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봉 로망 Au Bon Roman (좋은 소설이 있는 곳)'. 이런 서점이 어딘가에 실제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서점이든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그런 책이 아니라 너무 좋은 소설이지만 주목받지 못한채 세월을 보내고 있는 작품들을 골라내어 내놓는 서점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프란체스카와 이방을 얼마나 응원했는지 모른다. 그 동안 서점에 걸려있는 베스트셀러의 순위가 논란이 되어온 것이 여러차례다. 첫 화면에 노출되려면 얼마의 금액을 지불해야하고, 베스트셀러로 추천되려해도 돈이 필요하다 했다. 정말 많은 이들이 읽고 좋다고 느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게 아니라, 돈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얘기다. 사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점은 참 많이 느꼈더랬다. 물론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보는 사람의 관점의 따라 느끼는 점이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한번씩 어떻게 이 책이 베스트셀러일까 하는 생각을 몇차례 한 적이 했었다. 정말 베스트셀러에 올라갈만하다 여겨지는 책도 있었지만, 어떤 책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럴때면 정말 돈주고 저 자리를 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겠지만. =-=a 그래서 난 베스트셀러의 순위라던지, 서점의 추천은 잘 믿지 않는다. 주변 지인의 추천을 더 믿는 편이다.
정말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이 책의 시작은 어쩌면 이 물음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이방과 프란체스카는 일반적으로 널려있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잊혀진 혹은 잊혀져가고 있는, 알려지지 못한 소설들 중에서 '좋은 소설'을 추리고 추려 목록을 만든 후, 그 소설들만 취급하는 서점을 오픈한다. 추려진 목록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8인 작가로 구성된 '좋은소설위원회'의 추천 목록을 만들어졌다. 까다롭고 열정적으로 자신들만의 이념을 가지고 서점을 오픈한 이방과 프란체스카. 우연한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이 만들어낸 이 서점은 개점과 동시에 소설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프란체스카의 남편 둘트르몽의 예상과 달리 서점은 순풍을 단듯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되어갔다. 인터넷을 통한 입소문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급기야 여러 매체들에서 인터뷰 요청도 쏟아졌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를 시기하는 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절대 그 누구도 알리 없는 8인의 좋은소설위원회 작가들이 차례대로 의문의 사고를 당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사고를 당하기 전 '좋은 소설'에 관한 조소가 담긴 말을 듣는다. 그리고 이방과 프란체스카에게는 갖은 비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롱 섞인 기사들이 연달아 나오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통해 '좋은 소설'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일들. 누가 왜 이들에게 위협을 가하는걸까? 이방과 프란체스카는 직면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가들은 자신들의 책,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서점에 비치되어 있지 않은 점을 불쾌하게 여겼고, 출판사들은 자신의 출판사 서적이 서점에 비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독자들의 선택의 폭을 좁히는 거라 항의한다. 좋은 소설만 취급하고자 노력하지만, 이런 이들의 불만은 두 사람을 참 힘들게 했다. 문제제기 자체는 이 서점에 좋은 아이디어 혹은 놓치고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해줄 고마운 지적일 수도 있지만, 작가 혹은 출판사들의 행태는 그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일임이 분명해보였다. 좌절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의 지지와 응원 속에 오 봉 로망은 신념을 굳세게 지켜나갔다. 그 모습이 참 예뻐보였고, 멋있었다. 정말 이런 서점이 있다면, 내가 그 서점의 팬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시간이 날때마다 들락거리며 행복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이런 서점을 발견한다면, 당장 제보해주기를. 그 즉시 달려가 비치되어 있는 책들 속에 파묻혀보겠다.
문학은 쾌락의 원천이고 보기 드물게 마르지 않는 기쁨의 하나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요. 문학이 현실과 분리되면 안 돼요. 그게 핵심이에요. 그래서 난 절대로 '픽션fiction'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요. 삶의 미묘하고 섬세한 것들이 모두 다 문학의 소재잖아요. 할아버지는 강조하셨어요. 너, 내가 소설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소설에는 예외적인 상황, 생사의 선택, 거대한 시련만 있는 게 아니란다. 가장 추한 것과 가장 고결한 것을 막론하고 인간의 모든 태도와 행동이 그 안에 있지.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생각하지.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그건 마땅히 가져야 할 물음이란다. 내 말을 새겨들으렴. 소설을 읽는 것도 인생을 배우는 하나의 방법이란다. 다른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고, 문학과 삶은 다르다고, 소설 나부랭이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할 테지. 그 사람들이 틀렸단다. 문학은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단련시켜준단다. - P. 185
아주 속시원한 문장. 누군가 소설책만 본다고 하면, 배울 것 하나 없는 그런 책은 왜 보냐는 듯한 말을 하거나 눈빛을 보인다. 그럴때면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책을 얼마나 읽으십니까?' 하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소설도 문학의 일종이고 그 안에서 배울거리도 충분히 있다. 어떤 책이든 그 안엔 작은 하나라도 배울 점이 분명 있다. 앞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 문장을 들이밀어줘야겠다. 그리고 책 좀 읽어보고 이야기하라고 말해야겠다. 서점을 둘러싼 독특한 발상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책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