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47369388
“고등학생을 대마초 혐의로 수사하는 형사의 이야기”
소련과 그 주변의 동유럽 국가들이 갑작스럽게 몰락한 이후 동유럽의 영화들은 거의 소개되지 못하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자국 영화라는 것이 없어지다시피 했다고 한다.
한동안 영화라는 것이 사라졌던 동유럽에서 조금씩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몇몇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조금은 거칠고 투박한 느낌은 들어도 뭔가 지금까지 접하던 영화들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고, 어떤 작품의 경우는 무척 흥미로웠던 기억들도 있었다.
특히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충격적이었다.
루마니아 출신의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경우도 우연히 접했던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가 무척 만족스러웠고 내용도 재미났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의 최근작인 ‘경찰, 형용사’는 제목부터 어떤 작품일지 쉽게 예상되지는 않지만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가 워낙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서 별다른 사전지식도 없이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는 어렵고-난해하고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점차 작품이 이해되면서 흥미로운 진행을 보여주고 있고, 그 진행의 마지막에 가서는 일종의 철학적 논쟁과 개인의 신념, 자유에 대한 논의까지 확장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낸 것 같다.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황당하다면 황당한 작품인 것 같다.
물론, 이런 논의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지루함으로 짜증을 느끼게 될 정도가 돼서야 이 작품의 의도가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라는 추측을 하게 될 정도로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솔직히 알려주질 않고 있기 때문에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이처럼 난해함 혹은 지루함으로 가득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크게 난해할 것도 없고 너무 간단해서 허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작품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뒤쫓는 주인공 경찰 크리스티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하고 있고, 그가 어떻게 미행을 하고 루마니아의 낡은-낙후된 공간 속에서 자신의 맡고 있는 임무에 충실하면서 생활하는지를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넘어서 사실 그 자체를 담아내듯이 보여주고 있다.
임무에 관한 진행과정 보고를 하면서 주인공 크리스티는 함정수사를 하라는 검사의 지시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의견을 말하고, 다른 유럽 국가들이 대마초 혐의로 체포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그리고 앞으로 루마니아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젊은 고등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방법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크리스티의 주장은 무시된다.
이후 작품은 크리스티가 계속해서 잠복근무를 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고, 어떻게 미행을 하는지, 미행이 실패를 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는지를 대사나 역동적인 추격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 건조한 보고서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고, 지루하게 만들려고 작정을 했는지 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며 용의자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크리스티의 모습과 그의 일상들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듯이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도가 어떤 의미에서는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장면들의 연속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필요한 장면만 담아내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앞뒤장면까지 보여주면서 각 장면들이 무척 길게만 느껴지게 만들고 있고, 크리스티가 업무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일상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그의 아내와의 관계와 대화 그리고 노래에 대한 말장난과 언쟁의 사이에서의 모습으로 그의 고독감과 피곤함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째서 불필요하게 장면을 길게 담아냈는지 의문이었는데, 의도적으로 각 장면들을 길게 담아냄으로써 등장인물들의 모습들과 함께 그들의 주변의 낙후된 환경을 보게 되기도 하고, 주인공 크리스피의 식사장면과 같이 고독감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만드는 등 지루함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되던 장면들이 무척 효과적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도록 하고 있다.
뭔가 맞아떨어지지 않다는 느낌과
개인적인 양심의 문제로 크리스티는 함정수사를 주저하고 있고
여러 의문점들로 인해서 다른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해 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기존의 사회주의 시절의 느린 업무처리 관행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거기에 관료사회와 부서간의 비협조가 더해지면서 의욕만큼의 진행이 어렵기만 하다) 수사 진행은 더딜 뿐이고 속도를 내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음을 확인할 뿐이다.
이야기 진행은 무척 느리고 느슨하기 때문에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지만 점차 진행의 더딤 속에서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지 조금씩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크리스티가 아내와 문법의 변화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팀장과의 대화와 논쟁 그리고 언어와 철학, 법과 규범 그리고 집행, 양심과 도덕, 개인과 사회 등등 웃자고 나누는 대화인지 짧은 철학 강의와 논쟁을 보여주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의 갑작스러운 진행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한번만으로는 쉽게 이해될 것 같지 않은 작품이고,
무언가 놓친 것들이 많은 것 같은 작품이었는데,
건조하고 지나치게 사실적인(그렇기 때문에 지루함을 듬뿍 담은) 장면들로 인해서 쉽게 작품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작품이 어떤 입장 속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본 것은 맞는지부터 의문스럽기도 했다.
좀 더 집중해서 보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고,
한번 더 보게 된다면 각각의 장면들이 좀 더 이해가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꽤 괜찮은 작품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는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전작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접한다면 사실적인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동일했지만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와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도 무척 기대하게 된다.
아마도 지금보다도 더 성장한 작품을 만들어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