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들은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캐나다로 이민을 준비한다.

동물들을 싣고 캐나다로 떠나는 배에 탑승한 가족들.

하지만 상상치 못한 폭풍우에 화물선은 침몰하고 가까스로 구명선에 탄 파이만 목숨을 건지게 된다.

구명 보트에는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굶주린 하이에나,

그리고 바나나 뭉치를 타고 구명보트로 뛰어든 오랑우탄이 함께 탑승해 긴장감이 감돈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놀라게 만든 진짜 주인공은

보트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

시간이 갈수록 배고픔에 허덕이는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결국 리처드 파커와 파이만이 배에 남게 된다.

파이는 배에서 발견한 생존 지침서를 바탕으로

점차 ‘리처드 파커’와 함께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법을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태평양 한가운데서..

집채 만한 고래와 빛을 내는 해파리, 하늘을 나는 물고기, 그리고 미어캣이 사는 신비의 섬 등 그 누구도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사건들을 겪게 되는데…!”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컴퓨터 그래픽과 3D로 꾸며진 작품이면서도 감독 자신만의 생각-색깔을 작품에 함께 담아낸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장 적절한 결과물일 것 같다.

현재까지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엄청난 걸작이거나 감탄으로만 가득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주저하게 되지만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는 것에는 성공하고 있는 작품이고 만약 이 작품을 접하는 사람이 종교적인 깨달음이나 성찰에 관해서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과는 달리 놀라움으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찾아온 소설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천천히 들려주며 시작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원작소설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원작소설을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읽지 않았으리라 생각되고(그런 소설이 있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에 동전 몇 푼 걸 용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원작소설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작품을 접했지만 이런 부족한 지식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는 것에 큰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천천히 옛 이야기를 말하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 파이의 삶은 흥미로움의 연속이면서 그 흥미로운 삶의 시작은 그의 독특한 이름부터라는 것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뒤이어 어떻게 종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하나의 신이 아닌 다양한 신들을 믿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에서 이 작품이 멋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신의 존재와 믿음 그리고 일신교와 다신교에 관한 화해할 수 없는 격한 논쟁이 아닌 조금은 부드러운 논의가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파이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종교-신앙과 과학-수학이 갈등을 만들기 보다는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려주기도 하고, 광신이 아닌 이성 속에서의 신에 대한 믿음을 말하며 종교를 갖고 신을 믿어야 할 때 어떤 입장과 밑바탕이 있어야 하는지에 관한 통찰도 알려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종교와 신앙 그리고 삶에 대한 현명한 지혜를 들려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지혜와 통찰을 컴퓨터 그래픽과 거대한 3D 화면으로 채우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인상적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단순히 현란하기만 한 시각적인 재미만을 만들었던 기존의 작품들에서 벗어나 의미와 이야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에 인상적인 것 같다.

리처드 파커라는 뒤바뀐 이름의 호랑이와의 만남과

이후의 조난 속에서 맺게 되는 관계는 ‘라이프 오브 파이’가 만들어내는 여러 의미심장함 들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인 것 같고, 리처드 파커와의 관계를 통해서 여러 은유들이 그리고 의미들이 논의될 수 있을 것 같다.

특이한 것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 모두 뒤바뀐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인데,

파이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피신에서 파이로 바뀌도록 했다면,

반대로 리처드 파커는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우연-실수에 의한 바뀜이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가 결국은 동등한 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단순하게 인간과 짐승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종교적인 깨달음과 신에 대한 믿음-시련과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런 큰 아픔과 시련을 통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들을 깨닫도록 만들면서 구원과 깨달음 그리고 믿음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멋진 이야기 속에서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즐겁게 영화를 즐기면서 생각 보다는 어려운 질문을 받게 되는...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의 해답도 듣게 되는, 편안하게 즐기고 뭔가를 얻은 것 같은 기분도 들게 되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이런 장점이 쉬운 것만 찾고 있는,

좀 더 고뇌 속에서 무언가를 찾게 되는 것에 거부감만을 느끼는...

어떤 결론이나 대답도 쉽게 찾기를 바라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대답을 기다리는 세상에서 무척 효과적인 설득력을 갖겠지만 반대로 그런 점들 때문에 비판적인 입장 속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를 비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통 그 자체를 통해서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기도 하는...

고통으로 인해서 삶이 아름다워진다는 약간은 변태적일지도 모를 삶에 대한 통찰을 바라게 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라이프 오브 파이’에 대해서 약간은 거리감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파이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그 경험들이 우리들은 3D 화면을 통해서 실감나게 함께 경험하지만, 마치 함께 그 고난을 겪은 것 같은 기분은 들겠지만 결국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 것은 실제로 경험한 파이에게만 가능할 것이고, 우리들은 그런 고난을 경험했다고 생각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착각만이 가능할 것이다.

구원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조난 이후 수많은 헤맴과 여러 고난 끝에,

수많은 거짓 희망들과 스쳐지나가는 우연 속에 겪게 되는 좌절들,

그런 침몰되는 희망과 그 고통 속에서 함께하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의 오고감,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길들이고 함께 희망 없음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모든 것들과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삶과 생존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의 결국 얻게 되는 깨달음과 통찰까지.

‘라이프 오브 파이’는 잘 다듬어졌고,

매끄러운 모양새로 완성된 결과물이고,

그 결과물에서 새로운 기술(3D)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여러 생각들을 가능하게 된다.

엄청나고 믿을 수 없는... 그런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런 평가까지 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충분히 존중받을 작품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지막에서 좀 더 흥미로운 순간들이 있었는데, 홀로 살아남게 된 파이가 자신이 들려준 환상적인-환상으로 가득한 이야기와 함께 사람들이 원하는, 보험처리로 대표되는 경제적이고 금전적인 문제로서 모든 것이 수렴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시각이 원하는 이야기로의 갈라짐과 어떤 이야기가 더 좋은 이야기인지를 질문하는 결말 부분에서 결국 모든 것은 이야기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과 어떤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지를 고민하게 되는 이안의 생각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만약에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를 원하고 그것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고(물론, 그렇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제목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난영화이면서 무척 살벌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의 말대로 무엇이 더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지를 생각한다면 좀 더 다른 기준으로서 두 이야기의 좋고 나쁨이 정해지기도 할 것 같다.

이 마지막 대화 때문에 이안은 오히려 앞의 이야기들에 비해서 단순히 끝부분에서의 이야기에 대한 대화에 더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아남은 파이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호랑이를 아쉬워하는 듯이

어쩌면 이안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득한 3D 영화에서 더 이상 찾기가 어려워지게 될지도 모를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항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안은 이런 발언을 했던 적이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눈을 즐겁게 만들고 현란하기만 하지만 결국 그 뼈대는 앙상하기만 한 최근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이야기가 갖고 있는 그 우수성과 빼어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알게 모르게 앞으로의 슬픔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파이가 더 이상 리처드 파커를 만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격한 슬픔과 비통을 들려주듯이,

우리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서 더는 멋진 이야기와 기가 막힌 이야기를 즐길 수 없는 영화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파이가 눈물을 흘리듯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서 앞으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숲으로 향하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모습은 그렇기 때문에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참고 :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소설가를 제외하고는 흔히들 말하는 일반적인 영어발음을 들려주는 등장인물은 전혀 없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영어 발음에 목숨을 건 한국의 일부 ‘후레자식들’ 에게 꼭 한마디 하고 싶은 기분에 이걸 꼭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