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트 펑크의 세 번째 앨범 Human After All 은 앞선 앨범들(Homework, Discovery)의 비평가들과 팬들의 호의적인-열광적인 평가와는 달리 불만스러운 평가가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은 점차 위축되리라 생각되었다.

계속된 호평들에 이어 겪게 된 침체와 서서히 잊어지는 과정.

항상 있어왔던 흥망이고 그들도 그런 과정이 진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인 예상과는 다르게 앨범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꾸준한 공연과 함께 여러 협력 작업들을 통해서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면서, 정규 앨범을 더 이상 발표하지 않고 있었을 뿐 그들의 인기와 명성은 더욱 높아졌을 뿐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오히려 Human After All 이후 그들이 얻어낸 성과는 그 이전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음악적인 지지부진함과는 달리 그들이 만들어낸 음악 외적인 수많은 성공들...

어째서 그들의 명성이 이처럼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지,

이어질 뿐만이 아니라 더욱 드높아졌는지는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의 음악이 갖고 있는 힘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음악 외적으로도 쉽게 잊을 수 없도록 자신들만의 개성을 만들어냈기 때문인 것 같다.

정규 앨범보다 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라이브 앨범 Alive 2007 이후에 발표되는 그들의 네 번째 정규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 는 앨범 발표 전에 공개한 첫 번째 싱글 Get Lucky 때문에 많은 기대를 갖게 되었는데, 실제로 공개된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 는 직접적으로는 Discovery 앨범과 얼핏 유사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아류작이나 노골적인 친화성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보다는 비슷한 방식이면서도 무척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음악을 만들기 보다는 노래를 만들려는 생각이 엿보여서 Discovery 앨범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지 다른 비슷함을 찾아낸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은 유사함일 것이다.

좋은 노래들로 가득한 좋은 앨범이었다.

그들은 다시금 그들이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같다.

이전보다도 더 솔직하게 복고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면서도 그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적 재미가 부족함 없이 담겨져 있는 Random Access Memories 는 다양한 음악인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다채로움을 만들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복고적이면서 흑인들이 좋은 감각을 보여주는 장르의 음악들을 많이 염두에 두면서 작업에 임한 것 같은데, 물론 그렇지 않은 곡들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 바탕에는 그런 방향 속에서 이뤄진 작업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대부분 이번 앨범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앨범인 Discovery 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앨범이었고 즐거움을 느끼게 만드는 곡들이 많아서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의 음악이라는 느낌이 가장 적게 들게 되는 Doin' It Right 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는 점이 어떤 의미에서 역설이기는 하겠지만 이번 앨범은 자주 듣게 되고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앨범인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은 아닐까?

그들의 음악이 아주 대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실험성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음악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가장 사랑받는 밴드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점점 더 그들의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것도 좋은 것 아니겠나?

꼭 음악적인 혁명을 할 필요도 없고,

전복과 실험에 몰두할 필요도 없다.

함께 즐기는 것도 무척 좋은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들도 좋지만 다들 함께 웃으며 즐기는 것도 좋은 것이다.

물론, 그들만의 음악적인 모습과 함께 만화적인 개성을 뒤섞으면서 좀 더 팬들의 열렬한 반응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하지만 반면에 이런 의문점도 들게 되기도 한다.

다프트 펑크가 전자음악이 아닌 실제 악기들을 연주해서 녹음하고 다양한 음악인들과의 협력으로 만들어낸 이번 결과물이 과연 그들의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다프트 펑크가 깊게 관여한 다양한 곡들이 한 장의 앨범에 수록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최선의 결과물이고 그들이 해낼 수 있는 또다른 성취인지에 대한 의문인데.

그들이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던 다양한 장르-음악들을 탐구하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 장르-음악을 재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인지 좋은 앨범인데 이걸 과연 좋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가 대답을 해주거나...

나 스스로 대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