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숨을 잃을 뻔한 그날 밤 이후 꿈에서 한 남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그 꿈에서 시작되었다 "
< ▲ 1983년 1월 1일, 새해를 맞아 보신각 타종식에 온 여인 '지환'(조정석)과 '윤정'(임수정)
이 곳에서 지환은 윤정에게 청혼했고, 윤정은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
<시간이탈자>는 어떤 영화인가? <시간이탈자>는 최근의 드라마 [시그널]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들이 활용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품으로 <비오는 날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싸이보그 그녀> 등을 연출한 곽재용 감독의 신작입니다. 영화에서 과거의 남자 '지환'은 조정석이, 현재의 남자 '건우'는 이진욱이, 과거의 여자 '윤정'과 현재의 여자 '소은'은 임수정씨가 연기합니다.
여러 작품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가 됐던 '시공간을 초월하는 관계'
<시간이탈자>는 차별화를 위해 '꿈'이라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합니다
< ▲ 과거의 두 사람 '지환'(조정석)과 '윤정'(임수정) >
오로지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공간을 초월하는 관계'는 그동안 여러 작품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가 됐었던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자면 <프리퀀시>나 <동감>같은 작품에서는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이들이 대화를 나눴고, <시월애>는 우편함을 통한 편지를 통해 교감했으며 최근에 개봉한 <더 폰>은 그 제목처럼 전화기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통로가 됐었던 것이죠. 이러한 설정은 비단 영화뿐 아니라 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싸인]과 [시그널]과 같은 작품에서도 취했던 것인데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기 때문에 이는 분명 양날의 검과도 같은 소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소재라는 점이 긍정적인 요소라면 <더 폰>이 그랬던 것처럼 익숙한 이야기의 반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위험요소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시간이탈자>는 차별화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조금은 다른 방식을 활용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는데, 영화가 취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통로는 바로 '꿈'이었습니다.
1983년과 2015년의 1월 1일, 32년의 텀을 두고 비슷한 사고를 당하게 되는 두 남자
똑같이 위험한 고비를 넘기게 된 두 사람은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 ▲ 현재의 두 사람 '소은'(임수정)과 '건우'(이진욱) >
1983년 1월 1일과 2015년 1월 1일이라는 32년의 텀을 두고 비슷한 사고를 당하면서 같은 병원으로 가게 되는 '지환'(조정석)과 '건우'(이진욱), 두 사람은 새해가 시작되던 날 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는 위험한 고비를 넘긴 뒤로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1983년의 지환은 2015년을 살고 있는 건우의 일상들을 꿈으로 보기 시작하고 2015년의 건우는 1983년을 살고 있는 지환의 일상들을 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인데 처음엔 그런 꿈을 딱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1983년의 꿈속에 등장했던 여인 '윤정'(임수정)과 똑같은 모습의 여인이 2015년에도에는 '소은'이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을 알게되면서 건우는 그 꿈에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과거의 그녀가 첫 희생자가 되는, 하지만 현재에는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1983년의 지환 역시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닥쳐올 비극을 막으려고 합니다.
스릴러의 느낌이 나는 수사극, 피튀기는 슬래셔물, 그리고 운명적인 사랑
다양한 장르의 모습을 취하고 잇는 영화 <시간이탈자>
< ▲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뒤 '지환'과 '건우'는
꿈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보기 시작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이 됩니다 >
이처럼 <시간이탈자>는 이런 설정의 많은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사건'이 큰 밑바탕이 되는 영화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 사건을 파헤쳐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는 다분히 스릴러의 느낌이 나는 수사극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잔인한 살인 사건과 살인범의 정체를 마치 묻지마 살인극 같은 슬래셔물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에 공통적으로 연결되던 여자 윤정&소은의 존재를 통해 영화는 운명적인 사랑이야기까지 버무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과 그 사랑이 이어지는 현재의 이야기가 마치 '윤회'의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슬픈 사랑의 완성을 담아내려 하고 있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렇게 장르가 혼합되고 있었던 <시간이탈자>는 그 어떤 장르적인 매력을 제대로 표출하진 못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그다지 밀접하고 치밀하게 보이지 않는 수사극
억지로 이어지고 끼워맞춘 것 같은 작위적인 느낌까지..
< ▲ 그리고 그렇게 연결되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연인의 죽음을 막아야만 했는데.. >
우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수사극'은 그다지 밀접하고 치밀하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는 다른 시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그 사건의 본질을 찾아가고 과거를 바꿔가는 재미가 큰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탈자>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이 되는 '수사'는 그저 억지로 이어놓고 끼워맞춘 것 같은 작위적인 느낌까지 드는 것이죠. 그렇다보니 과거의 변화로 인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 과정도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더군요. 이것은 과거와 현재가 직접적으로 소통이 가능했던 <프리퀀시> 같은 작품과 달리 '꿈'이라는 다소 모호한 연결 통로와 그 꿈을 '아바타'에게 내리는 지령처럼 활용하고 있었던 어색함에서 비롯된 아쉬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방독면' 하나만 있으면 신출귀몰하고 치밀한 연쇄 살인범?
낡고 어설픈 느낌의 슬래셔물, 문제 풀이해주듯 쭉 풀어버리는 전개 역시 별로네요
< ▲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그다지 치밀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영화 '시간이탈자' >
게다가 그 사건의 본 모습, 그러니까 무려 10건에 가까운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그 연쇄 살인마의 살해 동기에서 비롯하여 살해 수법 등에서도 의문이 남습니다. 무척이나 어설프게 느껴지던 그가 어떻게 그 오랜 기간 잡히지 않았던 것인지, '방독면' 하나만 있으면 신출귀몰하고 치밀한 연쇄 살인범이 되는 것인가요? 때문에 '묻지마 살인'이 떠오르는 슬래셔의 느낌이 드는 영화였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낡고 어설픈 느낌이 들며 스스로 문제 풀이를 하듯이 쭉 서술적으로 풀어버리는 전개 역시 구닥다리 스릴러의 모습으로 느껴지더군요. 게다가 영화속 대사들이 다소 유치하고 오글거리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상당히 어색하게 보이는 캐릭터도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이끌어가는 공통적인 동력은 바로 '사랑'
하지만 그 감정의 농도가 그다지 짙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부실한 동력을 장착한채 달리게 되었고 때문에 삐걱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 ▲ 언뜻 보고 멱살잡고 있는줄... 영화의 동력이었던 '사랑'의 감정 역시 짙은 농도로 그려지지 못합니다 >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멜로'입니다. 윤정을 지켜주지 못했던 과거 '지환'의 슬픔과 소은을 지켜주고 싶은 현재 '건우'의 마음이 합쳐지고 있었던 '지극한 사랑'이라는 클래식한 감정을 담아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던 <시간이탈자>는 그 감정이 '과거'와 '현재'를 이끌어가는 공통적인 동력이 되지만, 두 시대 모두 감정의 농도가 짙어지기 전에 빠르게 '사건'을 진행시켜버리면서 그 감정들이 온전히 와닿지가 않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한정된 러닝타임 내에 그 사랑의 감정과 사건을 모두 다 온전히 묘사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언급했듯이 영화의 동력이었던 그 감정들이 온전히 묘사되지 못한 채, 즉 다소 부실한 동력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다보니 영화는 다소 삐걱거리게 느껴질 수 밖에 없더군요. 때문에 여러가지 장르적인 장치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 <시간이탈자>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