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있는 짧은 글과 거기에 덧붙이는 듯한 짧은 글, 그리고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건 맞는데, 책 속의 사랑은 모두 쓰다 못해 씁쓸했다. 평범한 만남인 듯 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만남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진지하지 못한 관계 속에 상처받고,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린 연인에게 상처받은 청춘들을 떠올리게 했다. 총 32편의 이야기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술술 잘 읽혔고, 아련함, 공허함, 슬픔 등의 감정을 잔뜩 흔적처럼 남겼다. 무심코 넘겼다가 어느새 푹 빠져서 금새 읽어버린 책....!! 왠지 약간 우울함이 묻어나는 비오는 날,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이 책을 펼쳐들면.. 딱 어울릴 것만 같다. 우울함에 사랑의 상처들을 떠올리게 하는 아픔을 더해주는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비와 어울릴 것 같다.
때로는 진실이 아니라 견고한 거짓말이 관계를 지속시키기도 한다. 진실이 진심을 훼손시킬 때도 있다.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제일 힘든 사람은 사실 솔로가 아니라 양다리 연애자다. 피곤하지 않으려면 멀리 출장을 가거나 지구를 지키는 일뿐.
우리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배를 탓을 뿐이다. 문이 열릴 때 내리지 않으면 다시 오를 수 있지만 이미 보고 지난 것들을 다시 볼 의미가 없다.
죄는 양심에 남지 않는다. 죄는 인간에 남고 기억은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흘러가는 시간은 망각 혹은 용서를 낳고, 망각은 복수의 의지보다 강하다.
시간이 흐르고 무수한 선택으로 우리는 현재를 만났다.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이 남았다.
어둠 속에 가둔 가능성들 속에서 다른 운명으로 흘러간 나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때로는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상이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외모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를 말한다. 이성에 대한 호감의 가능성은 인상을 보고 느끼는 찰나의 시간에 있다. 얼굴의 생김새, 외형의 균형감, 부피감 등이 보는 이의 외적 취향 기준에 부합하면 비로소 관찰이 시작된다. 하지만 외적 기준이란 게 둘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부질없기 쉽다. 어떤 사람의 뒷모습이 관찰자의 취향에 부합한다 치면 호감이 시작되지만 그 혹은 그녀가 뒤를 돌아 얼굴을 보여주었을 시 대부분의 호감은 멈추게 된다. 혹 앞모습의 외형이 관찰자의 취향에 부합한다 쳐도 대화가 시작되면 또 대부분의 호감은 멈춘다. 이렇듯 외형에 대한 호감이 이성적인 매력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그러나 대화가 동반된 한 사람의 인상은 짧은 시간이라도 훨씬 폭 넓은 판단이 가능하다. 이성적인 긴장이 만들어지는 시작점은 이렇듯 총체적인 인상에서 만들어진다.
남기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추억이 된다.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야하다는 생각보다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지속되지 않을 지금 당장의 관계와 너무 쉽게 맺어진 탓에 쉽게 정리되어버리는 관계,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인연을 찾아 헤매면서 찰나의 옛 추억을 더듬는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답답함과 씁쓸함이 가슴을 메운다. 짧은 글 후에 덧붙이는 글에 은근하게 작가 자신만의 경험담을 포함시켜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관심이 간다. 찾다보니 책 속 내용 중 그의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에 나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가 급 보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