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불편한 이야기를 불편하게 풀어내는 데서 오는 피로
★★★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로서 꽤 괜찮은 평을 받았던 <돼지의 왕>을 감상하였습니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이후에 <사이비>, <창>을 내놓으면서 두 작품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죠. 주인공 정종석과 양경민의 목소리 연기는 배우 양익준과 오정세씨가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감독과 인연이 있는지 이들이 함께 한 작품이 이번 작품까지 세 작품이나 됩니다.
영화는 성년이 된 주인공 정종석과 양경민이 만나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 시킵니다. 학창시절 정종석과 양경민은 학교에서도 가장 서열이 낮아 늘상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입니다. 영화는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돼지'로 괴롭힘의 주체를 '개'로 표현하고 있죠. 그러던 어느날 이들에게 돼지의 왕을 자처한 철이가 나타나고 이 셋은 친구가 됩니다. 성년이 된 양경민은 정종석을 찾아가 15년전 철이와 관련된 금기시 되었던 이야기를 꺼냅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했지만, 넘어서 '사회'에 적용되는 주제의식.
영화는 '피지배층의 그릇된 본노의 표출은 지배층이 아니라 그들의 영웅을 파멸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고있습니다. 피지배층을 대표하는 종석과 경민 그리고 이들의 영웅인 철이는 지배층인 석응 패에 끊임 없이 저항하지만, 종석과 경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이들의 분노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의 영웅인 철이를 파멸(그 결과의 노림수는 지배층의 파멸이긴 합니다.)시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장점이 비단 강렬한 주제의식 뿐만은 아닙니다. 그 주제의식을 확장시키는 과정도 아주 탁월합니다. 일단 영화에는 주인공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와 학창시절, 이렇게 두개의 시제가 존재합니다. 성년이 된 종석과 경민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영화의 메인플롯이 되는 학창시절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영화는 주제의식이 사회로 확장되는 과정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영화는 등장인물을 '동물'로 상징화 합니다. 인물들을 착취의 대상인 '돼지'와 착취의 주체인 '개' 그리고 돼지지만 끊임 없이 개들에게 저항하는 '돼지의 왕'으로 표현한 이러한 기법을 인물들이 성년이 되었을때도 그대로 적용하며, 시제를 뛰어넘어 사회에도 주제의식을 적용시킵니다.
막장 선물세트
강력하고 묵직한 주제의식을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분명 호불호가 갈립니다. 이 영화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돼지에 대한 개들의 착취와 괴롭힘은 분명 불편하고 무거운 이야기 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불편한 이야기를 정제없이 표현하고, 관객을 자극하므로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도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돼지의 왕>은 성희롱,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절도까지 한 5가지 막장드라마에서나 볼수 있는 막장 요소 들을 꽤 오랜시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이러한 막장 요소들의 반복은 불편함과 충격을 넘어 결말에 도달할 때는 피곤하게 까지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상황을 비극적이고 극한의 상황까지 끌고가는 전개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오히려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가 도입한 지배(개), 피지배(돼지)의 구조에서 돼지란 극한의 상황에 빠져있는 인물 뿐만이 아닌 지배계급(기득권)을 제외한 모든 인물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인물들은 방관자 일수도 있고, 지배계급에 아첨하는 자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로 묘사하고 있는 3명의 인물모두 극한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인물이 너무 획일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들게끔 합니다. 물론 조금 다른 성격의 찬영이라는 인물이 있긴 하지만 이 인물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싶이 합니다.
결론적으로, 자극적인 소재가 연이어 등장하는 영화의 중반은 매우 지루하더군요. 그러나 영화의 결말이 시사하는 바는 과연 꽤나 묵직하게 다가오는 영화였습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고 저는 불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묵직한 주제의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