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감독 : 패트릭 휴즈

주연 : 라이언 레이놀즈, 사무엘 L. 잭슨, 셀마 헤이엑, 안토니오 반데라스

무기력한 요즘에 필요한 영화

항상 이맘때쯤이면 나는 무기력증에 빠진다. 선선했던 날씨가 급작스럽게 더워지고 습도까지 올라가며 불쾌지수가 상한가를 기록하면, 나는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멍해지곤 한다. 지난 주말이 그러한 내 무기력증의 최절정이었다.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 먹는 것조차 귀찮더라. 지난 몇 개월 동안 꼬박꼬박 챙겼던 하루 만보 걷기도 지난 일요일에는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자는 동안 너무 더워서 숙면을 취하지 못해 월요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온몸이 찌뿌둥하기만 했다. 나는 이럴 때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바로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때마침 [킬러의 보디가드 2]가 지난주에 개봉을 했다.

2017년에 국내 개봉한 [킬러의 보디가드]는 나와 내 아들에겐 특별한 영화였다. 그 해 9월, 아들은 만 15세가 되며 드디어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이 선택한 첫 15세 관람가 영화가 바로 [킬러의 보디가드]였다. 당시 아들은 "닉 퓨리와 데드풀이 함께 나오는 영화를 어떻게 안 볼 수가 있겠어요."라고 주장하며 "총으로 사람 죽이는 영화를 굳이 봐야겠어?"라고 반대하던 아내를 설득했었다. 그게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참 감회가 새롭다. 후속편인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아들과 함께 볼 수가 없고(아들은 아직 만 19세가 되지 않았다.) 4년 사이 훌쩍 커버린 아들이 시험 기간이라며 [킬러의 보디가드 2]에 별다른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지만, 나는 4년 전의 추억을 회상하며 혼자 [킬러의 보디가드 2]를 관람했다.

확실히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내가 기대했던 영화이다. 캐릭터는 막무가내이고, 스토리 라인은 무진장 단순하다. 독특한 설정이 돋보였던 전 편과는 달리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전 편의 답습으로 독특함마저 잃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어차피 꼼꼼하게 따지며 볼 영화는 아니다. 편안한 자세로 아무 생각 없이 코미디가 곁들어진 막장 액션을 즐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나의 기대치를 더도, 덜도 말고 딱 알맞게 채워준 영화이다.

앙숙인 두 남자는 왜 또 손을 잡게 되었는가?

[킬러의 보디가드 2]를 이야기하기 전에 간단하게 전 편을 복습해보자. 우아한 나날을 보내던 A급 보디가드 마이클 브라이스(라이언 레이놀즈)는 일본인 의뢰인을 지키지 못한 탓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다시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그에게 2년 만에 기회가 찾아온다. 최악의 독재자 두코비치(게리 올드만)의 기소를 위해 킬러 다리우스 킨케이드(사무엘 L. 잭슨)의 증언이 필요한 인터폴이 마이클에게 다리우스의 보디가드를 맡긴다. 문제는 다리우스가 2년 전 그의 이력을 한순간에 망가뜨린 일본인 의뢰인을 저격한 킬러라는 것. 성격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던 마이클과 다리우스는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며 임무 완수를 위해 손을 잡는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다리우스 보디가드 건이 끝이 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마이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다리우스 건만 끝나면 예전처럼 다시 A급 보디가드의 명예를 되찾을 줄 알았던 마이클.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결국 심리상담사의 조언대로 보디가드 일을 잠시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다리우스의 아내인 소니아 킨케이드(셀마 헤이엑)가 느닷없이 나타나 다리우스가 납치되었다며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한다. 또다시 예전의 악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이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소니아는 막무가내로 마이클을 끌어들이고, 다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인터폴 바비 오닐(프랭크 그릴로) 요원의 정보원을 죽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인터폴의 비밀 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번 2편의 악당은 그리스 출신 거물 사업가 아리스토텔레스 파파도 폴로스(안토니오 반데라스)이다. EU가 그리스에 대한 경제 제재를 결정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를 제외한 유럽의 경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테러를 계획한 것. 마이클은 다시 A급 보디가드가 되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다리우스와 소니아는 사면을 받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아리스토텔레스와 맞서기로 결정한다.

1편에서 미친 존재감을 발휘한 소니아의 부각

확실히 1편은 재미있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전형적인 캐릭터인 킬러와 보디가드를 조합하고, 여기에 B급 유머를 난무하며 두 남자의 미친 브로맨스까지 등장하니 영화를 보는 내내 '하하 호호'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가 2편까지 필요할까?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킬러의 보디가드] 자체가 영화의 내용이 아닌 캐릭터의 향연으로 영화적 재미를 추구한 영화이다 보니 2편이 만들어진다면 캐릭터의 향연에 의한 재미가 반감될 것이 분명했다. 처음엔 신선했지만 두 번째는 아무래도 식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 중요한 것이다.

일단 [킬러의 보디가드 2]가 내민 카드는 소니아이다. 물론 소니아가 새로운 캐릭터는 아니다. 이미 1편에서 감옥에 갇힌 다리우스의 아내로 출연하여 다리우스와 닭살 돋는 로맨스를 펼쳤었다. 하지만 2편에서는 그 비중이 마이클과 다리우스 급으로 확장되었다. 애초에 마이클을 또다시 사건에 끌어들인 것도 소니아이다. 영화 내내 소니아는 맹활약하는데, 마이클과 시중일관 티격태격하는 다리우스와는 달리 마이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다리우스와는 불임 문제로 불화를 겪기도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는 과거의 악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결국 [킬러의 보디가드 2]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하나 고르라면 마이클 브라이스도, 다리우스 킨케이드도 아닌, 단연 소니아 킨케이드라고 할만하다.

