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이 누구인지 모르고 봤다가 '켄 로치'라는 걸 알고 참 오랫만에 듣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좌파(??)감독이라는 별칭을 아마도 한국에서만 쓰지 않았을까한다. 그만큼 사회 고발적인 내용을 영화로 많이 만들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실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아무래도 판타지를 원한다. 현실을 잊기 위해서다. 현실이 힘든데 영화까지 보며 힘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거꾸로 영화의 힘은 대단한다. 여러 사람이 요구하고 외쳐도 전혀 변경되지 않는 것이 영화같은 매체를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대략 알고는 있지만 그걸 내 눈 앞에 펼쳐진 내용으로 보게되면 의식이 전환되고 무엇인가 움직일 힘을 갖는 것이 아닐까한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연결된 '너는 할 수 있어!' 그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만 불평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일견 틀린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겐 틀렸다.
참으로 이중적인 모습일지라도 어른의 이야기를 들으면 요즈음 젊은이들이 너무 나약하고 게으르다. 과거처럼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른들이 노동력 착취만 하려하고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며 지시만 한다. 이렇게 양 쪽의 이야기를 들으면 각자 하는 이야기가 맞다. 이러니 중심을 잡기 힘들다. 누구 말이 맞고 틀리고 문제는 분명히 아닐텐데 너무 그쪽으로 몰아가다보면 둘 중 하나가 손해를 봐야하는 현상이 생긴다.
영화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이 약해 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치의가 그런 판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담당자가 일할 수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은 다니엘이 심장이 어떠한지에 관심없다. 구직해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그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전혀 말이 먹히지 않는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는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후 다니엘이 겪는 일을 보여준다.
그는 지금까지 컴퓨터를 써 본 적이 없다. 전화를 해도 1시간 넘도록 연락도 되지 않고 기계음만 반복적으로 기다리라고 한다. 겨우 연결되면 현재 담장자가 없으니 연락을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더구나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신청하라고 한다. 인터넷은 커녕 컴퓨터도 하지 못한다. 순간적으로 컴퓨터도 못하다니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보면 당연하다. 나이 먹어 혼자 살고 있는 다니엘은 컴퓨터 없이 잘 살았고 딱히 컴퓨터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컴퓨터는 별 것 아니지만 무엇인가 배운다는 점을 넘어 현재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다. 현대에서 컴퓨터는 필수다. 없으면 많은 것들을 쫓아갈 수 없다. 너무 당연하게 무의식적으로 썼던 컴퓨터였는데 영화를 보며 그렇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도 컴퓨터가 없는 많은 집이 있다. 이들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도 소외된다. 인터넷으로 무엇을 신청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에 도태된다.
어디를 가나 그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담당자들은 - 공무원으로 썼다 변경했다. 모든 공무원은 아니니 - 그를 어떻게하든 보조금을 받으려 하는 사람을 본다. 구직활동을 하라고 해 어쩔 수 없이 이력서를 돌려 한 군데서 연락이 와 못한다고 하니 사장은 당신때문에 내 아까운 시간을 버렸다며 화를 낸다. 그렇게 분명히 이런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다. 이게 꼭 다니엘의 문제인지 사회구조적인 문제인지 따져볼 문제기도 하다.
그가 우연히 만난 캐티(헤일리 스콰이어)는 약속보다 늦어 미팅이 취소된다. 그는 런던에 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뉴캐슬로 왔다. 연고도 없는 곳이다. 우리가 볼 때 국가에서 저렇게 지원을 해 주는구나라고 부러워할 수 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보내버린다. 그저 집만 주고 거기서 알아서 살으라고 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자녀를 위해 자신이 먹지 못하고 준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이 뒤집혀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체면이 우선이 아닌 생존이 우선이 상황이 된다.
캐티는 계속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전기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 거주한다. 겨울이다. 먹고 살아야 한다. 두 아이를 굶길 수 없다. 몸 파는 제안을 받는다. 그는 결국 받아들인다. 그걸로 아이들을 키우며 먹고 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무엇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 노력하라고 말만 하지 말고. 이런 노력도 노력이다. 여기서 더 버틸 수 있었을까. 혼자도 아니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데. 그렇게 우리 이웃은 지극히 평범하고 살기 위할 뿐이다.
다니엘은 노력한다. 심장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 구직활동이라도 해야 보조금이 나온다. 어정쩡한 구직활동은 용인되지도 용납하지도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놀고 먹는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상대방의 상황과 처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눈에 보이는 것만 갖고 판단한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나 독서다. 이게 별 것 아닌듯해도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고 무엇인가 움직이게 만든다.
생각이란 그렇게 사람을 변화시킨다.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현실적으로 젊지도 않고 두 아이를 데리고 있어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둘 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했지만 이마저도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화에서 아마도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사람이 가장 인간답게 다니엘과 캐티를 보살핀다. 왜 우리는 힘있는(?) 곳에 있는 자들이 그렇게 할 수 없을까.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해야 해서. 뷁~!!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장면 : 벽에 이름 새기는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