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모르게 색깔에 대한 차별이 있다. 이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내 뇌리에 들어온 개념이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들어온 개념이 참 무섭다. 의식을 할 때는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어떤 생각을 한 후 스스로 놀라게 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 흑인은 아메리카 흑인이다. 과거에는 흑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드라마 <뿌리>에서 나온 표현인 검둥이다.

미국에서는 니그로라는 표현을 쓰는 걸로 아는데 이 표현이 변하면서 지금은 흑인이라는 표현과 'Black"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인종적 차별이 있다. 솔직히 백인은 자주 보지만 흑인은 쉽게 접하지 못하니 길거리에서 보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듯하다. 미국에서 살아 본 적도 없고 여행 가 본적도 없지만 다양한 책과 영화, 드라마로 접한 흑인의 삶은 결코 꽃길이 아닌 완전히 흙길이다.

우리가 흙수저라는 표현을 하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들의 삶과 비교하면 금수저다. 왜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냐고 말하면 그 질문 그대로 이미 그 자체가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것인데 왜 꼭 나보다 잘 한 사람과 비교하고 못한 사람은 비교하면 안 되는가. 얼마전 책 리뷰에도 썼던 것처럼 흑인 중 남자는 더더욱 어려운 삶이 펼쳐진다. 이건 단순히 동기부여를 하고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해도 아무런 개선이 될 수 없다.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개선이 되지 않으면 힘들다.

여기서 또 하나는 바로 인식의 전환이 아닐까. <문라이트>는 아마도 전형적인 미국의 남성 흑인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한다.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삶을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환경은 우리 눈에는 말도 안 된다. 주변에 마약을 판매하고 그런 동네에서 생활한다. 그저 어리기 때문에 그런 것에 손을 대지 않을 뿐이다. 아이들은 그저 순진무구하게 자기들끼리 잘 논다. 여기서도 흑인끼리 문제도 있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힌다. 어쩌면 유일한 놀이일지도 모를.

영화는 세 파트로 나뉜다. 샤이론은 어릴 때 리틀로 불린다. 그를 우연히 후안이 발견한다. 후안은 젠틀하고 건들거리지도 않고 아주 모범적인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지마자 나온 후안은 동네에서 마약상들의 우두머리다. 약을 공급하고 돈을 받으며 관리한다. 사업으로 마약을 거래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 누구보다 더 멀쩡한 흑인이다. 그는 리틀을 돌보고 올바른 길로 가게 보여준다. 우리가 아는 마약상이 결코 아니다.

리틀은 이제 사춘기가 되어 샤이론으로 불린다. 그는 여전히 학교에서 왕따 비슷하다. 엄마는 마약에 찌들어 있고 딱히 수입은 없어 보인다. 학교에서 좀 노는 친구들은 늘 샤이론을 놀린다. 그는 호모라고 불리며 수업 중에도 대 놓고 놀리고 선생은 잠시 지켜보다 말릴 뿐이다. 너무 괴롭히는 그 친구를 더이상 참지 못하고 샤이론은 수업 중에 폭력을 휘두른다. 그는 즉시 경찰에 체포되어 연행된다. 이제 다시 시간이 지나 그는 현재 예전 후안이 했던 마약 중간 공급책 역할을 한다.

여전히 그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격은 여리고 누구를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술도 하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마약상을 하고 있다. 친구는 감장에 갔다 와서 식당에 일을 한다. 그가 이야기한다. '모든 검둥이들이 그렇듯이 감방에 갔다 왔다'고. 이게 바로 미국 흑인 남성의 현실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자기들끼리 또다시 양육강식을 만들뿐이다.

아마도 교육은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끝까지 고등학교를 마친 학생도 드물고 고등학교를 마쳐도 수많은 대학교를 다닌 백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그저 허드렛일이다. 우리가 익히 갖고 있는 선입견이 잘못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모든 흑인이 마약에 쪄들어있고 총질하며 살지 않는다. 그들은 선택할 것이 없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살고 있다.

영화는 계속 최대한 접근해서 촬영을 한다. 바스트 숏으로 인물을 보여준다. 어지간해서는 멀리서 인물을 담지 않는다. 철저하게 근접촬영이다. 주변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시야가 없다. 오로지 눈 앞만 보고 살아갈 뿐이다. 인물끼리 대화를 할 때도 근접 촬영이고 움직일 때도 등위에서부터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내일이 없다. 오로지 오늘만 살아갈 뿐이다. 음식점을 근무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평범한 삶이다.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니 흑인에게 무엇이라 하는 것은 잘못된 손가락질이다.

영화는 딱히 감정적이지 않다. 냉정하고 그저 리틀이자 샤이론이며 흑인남성의 삶을 보여준다. 그가 선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유일한 선택은 오기를 갖고 자신을 괴롭힌 아이을 의자로 때린 것 정도였다. 이런 삶을 살아가지만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는다. 영화는 내내 흑인만 나온다. 마지막에 가서 평범한 삶을 보여줄 때 (꿈꿀때) 겨우 백인이 나온다. 철저하게 분리된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영화는 브래드피트가 제작했다.

브래드피트는 <노예 12년>도 그렇고 의미있는 영화를 참 많이 제작한다. 이 영화도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면 흑인의 삶에 대해 알게된다.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삶이 아니다. 운 좋게 한국에서 태어나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미국에서 태어난 것은 운이 좋았던 것이지만 거기서 흑인으로 태어난 것은 어떤 의미일까.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이 눈 앞에 보이는 데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영화가 너무 조용히 사라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장면 : 리틀, 샤이론이 혼자 걷는 장면(자주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