1995년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데스페라도]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셀마 헤이엑은 이후 [포 룸], [황혼에서 새벽까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등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를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그러한 셀마 헤이엑의 매력이 집대성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클을 못마땅해하는 다리우스와는 달리 마이클이 가지고 있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그를 보듬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면모는 마이클, 다리우스의 브로맨스와는 다른 마이클과의 새로운 케미를 완성시킨다. 특히 영화 후반부 입양 장면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미친 재미를 안겨준다. 아! 진정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원제 그대로 [킬러의 아내의 보디가드]로 개봉했어야 했다. 그만큼 킬러의 아내인 소니아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화적 재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불쌍한 마이클 브라이스한테 왜 그래?

소니아가 전편과 비교해서 비중을 늘리며 [킬러의 보디가드 2]의 전체적인 재미를 끌어올렸다면 마이클의 아버지이자 전설적인 보디가드인 마이클 브라이스 시니어(모건 프리먼)는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로 전편과는 차별화된 [킬러의 보디가드 2]만의 재미를 선사한다. 모든 계획이 엉망진창으로 꼬이자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집으로 향한 마이클. 그곳에서 시니어는 마이클을 다정하게 안아주고, 과거 마이클의 트라우마를 소니아와 다리우스에게 설명해 주며 마이클의 캐릭터를 더욱 단단하게 구축하는데 한몫을 해낸다.

하지만 거기까지 했어야 했다. 여든 살을 훌쩍 넘긴 모건 프리먼은 최근 개봉한 액션 영화 [뱅퀴시]에 출연할 정도로 아직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관객을 휘어잡고 있다. 그러한 모건 프리먼이 인종의 차이를 넘어 라이언 레이놀즈와 부자 관계로 나온다는 것부터가 신선했다. 다리우스에게 소니아라는 새로운 파트너가 생겼으니 마이클에게도 아버지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생긴다면 어느 정도 공평할 것만 같았다. 이미 [킬러의 보디가드]에서 마이클의 전 애인으로 등장했던 아멜리아 루셀(에로디 영)이 2편에선 흔적도 없이 지워졌으니 마이클에게 이 정도 혜택을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끝까지 마이클에게 매정했다. 영화가 끝나고 다리우스와 소니아가 신혼여행을 즐기는 동안에도 마이클은 그 사이에 끼어서 고통을 받는다. [킬러의 보디가드]에서도 그랬지만, [킬러의 보디가드 2]에서도 여전히 마이클이 가장 불쌍하다. '우리 불쌍한 마이클한테 도대체 왜 그래?'라며 감독에게 따지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이것 또한 이 영화의 독특한 재미이기도 하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억울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영화를 보는 나는 '킥킥'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으니 마이클을 학대하는 감독의 악취미가 관객인 나에게도 전이된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만약 3편이 만들어진다면 우리 불쌍한 마이클에게도 운명의 짝을 안겨줘 더 이상 억울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킬러의 보디가드'는 21세기의 '리쎌 웨폰'이 될 것인가?

리처드 도너 감독이 1987년에 연출한 [리쎌 웨폰]이라는 영화가 있다. 은퇴를 앞둔 노 형사 로저 머터프(대니 글로버)에게 아내를 잃은 후 더욱 거칠어진 문제적 경찰 마틴 릭스(멜 깁슨)가 새 파트너가 되며 벌어지는 액션 버디 무비로 지금까지도 내게 최고의 액션 영화로 기억이 되는 영화이다. [리쎌 웨폰]은 1998년 4편까지 제작이 되었고, 속 편이 만들어질 때마다 로저와 마틴의 대환장 팀에 새로운 멤버가 하나씩 늘었었다. 조 페시, 르네 루소, 크리스 록 등 [리쎌 웨폰]에 새롭게 합류한 멤버의 면면도 굉장히 화려했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객에게 사랑을 받을 수가 있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를 보며 [리쎌 웨폰]이 떠올랐다. 대니 글로버와 멜 깁슨이라는 흑백 콤비, 그리고 성격이 180도로 다른 두 캐릭터의 브로맨스까지. 충분히 [킬러의 보디가드]는 21세기의 [리쎌 웨폰]이 될 자격이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리쎌 웨폰]이 그랬던 것처럼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매력적인 새로운 멤버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 3편이 만들어진다면 아멜리아의 복귀를 강력하게 희망해 본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다.

이 영화에는 총 두 개의 쿠키영상이 있다. 첫 번째 쿠키영상은 다리우스와 소니아의 신혼여행에서 여전히 고통을 받는 마이클의 억울한 표정이다. 두 번째 쿠키영상은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나서 나오는데, 상영관의 모든 관객이 나가고 나 혼자 남아 두 번째 쿠키영상을 확인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일당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미끼로 동원된 인터폴 요원에 대한 추모이다. 솔직히 엑스트라로 잠깐 나왔다가 사라져버린 캐릭터에게까지 쿠키영상을 통해 이런 추모를 보내다니 과연 '킬러의 보디가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