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재즈로 우정을 키우는 고등학생들의 청춘 이야기.”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은 ‘카우보이 비밥’과 ‘사무라이 참프루’를 통해서 국내에도 무척 많은 팬들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카우보이 비밥’이 그 당시로서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무척 놀라운 작품이었기 때문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는 감독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작인 ‘언덕길의 아폴론’도 뒤늦게 알게 되기는 했지만 알게 된 직후 곧장 전편(12편)을 보게 되었다.

12편이지만 편당 20분 정도라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고,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잔잔하게 마음을 끌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만약 무라카미 류의 ‘69’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좀 더 흥미롭게 작품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작품의 배경이 동일하게 큐슈에 위치한 사세보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시기적으로도 ‘69’와 엇비슷한 시기로 생각되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작품은 시대적으로는 전혀 현실감을 느낄 수 없는 시대(‘카우보이 비밥’은 머나먼 미래고, ‘사무라이 참프루’는 반대로 머나먼 과거다)를 배경으로 온갖 대중문화를 비틀어 집어넣고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 ‘언덕길의 아폴론’은 사실적인 연출과 함께 지금까지의 작품들처럼 생각보다는 어울리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는 것들을 채워 넣지는 않고-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카우보이 비밥’이 서부영화와 홍콩느와르 그리고 재즈와 온갖 대중영화들을 뒤섞었었고, ‘사무라이 참프루’도 마찬가지로 사무라이 문화와 현대 대중영화와 문화들과 함께 그 중 힙합음악과 문화를 비중 있게 삽입시켜 인상적인 재미와 효과를 만들었지만 ‘언덕길의 아폴론’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사실성을 높이고 재즈 음악을 합치며 지금과는 다른 열정과 관심들이 가득했던 시대를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범생이지만 아직까지는 덜 성숙된 모습의 전학생 카오루와

카오루와 여러 면에서 반대되지만 카오루가 갖고 있는 고민과 상처를 마찬가지로 갖고 있는 센타로

약간은 평면적이기는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함께하는 리츠코

이런 중심인물과 함께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는 주변인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진행되고 있고, 자극적인 상황이나 이야기 없이도 재미를 잃지 않기 때문에 잔잔하면서 만족스러운 작품인 것 같다.

와타나베 신이치로에게 이런 감수성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음악을 맡은 칸노 요코가 만들어내는 재즈의 매력은 ‘카우보이 비밥’을 잠시 떠올려지게 되기도 하면서 여러 생각들을 오가게 한다.

기본적으로는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재즈를 그것에 더하고 있는 모양새이고 거기에 1960년대 일본의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조금은 다른 맛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사랑과 우정의 떨림과 엇갈림이 중심이라(물론, 거기에 계속해서 재즈가 더해지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의 그 서투르기만 한 감정을 느껴보았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때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법한 고민들을 마찬가지로 해봤다면 나쁘지 않은 작품으로 생각될 것이다.

이제 막 미국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가 갑작스럽게 밀어닥치고 그 밀려오는 홍수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즐기고 경험하는 모습들과 함께 어떻게 그것들이 변주되고 있는지도 흥미롭게 생각될 수 있으며, 그와 함께...

우정

사랑

상처

성장

재회

이별

기쁨과 슬픔

이런 여러 감정들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진행 속에서 1960년대의 일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국의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모습들을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언덕길의 아폴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적으로 무척 중요했고 깊은 갈등을 보였던 대학생 쥰이치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에서는 주변인물이지만 어쩌면 그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그의 모습에 좀 더 집중을 하게 됐는데, 도쿄로 상경해서 우연하게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전공투로 대표되는 격렬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함께하기도 했지만 점차 모든 것에 회의를 갖고 시들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여러 생각들이 들게 됐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선택이 출판업이라는 것에 전공투로 대표되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겪게 되는 좌절과 함께 그들이 대거 흘러들어가게 된 문화관련 영역에서 어떤 결과물들이 다시금 나타나게 되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그런 열정의 폭발과 그 폭발을 음악적으로 들려주는 재즈라는 미국에서 유입된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함께 갖게 되는데,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미국의 대중문화 중 (영국 출신이지만) 비틀즈로 대표되는 록음악과 재즈라는 두 개의 문화가 어떻게 일본에서 정착되는지를 미군부대가 있어서 좀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 사세보를 배경으로 한 ‘언덕길의 아폴론’을 통해서 그리고 무라카미 류의 ‘69’를 기억하며 생각해보게 됐다.

많은 시간이 흐른 이후 고등학교 시절에 관심을 갖고 있던 것들과는 그때의 모습들과는 다른 모습과 세계에서 생활하며 만나게 되는 서로를 지켜보게 되고, 그렇게 일본의 고등학교가 갖고 있는 이상한 방식의 세계에 대해서 다시금 궁금증을 기울이게 되면서 멋진 마무리를 그리고 일정하게 열려진 끝맺음을 접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랜만에 접하게 되어서인지... 좀 더 빨리 그의 새로운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참고 : 원작은 이미 연재가 종료되었고, 국내에도 작품이 번역되어 출판되었기 때문에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더 재미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