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봉 예정인 '파 프롬 더 매딩 크라우드'의 원작소설이다. <테스>의 저자 토머스 하디의 작품으로 그에게 처음으로 상업적 성공을 안겨다준 작품이기도 하다. 140여년이 넘도록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고 리메이크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이 러브 스토리는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고전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랑 이야기라는 점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이 갔다. 그리고.. 읽으면서 깨달은 진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사랑 이야기라도 난 고전하고는 잘 안 맞는구나.. 하는 거였다. 뭐랄까.. 남여의 대화가 한번씩은 너무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야기의 흐름상 딱히 필요하지 않겠다 싶은 부분까지도 묘사가 너무 디테일해서 전체적으로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디테일함 때문에 머릿속에 그 시대의 장면들이 고스란히 그려지는 듯 했지만, 가독성 면에서는 답답했다.
이야기는 20살의 처녀 밧세바 에버딘이 세 남자 가브리엘 오크(28세, 농부에서 농장주, 목동, 다시 농장주로 직업이 몇번 바뀜), 윌리엄 볼드우드(41세, 농장주), 프랭크 트로이(하사. 군인)를 만나면서 진정한 자신의 짝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 여자와 세 남자라는 설정만으로 봤을 때, 보통이라면 한 여자를 둘러싼 남자들의 달콤한 사랑 전쟁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그와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 여자의 허영심과 자만심, 그리고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마음고생 하게되는 남자들과 그런 여자를 이용하려는 남자만 있을 뿐이었다.
일단 첫번째 남자 가브리엘 오크. 그는 첫눈에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허영심'이라는 단점이 있음을 간파했지만, 계속되는 우연으로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스치듯 지나갔던 첫 만남 이후 두번째로 우연히 마주친 그녀는 당시의 여성들과는 자유로운 행동들로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 뒤 불을 피우고 환기를 하지 않은채 오두막 안에서 잠이 들어 질식할 뻔 했던 그를 그녀가 구해준 일을 계기로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밧세바는 단호하게 자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며, 그가 자립심이 강한 자신을 길들여줄 수 없는 남자라는 이유로 거절한다.
"어째서 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겁니까?"
"할 수가 없어요."
"대체 왜요?"
"농장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좋아요. 하지만...."
"저는 댁을 사랑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로 말하자면 사랑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 오크씨. 정말 멋진 일이에요! 하지만 저를 경멸하게 될 거예요."
"절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한 가지 일은, 반드시 한 가지 일은 할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죽을 때까지 계속 갈망하는 것."
"농장주님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데도 제가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끔찍한 잘못처럼 느껴져요. 잘 안 될 거예요. 오크씨. 전 누군가 저를 길들여줬으면 해요. 자립심이 너무 강하거든요. 농장주님이 저를 길들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저는 알아요." - P 60-61
..이 대화..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오크는 밧세바가 분명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어째서 사랑한다는 고백에 왜 사랑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덧붙이는 거란 말인가.. 또, 밧세바는 뜬금없이 그 말에 멋진 일이라며 자신을 경멸하게 될거라는 말을 하는건가.. -_-;; 잘못된 번역인건지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하는건지.. =-=;;; 암튼 첫번째 남자 오크와의 인연은 일단 여기서 일단락이 지어진다. 이후 오크에게는 절망할만큼 커다른 일이 발생하고 그 일로 인해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았던 그녀와 재회해 그녀의 농장에서 목동으로 일하며 그녀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두번째 남자, 윌리엄 볼드우드. 이 남자와의 인연은 정말이지 황당했다. 단지 모든 남자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표하는데 유일하게 무관심으로 자신을 대한다는 이유로 밧세바가 발렌타인 데이에 그에게 장난삼아 "나와 결혼해줘요."라는 익명의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기어코 알아낸 볼드우드가 그녀를 찾아와 청혼을 하게 되었고,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밧세바가 사과와 함께 정중하게 청혼을 거절한다. 하지만 볼드우드는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었고, 아무런 약속도 얻어낼 수는 없었지만 약간의 시간은 얻게 된다.
"저는, 저는 몰랐어요. 발렌타인 편지를 보내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았어야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선생님.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여자라면 하지 말았어야 할 정숙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저의 생각 없는 행동을 용서만 해주신다면 약속드릴께요. 다시는..."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니오. 생각이 없었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그 편지가 그 이상의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일종의 예언가다운 직감으로 썼다고, 나를 좋아하는 감정의 시작이었다고. 그대는 생각 없는 행동이었다고 말함으로써 내게 고통을 줬소. 나는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고 견딜 수도 없어요. 아, 그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하지만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하오. 다만 내가 이미 그대의 마음을 얻었는지 물어볼 수 있을 뿐이지. 그렇지 않다면, 또한 그대가 부지불식간에 내게 다가온 것이 사살이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더 이상 없소."
"저는 볼드우드 씨를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그 말씀은 분명히 드려야겠어요."
