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서 감성을 채우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 일에 치이고 저 일에 치이는 와중에는 감성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으니 말이다. 좋은 노래 하나 찾아 듣기에도, 예쁜 그림 하나 뒤적여 보기에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라곤 찾기 어려운 때에 예쁘고 좋은 것들을 구하려는 건, 가끔은 슬프게도 사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올해 들어 가장 바쁘게 보내고 있는 요즘, 따뜻한 감성의 전령을 표방하는 이런 책을 굳이 읽는다는 건 내게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힘에 부칠 땐 가벼운 책을 읽는 걸 선호하지만 감성을 더하는 일이 과연 쉬울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임에스더 작가가 쓴 글과 사진은 내게 큰 감동을 주진 못했다. 감성의 싹이 트기에 좋은 흙이 되지 못한 까닭이겠지만, 이런 류의 글을 올리는 지인의 페이스북이나 이런 류의 사진을 올리는 지인의 인스타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 이상을 받긴 어려웠다. 하지만 그 지인들의 SNS에서도 가끔 좋아요를 누르지 않고 배길 수 없이 공감하게 되는 것들이 있듯, 그녀의 소소한 글과 사진들에서도 조금씩 마음에 잔물결이 일곤 했다. 책을 읽는 동안보다, 마지막 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할 때 느껴지는 게 더 많았다. 책이 사람과 같다는 것을 말이다. 늘 내 입맛에 맞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항상 좋은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나랑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믿을 수 없이 안 맞을 때가 있는 것처럼, 세상에 있는 수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가끔은 좋고 가끔은 싫은 것. 사람이 쓴 것이기에 그럴 테지만, 책도 마찬가지다.
실망스러운 책은 잘 안 보이는 곳에 꽂아두어 버리는데, 그럼에도 이 책을 책장 잘 보이는 한 켠에 예쁘게 넣어놓게 된 건 일러스트의 힘이 크다. 글과 사진도 마음에 드는 것들이 종종 있었지만, 일러스트는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 없이 참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SNS를 찾아 팔로우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정도로 아주 작은 일러스트 하나하나까지 사랑스럽더라. 임에스더 작가의 글들이 마음을 움직이려 할 때면 글의 여백에 일러스트가 가만히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일러스트가 이내 마음을 움직여 내곤 했다. 좋은 글을 찾으려다 좋은 그림을 얻어가는 책. 황무지에 감성의 싹을 피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싹이 돋으려는 기미가 보이는 것 같다.
진짜 부끄러움은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시간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것. (87쪽)
누군가 보고 싶은 밤만큼 이 세상에 행복한 밤이 또 있을까? (119쪽)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일에는 언제나 인내가 필요하다. (202쪽)
사진이 시간을 붙잡아두는 일이라면, 글쓰기는 마음을 붙잡아두는 일이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지 싶다. (21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