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이 모두 소심하진 않지만 나는 예민해서 더 소심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별 걸 다 걱정하는 사람. 아니라고 부정해보기도 했지만 나의 과한 걱정을 증명하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니 이젠 받아들이는 편이 자연스럽다. 다른 사람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점은 대부분 강한 자의식과 연관이 있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일이 저 사람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했던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남들에겐 별 일 아닐 부분을 내 입장이라는 촘촘한 체로 걸러내다보면 부정적인 면까지 죄다 고려하게 된다. 결국은 화내지 않고 넘어갈 부분까지 화를 내며 안 받아도 될 상처도 종종 받는다.
그렇게 해봐야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알지만 어디 성격이 쉽게 바뀌랴. 사회에 부딪히며 내가 편한 쪽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하루하루 배워보지만 화내지 않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일본과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들이 많이 공감한다는 마스다 미리 역시 비슷한 처지인 모양이다. 싫은 걸 싫다고 말은 못 하면서도 속으로 이것저것 매일 같이 화를 내는 보통 사람. 조금 차갑게 굴었다 싶으면 괜히 미안해져서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또 후회하는 평범한 사람. 그녀의 자잘한 이야기들은 매일 내가 품는 화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나와 닮은 그녀의 화를 보며 웃음이 날 때마다, 내 화도 웃어넘길 만한 일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입을 삐죽 내밀고 고심하던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차분한 마음으로 되짚어진다.
마스다 미리는 말한다. 슬픔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렇게 대단한 화는 아니라고. 애지중지 키우던 고양이의 무덤이 파헤쳐졌을 때 어린 소녀였던 그녀의 화에는 슬픔이 있었고, 그 화는 갈 곳이 없었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슬픔이 있을 땐 화를 내지 않는 게 오히려 부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갈 곳 없는 화가 마음속에만 있을 때 이내 병이 되고 마는 것 아닐까. 다행히 마스다 미리의 일상처럼 내 일상에도 슬픔이 있는 화는 많지 않고, 그녀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불만과 화를 듣는 게 그리 싫지도 않다. 오히려 유쾌하다. 공감하는 내게 있는 화가 사그라드는 느낌도 들고. 슬픔이 있는 화는 반드시, 또 그렇지 않은 화도 소소하게, 과하거나 반복하지 않는다면 화를 조금 풀어놓고 사는 게 늘 못난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걸, 저렇게 반론했으면 좋았을걸.
머릿속으로 분노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면, 화가 하늘까지 닿을 듯한 꽈배기엿처럼 길어져서 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그나마 속 편한 화다.
화뿐인 화는 구원받을 수 있다.
가장 괴로운 화는 '슬픔'이 들어 있는 화다.
나는 잠 못 이룰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자신에게 언제나 질문한다.
"그 화에 슬픔은 있니?"
슬픔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렇게 대단한 화가 아니다. (6쪽)
화를 내는 사람은 결국 손해다. (31쪽)
나는 잘 모르겠다.
출신 학교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를 얘기하는 것으로 자기 집이 부자임을 과시해서 얻는 메리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 (12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