"하지만 생각해보시오. 친절과 자비를 베푼다는 심정으로. 남편으로서 나를 견딜 수 없을 것인지! 그대에 비해 나이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 되지만 그대 나이 또래 남자들보다 그대를 잘 보살펴줄 거요. 힘닿는 한 그대를 보호하고 아껴줄 것이오. 맹세하오! 그대가 신경 쓰는 일이 없도록, 집안일로 걱정하는 일 없이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겠소. 에버딘 양, 목장 감독은 일꾼에게 맡기면 되오. 그만한 여유는 있소. 건초를 만드는 시기에 바깥일에 신경을 쓰거나 수확기에 날씨를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할 거요. 이륜마차는 그대로 유지하려 해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타고 다니시던 것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팔아서 망아지가 모는 전용마차를 사주겠소. 내게는 그대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상이나 사물보다도 훨씬 더 우월해 보인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소. 아무도 모를 겁니다. 하느님만 아실 거요. 그대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는!"
"그런 말씀 마세요! 하지 마세요! 그처럼 깊은 감정을 느끼시는데 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요. 게다가 사람들이 우리를 보게 될까 걱정되는군요. 볼드우드 씨. 지금은 그 문제를 접어두시겠어요? 차분하게 생각할 수 없어요.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아, 제 사악한 행동 때문에 선생님이 그토록 고통받으신 거예요.!"
"그렇다면 말해주시오. 그대가 완전히 거절한 것이 아님을. 아주 거절한 것은 아니지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대답도 할 수 없고요."
"이 문제에 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소?"
"네."
"에버딘 양을 생각해도 되겠소?"
"네. 그러셔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 바람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해도 되겠소?"
"아니요, 기대는 하지 마세요! 우리 이제 가도록 해요." - P. 211-213
이 남자.. 정말 끈질기다. 애초에 밧세바가 잘못한 일이라고는 하나 딱 잘라 거절의 말을 들었음에도 이렇게 매달리다니..! 그녀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그녀만을 바라보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너무 구질구질하다 느껴지는 까닭은, 뭘까..=-=;; 사랑한 적도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다는 여자에게 남편으로서 생각해달라니!! 대체 여자 입장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건가.. 허허.. 거참.. =-=a 이륜마차도 그래. 아니 돌아가신 부모님이 타신거라 가지고 있는다더니 바로 밧세바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겠다고? 하여간, 이래서 이런거보면 아들은 다 소용없어!! 어쨌든 끝까지 이런걸 보면 미래에 의처증이 생길 것 같은 후보자다.
마지막, 세번째 남자 트로이. 앞의 두 남자에겐 없던 남성미 가득한 검술실력과 가식 가득한 꿀을 바른 혀를 가진 남자다. 밧세바는 이런 남자의 습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의 아첨에 빠지고 만다. 결혼을 한 후에야 트로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 정말 사랑하는 여자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밧세바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부당한 말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말을 반복하진 않을 거요.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당신에게서 우정의 표시를 얻는다면 기쁠 것이기 때문에 말투에 트집을 잡지는 않겠습니다. 에버딘 양, 나는 정말로 당신이 하는 말에 관심이 있습니다. 당신은 아침인사처럼 단순한 말 한마디라도 좋다는 남자를 어리석다고 생각하겠죠. 어쩌면 그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자를 우러러보는 남자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죠. 당신 자체가 여지니까."
"글쎄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런 경험이 어떤 건지 전혀 알 수 없지. 그래서, 하늘이 금하기 때문에 당신은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첨꾼이네요! 그건 경험인가요? 알고 싶어요."
"간단히 말해 비참한 심정과 고통을 느끼지 않고서는 생각하거나 들을 수 없고 한쪽을 제외하고서는 어떤 방향으로도 볼 수 없게 됩니다."
"아, 하사님, 그래봤자예요. 당신은 꾸며대고 있어요! 댁의 말이 사실이라기에는 너무 근사한걸요."
"아닙니다. 군인의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가요? 물론 그저 기분 전환 삼아 묻는 거예요."
"당신이 이처럼 내 마음을 빼앗고 있으니까요. 너무나 산만해졌소."
"그렇게 보이긴 하네요. 맙소사, 댁은 나를 불과 며칠 전에 처음 봤잖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번개는 순간적으로 치는 겁니다. 나는 그 순간 바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지금 사랑하듯이." -P. 288-289
으... 정말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여자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는 이 남자. 정말 제대로 아첨꾼이다. 이렇게 좋은 말만 하며 접근 하는 놈은 오히려 더 의심해야한다는 걸 밧세바는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니 결혼이 행복할 수가 없지.. 이런저런 일들로 인한 뼈아픈 가르침을 겪고 난 후에야 밧세바는 가려진 시야를 열고 자신의 진짜 짝이 누구인지를 찾아내게 된다. 비로소 무사히 자신의 행복을 찾은 그녀와 그녀의 남자의 모습을 보며 책을 덮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옛 구혼 방식. -_-; 옛 시대엔 다들 그렇게 했다고 하지만, 금새 사랑에 빠져 청혼을 남발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혼이 장난이얏!'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다는건 안 비밀.. -0-;;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인지 영화도 그리 기대가 되지 않는다. 영상미는 어떨지 궁금하긴 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