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처음엔 2008년 1월에 출간되었던 '밀리언 달러 초콜릿'의 개정판으로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수정되는 과정에서 '밀리언 달러 초콜릿'에 실려있던 글들이 모두 빠져나갔고, 개정판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밀리언 달러 초콜릿'... 보지 못했던 책인데, 이 책을 보고 나니 궁금해졌다. 다음번엔 '밀리언 달러 초콜릿'을 읽어봐야겠다. ㄱ에서 ㅎ까지 모두 101가지의 짧은 이야기가 책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책은 굳이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된다. 어느 페이지의 이야기를 먼저 보더라도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낯선 사람이 되어 너를 떠났고, 너는 나를 떠나 낯선 사람이 되었다.
이 시대의 트렌드는 '끝'이다. 트렌드가 끝난 것이 아니라 끝 자체가 트렌드가 된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들에 충분히 싫증이 났어요.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는 것에도 지칠 대로 지쳤어요. 나는 볼펜이 되어, 볼펜으로 살다가, 볼펜의 삶이 끝난 후에 먼 우주로 떠나, '잃어버린 볼펜들의 행성'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요.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나는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나의 인생 밖으로도 마찬가지이고. 인생은 모험이 아닙니다. 다만 모험을 그리워할 뿐."
남자에겐 사랑이 쉬웠고 이별이 어려웠다. 여자에겐 사랑이 어려웠고 이별이 쉬웠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거나, 우리는 그렇게 달랐다. 함께 사랑을 했다고 믿었지만, 시작은 달랐고 마지막도 그렇게나 달랐다.
그제야 두 사람은 알게 되었다. 멋진 남자를 만난다고 해서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이 찾고 있었던 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아니라,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였다는 사실을. 하지만 세상의 어떤 남자도, 행복을 베풀어주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많이 해보아도 그 답을 알 수 없는 것이 연애이며, 한번도 하지 않아도 그 뻔한 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연애라는, 무시무시하고 무의미한 진실을.
정말 슬픈 일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에게도 칭찬받지 못하고 이 세상을 묵묵히 또 꿋꿋하게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오만과 관습과 편견과 권위에 때로 항복하고 때로 저항하며, 때로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때로 하기 싫은 이야기를 하며, 때로 원하지 않는 일을 감수하고, 때로 원했던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글 마다 콕콕 와닿는 문구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어떤 글귀는 곰곰히 생각에 잠기게 했고, 어떤 글귀는 울컥하게 만들었고, 어떤 글귀는 머리를 탁 치게 만들었다.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씁쓸한 마음에 쓴 웃음이 나오게 만들기도 했다. 처음엔 당연스레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뒷장으로 넘어가며 읽었지만, 어느새 난 표시해두었던 책갈피를 치우고 내키는 대로 넘겨보기 시작했다. 생각없이 펼친 페이지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고,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함과 호기심을 더 부추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이야기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다음은 페이지엔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라고나 할까? 이런 이야기들을 써낸 황경신 작가.. 참 대단하다. 정말 그녀의 전 작품.. 꼭 읽어봐야겠다. 그 책은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