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친절한 금자씨>

'대중'을 배제한 '박찬욱'만의 세계

★★☆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감독 두명을 뽑으라면, 많은 영화 팬들이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을 언급하죠. 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봉준호의 디테일함과 박찬욱의 기교를 정말 좋아합니다.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쳐 다 보지 못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감상하였습니다. 사실 <친절한 금자씨>는 이미 한번 감상했다가 엄청난 실망감과 함께 런닝타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꺼버린 작품이지만, 박찬욱 감독의 대부분 작품을 아주 만족스럽게 감상하였고 특히 <스토커>의 여운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과감하게 <친절한 금자씨>를 재감상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영화는 빼어난 미모와 매력의 소유자인 "이금자"(이영애)를 주인공으로 두고있습니다. 금자는 꽃다운 스무살에 6세 유아를 납치해 살해하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게되죠. 13년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사로고, 출소날이 되자 자신이 13년간 갈아왔던 복수의 칼을 꺼내듭니다. 그 복수의 대상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백선생. 출소하자마자 이금자는 감옥에서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친구들과 재회하고, 이들의 도움으로 백선생에 대한 복수를 준비합니다.

'박찬욱'의 영화

흔히 박찬욱의 영화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감독들보다 사용빈도가 높은 '기교', 영화의 '선정성', 영화내내 울려퍼지는 '진지하면서도 암울한 분위기'가 대표적이라고 할수있죠. 이러한 박찬욱 감독의 특징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본인이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교들을 보여줍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미쟝센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의 전개되었던 사건을 소개하기 위해 회상씬을 사용하지 않고도 현재의 장면과 맞물린 과거의 사운드 만으로 표현한 장면이나, 장면전환에 있어 단순한 편집보다 씬과 씬을 맞물려 연출한 장면은 관객들에게 깊은인상을 심어줍니다.

어느 영화에서나 나타났던 진지하면서도 암울한 분위기는 이번에도 영화전체를 장악합니다. 다만 다소 우스꽝스러운 설정도 다소 등장해 실소정도 나올만한 약간의 웃음기가 암울함과 진지함에 뒤섞이면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비현실성이란 변명이 어디까지 적용되는가.

하지만 이 영화가 박찬욱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보여주었음에도 그다지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의 굴곡마다 지나치게 인물의 설득력 없는 설정을 남용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박찬욱의 영화가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으며, 박찬욱의 영화에 리얼리티를 논한다는거 자체가 어패일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리얼리티의 상한선이 어디까지 인가는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문제임과 동시에 감독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이냐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영화 중반까지 복수의 칼을 들고 백사장에게 향하는 금자의 발걸음에는 단 한순간도 장애물이 없습니다. 다소 무리한 설정임에도 내래이션에 설명되었듯이, 매력적인 금자니까, 이쁜 금자니까로 모든일이 능수능란하게 처리될 뿐입니다.

영화가 현실성을 배제한 스타일을 차용했다 하더라도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마주치게될 갈등과 문제들을 원래 이 영화는 비현실적이니까 괜찮아라는 안일한 변명으로만 떼워버린다면 영화가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겠죠.

난해한 주제의식

영화는 결말직전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이러한 국면은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주제의식을 비로소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전개이기는 합니다. 영화를 다보고 나면 "복수라는 것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나"나 아니면 적어도 "절대악인 백사장에 가려졌던 이금자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하는 아이러니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상황과 맞물려 직접적인 언급없는 지나치게 상징이나 간접적으로만 구체적인 주제를 드러내려고 한 시도는 오히려 영화를 너무 난해하게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찬욱의 세계를 강조하는 영화의 배우들.

이 영화의 배우들 역시 '박찬욱의 세계'를 거듭 강조합니다. 기존의 인물에 더해서 이 영화에는 많은 박찬욱의 배우들이 특별출연 하였습니다. 송강호, 신하균, 강혜정, 유지태까지.. 팬들 입장에서 많은 스타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나 이 역시도 너무 지나쳐서 영화를 작품적으로 바라봤을때 캐릭터의 지나친 소비라는 또다른 단점이 노출됩니다.

이러한 캐릭터의 소비는 기존의 캐릭터인 금자를 둘러싼 '교도소 동기'들이나 특별출연한 '송강호와 신하균'의 경우 지나쳐 보이기 까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