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마코가 무엇이던지 간에 뭔가 하고 싶으면 아빠가 응원할께 "
영화의 제목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에서 '모라토리움(Moratorium)'은 경제 용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그 뜻은 어떤 국가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외국에서 빌려온 차관에 대해 일시적으로 상환을 연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이 경우에 외환 위기가 뒤따르곤 하는데 우리나라도 1997년 IMF 구제 금융을 받았을 당시에 이 '모라토리움'을 선언할뻔 했었죠. 그런데 이 작품에서 의미하는 '모라토리움'은 그런 경제적 관점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다마코'는 바로 그 '모라토리움'에서 파생된 '모라토리움 신드롬'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요.
'모라토리움 신드롬'의 전형적인 모습과도 같았던 '다마코'
< ▲ 먹고 자고 만화책 보고 오락하고.. 부러운 다마코의 하루 >
'모라토리움 신드롬'이란 지적·육체적으로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완전한 성인이 되었지만 성인이 되는 것을 잠정적으로 미뤄두고 있는 상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보류하고 기피하려는 증상을 일컫는 말로 영화속 '다마코'의 모습이 딱 그러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 집에서 빈둥대고 먹고 자고 싸고 TV 보고 만화책 보고 오락하고만 반복하고 있는 그녀의 하루 하루는 그야말로 무기력하게만 느껴지니까요. 아버지와 함께 단 둘이 살고 있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설겆이, 청소, 심지어 속옷을 빨래하고 빨래를 너는 것 까지 모두가 아버지의 몫이었고 다마코는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았던 것인데 그런 다마코에게 아버지는 처음엔 조금이라도 '취직 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재촉을 하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다마코를 편안한 시선으로 지켜만 봅니다.
'언제까지 아파만 해야 하는건데?' 라고 묻듯이 영화는 청춘에게 압박과 강요 대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편안하게 기다려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 ▲ 그랬던 다마코가 빨래를 합니다 ! 이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죠.
'다마코'를 연기했던 '마에다 아츠코', 눈에 확 들어오는 예쁜 배우는 아닌데 상당히 매력있네요 >
그런데 다마코를 바라보는 이런 아버지의 시선이 이 시대의 '청춘'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처럼 느껴지는 작품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였습니다. 언뜻 보기엔 그야말로 빈둥빈둥 노는 잉여인간으로 보이는 다마코이지만 그녀 역시 꿈을 꾸고 있었던 청춘이었죠. 하지만 그녀는 아직 세상 밖으로 나갈 완전한 준비가 된 인물은 아니었던 것인데 이런 '다마코'로 대변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요즘 세상은 '아픈만큼 성숙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등의 말로 '아픔'을 강요하는 것 같은 풍토가 조성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죠. '언제까지 아파만 해야 하는건데?' 라고 묻듯이 영화는 청춘에게 압박과 강요 대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편안하게 기다려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까요. 길이 보이지 않음에도 '아플 것'을 종용당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같은 영화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무작정 그렇게 관조적인 자세만을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1년이라는 '유예시간'을 통해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해가는 다마코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기도 했었던 것인데 다마코의 모라토리움은 '자연소멸'됐을까요?
일본 드라마 특유의 잔잔함이 묻어나는 영화 !
다만 러닝타임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 ▲ 다마코를 따뜻하게 지켜봐주던 아버지.
영화에는 이렇게 유난히 식사 장면이 많은데 왤케 맛있어 보이던지요 ! >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상당히 잔잔한 영화입니다. 일본의 드라마 장르 작품을 보셨던 분들이라면 어떤 느낌이신지 아실 것 같은데 이 작품 역시 일본 드라마 특유의 잔잔함이 영화 가득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자연스럽게 가미되어 있는 위트있는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면서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더군요. 게다가 '다마코'를 연기한 마에다 아츠코를 비롯하여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이해해주던 아버지 '칸 스온' 두 배우의 연기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더 좋은 느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특히 영화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두 사람의 식사 장면은 왤케 군침이 돌던지! 다만 1시간 10분여 밖에 되지 않았던 러닝 타임은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을 확실하게 전하기엔 조금 부족한 시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 사랑스러운 '다마코'와 든든한 지원자 '아버지'의 모습을 좀 더 보고 싶기도 했었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