 경찰에 붙잡힌 샘 알리(야흐야 마하이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 아비르(디아 리엔)를 남겨두고 시리아를 도망친다. 이후 시리아 난민 신세가 되어 밑바닥 인생을 시작한 샘은 아비르가 돈 많은 외교관과 결혼하여 벨기에에 정착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비르를 만나러 벨기에에 가고 싶지만 난민 신세인 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유명 예술가인 제프리(코엔 드 보우)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그의 등에 문신을 새겨 예술품으로 전시하겠다는 것.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샘은 제프리의 예술품이 되어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는 비자가 생긴다. 하지만 그의 예술품으로 전시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결국 샘은 제프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의 예술품이 되어 벨기에로 건너가 아비르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벨기에의 예술가인 빔 델보예는 2008년 스위스인 팀 스타이너라는 남자의 등에 타투를 작업하여 미술관에서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전시하고, 사후에는 그의 피부를 액자에 보관하는 계약을 맺는다. 이 전시를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러한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영화 [피부를 판 남자]가 제작되었다. 다시 말해 [피부를 판 남자]는 살아있는 남자의 등에 타투를 새겨 예술품으로 전시를 했다는 소재만 제외하면 실화와는 전혀 딴판의 영화인 셈이다. 그래도 제작진은 빔 델보예에게 해당 소재를 영화화하는데 승낙을 받는 절차를 밟았고, 빔 델보예는 [피부를 판 남자]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을 하며 영화에 적극 협조했다고 한다.

빔 델보예의 작품과 [피부를 판 남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스스로 피부를 예술품으로 내준 사람이 스위스인에서 시리아 난민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주제를 뚜렷이 한다. 그러한 주제는 극중 제프리의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암흑시대로 시리아나 아프간이나 팔레스타인 같은 지역은 무조건 기피 대상이죠. 벽이 올라가요. 그런데 샘을 캔버스라는 물건으로 만드니까 어디든 다닐 수 있게 됐어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물건이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상품 같은 형태로 탈바꿈하면 샘 같은 사람도 이 시대의 풍조 아래 인간성과 자유를 되찾을 수 있어요. 정말 역설적이지 않나요?"

그렇다. 샘은 아비르를 만나러 벨기에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그가 시리아 난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프리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등을 작품으로 내놓고 나니 그제서야 그 어디에도 갈 수 있는 비자가 생긴다. 제프리의 말처럼 굉장히 역설적이다. 사람보다 물건이 더 자유로운 세상.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피부를 판 남자]를 통해 이 시대의 비극적인 역설을 '피부를 판 남자' 샘 알리를 통해 그려냈다.

그래서 샘은 스스로 예술품이 되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일단 아비르가 살고 있는 벨기에에 가는 것은 성공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의 소유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샘은 원치 않게 유명인이 된다. 사람들은 그가 착취를 당하고 있다면서 당사자는 원하지 않는데 도와주겠다고 나서기까지 한다. 그래서 샘은 자유로워졌냐고? 그럴 리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그는 더욱 자유를 빼앗긴다. 자유를 찾아 스스로 예술품이 되었지만, 예술품으로서의 자유는 인간이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자신의 등이 경매로 팔려가는 날, 인간으로서의 샘의 반란은 시작된다.

꽤 난해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피부를 판 남자]는 관객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가볍게 그려져있다. 샘이 처한 상황은 어찌 보면 충격적이면서 비인간적이기까지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비르를 사랑하는 샘의 순애보를 통해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관객에게 설득시킨다. 그러면서 샘이 비인간적인 예술품에서 다시 인간성을 되찾는 과정을, 샘이 아비르의 사랑을 되찾는 과정으로 치환한다. 사랑 이야기만큼 관객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영화는 영특하게 그러한 점을 공략한 것이다.

충격적인 결말과 그러한 결말을 뒤집는 반전도 영화와 잘 어울린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영화적 재미를 좀 더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판타지도 필요한 법이다. [피부를 판 남자]는 그러한 판타지를 선택했다. 만약 현실에서라면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가진 문신을 등에 새긴 샘이 살아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ISIS가 점령한 시리아에서는 더욱더. 하지만 영화에서는 알마든지 현실을 조작하고 살아남을 수가 있다. 이것이 영화의 힘이고, 관객이 영화를 보며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