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표류기>
각박하고 매정한 '사회'라는 섬
★★★☆
이해준 감독의 2009년 작품 <김씨 표류기>를 감상하였습니다. 배우 정재영, 정려원이 주연을 맡은 작품이죠. 한풀 꺽이긴 했지만 아직도 최고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저도 참 즐겨보는데요. 그래서 그런가 문득 '무인도 표류'를 소재로 한 영화가 보고싶어지더라구요. 혹, <정글의 법칙>을 즐겨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영화에도 한번쯤 관심가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표류코미디 영화로서 <김씨 표류기>
이 영화는 각박하고 매정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두고있습니다. 남자 김씨는 억대의 빚에 여자친구에게도 차여 한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해 한강 가운데의 밤섬에 표류하게된 인물입니다. 비슷하게도 여자 김씨 역시 이마에 난 상처로 인해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고, 3년째 방밖은 나가지도 않는 일명 '히키코모리'로서 '인터넷 상'에서의 아바타로 자기만족에 빠져 고립된채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우울하고 암울한 면을 지닌 인물을 다룬 이 영화의 분위기는 굉장히 밝고 심지어 우스꽝스럽습니다. 인물을 찌질하게 묘사한 점이나 강으로 뚤러싸인 섬(?)이라는 컨셉 또는 방이라는 좁은 공간을 거대하게 묘사해 룰을 갖고 생활하는 히키코모리의 모습, 1년에 두번 있는 민방위 훈련기간에 천체망원경으로 거리를 바라본다는 설정들이 인물을 흥미롭게 바라보게 하고, 개그의 소재로서도 탁월한 기능을 하게 하는 연출이라고 할 수 있죠.
두 김씨를 연기한 두 정씨,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주연을 맡은 정재영, 정려원씨의 캐스팅도 매우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이러한 인물들의 연기에 특화된 배우라고나 할까요. 배우 정재영씨는 슬픈상황속에서 혼자만 우스꽝스럽고 찌질한 '웃픈연기'를 보여주면서 극의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정려원씨의 이미지도 히키코모리 생활을 이어가는 여자 김씨에 완전히 매치되면서 위화감이 전혀없는 연기를 보여주죠.
또한 영화가 인물을 묘사해내는 방식도 아주 독특합니다. 남자의 경우 '물'이라는 매개체로 회상을 통해, 여자의 경우는 개인홈피의 '악플'들을 통해서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슬픈과거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적지않은 대사를 독백으로 나타낸 점은 고립된 인물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연출이었죠.
풍성한 메타포와 심볼, 표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다
'밤섬'에 표류하게 된 남자 김씨의 모습은 망원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터넷 세상'이라는 도피처에 스스로 숨어든 여자 김씨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남자 김씨에게 희망이자 목표처럼 다가온 '자장면'이라는 심볼은 난생처음 혼자 힘으로 손에 쥔 의지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희망은 여자김씨에게는 '옥수수'로 전달됩니다. 옥수수 역시 여자 김씨의 사회로의 복귀의지를 시사하는 심볼이라고 볼 수있죠.
'사회'라는 각박하고 매정한 절망의 공간에서 설자리가 없었던 이들은 망원경과 강변의 글귀를 통해 소통하게 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의 인정과 관심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그렇게 이들은 서로의 관심과 희망의 씨앗으로 인해, '밤섬'과 '인터넷 공간'이라는 표류지로부터 절망의 공간 '사회'로의 복귀의지를 키워나갑니다. 결국 영화는 사회라는 각박한 공간에서 희망과 관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 그 안에 인물들의 슬픈 현실, 일명 이들의 '웃픈사연'을 바라보면, 영화의 타이틀인 <김씨 표류기>의 '표류'라는 의미는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표류영화라면, '밤섬'과 '인터넷공간'이란 곳이 표류의 의미를 지닐 테지만 이들에게는 오히려 매정하고 각박했던 '사회'라는 곳이 섬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결국 영화는 물리적 고립이 아닌 정신적으로 고립되었던 이들의 사회로부터의 표류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렸다고도 볼수 있죠.
굴곡없는 단조로운 리듬, 115분의 킬러타임
우수한 연출과 연기, 상징적인 메시지 그러나 영화의 만족감은 다소 떨어졌습니다. 화려한 데코레이션으로 치장한 케익의 맛이 아주 훌륭하지는 않았다고나 할까요. 영화의 리듬은 강약없이 시종일관 단조로워서, 115분이라는 거대한 런닝타임을 버텨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영화의 결말에서 크나 큰 카타르시스랄 것도 없었죠. 범상치 않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었으나 수작이라 부르기엔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