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른 것일까.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각자 문화와 생활환경과 다양한 이유로 서로 다르긴 해도 갈수록 도시화된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과거에 유럽영화를 보면 지루하고 무엇인가 철학적인 함의를 담으려 하는 것은 알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인상이었다. 흡사 미술 작품을 볼 때 그저 난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을 집중하고 싶었지만 해석을 봐야 이해한다는 점이 싫었다.

유럽 영화를 볼때도 그랬다. 무엇인가 의미가 있고 그걸 찾아가며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별로였다. 시간이 지나며 한국에 개봉되는 유럽영화는 오락성과 재미를 추구하며 이제 전 세계적으로 영화는 과거와 달라졌다고 난 판단했다. 여전히 작품성 영화들은 있지만 거의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은 전 세계가 단일 생활권이 되며 비슷해진 이유라 봤다. 헐리우드 영화나 한국 영화나 큰 차이를 이제는 느끼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유럽 영화를 2편 봤다. 유럽 영화라고 하면 아무래도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화다. 워낙 과거부터 작품성 있는 영화가 많이 출품되었고 예술영화의 본산같은 느낌인 곳이다. 전부 과거보다는 이해하기 덜 어렵고 난해하지 않지만 여전히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걸 알았다. 내 수준이 낮다보니 그런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참으로 단순구조다. 별 내용도 없다. 반전도 없고 흥미진지하거나 긴장된 장면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무미건조하고 따분하고 지루하다. 영화 시작과 함께 아들이 죽는다. 이 장면은 난 놓쳤다. 아들이 죽었는지 전혀 몰랐다. 영화가 진행되며 전체적인 뉘앙스가 그렇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온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는 대부분 장면에서 적막이 흐른다. 의도적이진 몰라도 주택은 엄청 크다. 공간이 넓어 휑한 느낌이 계속 든다. 일부러 카메라는 부감쇼트처럼 멀리서 찍는다.

공간을 더 확장하고 캐릭터를 더 초라하게 보여준다. 아들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죽었다. 초반 몇 분 동안 거의 대사도 없고 음악도 없고 화면은 느릿하게 움직인다. 그저 넓디 넓은 공간만 계속 보여줄 뿐이다. 아들의 사망을 모르는 여자친구에게 부활절 때에 맞춰 아들이 올 것이라 거짓말을 한다. 잔(루 드 라쥬) 아들에게 남기는 음성 메시지를 들으며 안나(줄리엣비노쉬)는 둘 사이를 유추한다.

도대체 왜 안나는 잔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죽음을 알리는 것이 더 슬픈일일까. 분명히 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다. 그것이 아들이 죽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커다란 동기는 된 듯하다. 잔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평생 상처가 되어 남을까. 차라리 잔에게 아들이 더이상 사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상처를 덜 입히는 것일까. 더이상 만날 수 없는 대상이 되는 것과 내가 잊어 만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안나가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안나는 아직까지 아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죽었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잔을 집에 계속 머물게 한 이유는 아들의 흔적을 아직도 그릴 수 있고 떠나보내기 싫어 그런 것은 아닐까. 부활절이 되었지만 오지 않는 아들을 이상하게 여기자 안나는 잔에게 네가 싫어 오지 않는 것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잔이 받은 상처는 어떤 것이 더 큰지 잘 모르겠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엄마가 아들을 잊는 시간을 갖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죽은 사람을 보내고 남은 사람들이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일까. 자세히 모르겠다. 영화는 중간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계속 음악도 흐르지 않고 대사도 없고 그저 화면만 보여준다. 마지막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잔과 그를 안아주는 안나. 이로써 모든 상처는 치유되고 둘은 각자 남은 자로써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일까. 사실, 그런 것이 없어도 남은 자는 남은대로 잘 살아간다. 가끔 문득문득 떠올라 힘들긴 해도.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도 되고 상도 받은 작품이다. 난 모르겠다. 왜 유럽영화는 그럴까. 그저 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겠지. 그러니 상까지 받으며 사랑받는 것이겠지. 그렇게 유럽 영화를 한 편 봤다.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장면 : 안나가 잔을 훔쳐보는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