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12647

“나이트클럽의 피아니스트로 일하던 알 로버츠는 여자 친구 수를 만나기 위해 할리우드까지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비오는 날 그를 태워준 도박사가 죽자, 수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로버츠는 죽은 이로 가장하지만, 협박에 의해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주연을 맡았던 톰 닐은 나중에 아내를 죽이고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 대중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지만

한 가지 궁금하지 않은 건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야

언젠가는 손을 들지 않아도 날 태우려 차가 멈춘다는 것을

운명, 그 불가사의한 힘은 당신이나 날 범인이라고 지목할 수 있는데

거기엔 타당한 이유가 하나도 없어

저예산 영화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알려진 ‘우회’는 (아마도)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된 것 같지만(확인하진 않았다. 확인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뭔가를 알면서 감상할 생각은 없었던 작품이기 때문에 그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냥... 남들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서 사전 지식 없이 보게 된 작품인데(여전히 팔랑귀다), 덩달아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좋은 작품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우회’는 (연출, 제작여건 등) 부족함으로 가득한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부족함 속에서 눈부심을 보여주고도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것들을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은데, 부족한 조건이 이 작품이 만들어내려고 하는 긴박감과 점점 조여들어오는 갑갑함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B급 영화의 시초처럼 언급될 정도로 에드가 G. 울머의 ‘우회’는 여러 장면들에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시간, 돈 등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촌스러움을 넘어서) 약간은 조잡한 느낌이 들 정도로의 연출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장면들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게 되기 때는데, 1시간가량의 짧은 분량 속에서 톨 닐의 침울하면서도 구겨진 표정과 앤 세비지의 언제 달려들지 모를 긴장감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날이 선 연기, 그리고 끝없이 절망적인 상황으로 향하기만 하는 이 투박하고 거칠게만 느껴지는 작품에 어떤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것 같다.

느와르와 하드보일드 작품의 원형-전형-뼈대와 같은 이야기 구성과 연출을 보여주고 있고, 주인공 앨의 허무함과 패배감으로 가득한 자조적인 독백과 회상, 음침하고 울적함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잔뜩 찌푸린 표정을 통해서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음을 알려주고 있으면서, 모든 것에 냉소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게 된 그의 처지를 알아가면서 ‘우회’는 끝없는 불운의 연속에 관한 회색빛의 우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주일도 안 되는 제작기간과 저렴하다 못해서 싸구려라는 느낌으로 가득한,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한 제작비에 (적당한 조건 속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할지가 아닌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하기 바빠 보이는(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사치일지도 모를 정도로 촉박했던 완성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우회’는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제한되고 부족한 조건으로 인해서 쥐어짜내듯이 만들어냈을 것이고 그런 최악의 조건이 오히려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뒤쫓김과 휘말림 그리고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을 더욱 사실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연한 만남

우연한 사건

우연한 죽음

어쩔 수 없는 도망침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가혹한 운명 / 운명의 이끌림

매력적인 여성 / 악녀

질식할 것 같은 죄어듦

돈에 대한 지독한 탐욕

‘우회’는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 듯이 주인공 앨의 운명은 그가 절망 속에서 말해주던 ‘그 어떤 타당한 이유 없는’ 운명의 잔혹함을 우리가 지켜보도록 하고 있고, 앨을 점점 더 궁지로 몰아가면서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희망도 없이 절망으로만 가득함을 보여준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1945년에 발표된 ‘우회’가 어째서 이처럼 희망이 아닌 절망만이 가득한지는 좀 더 그 시대에 대해서 탐구해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저주스러운 운명에 대한 잔혹극인 이 작품이 어쩌면 그런 탐구로도 알 수 없는 아이러니로 가득한 운명의 잔인함 그 자체를 담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