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제작보고회] 돈의 맛이 만든 사생아, 명장 김기덕의 18번째 영화
7년 만에 베니스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김기덕의 영화 피에타. 본격적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7월 중순, 업체 측의 초청으로 피에타 제작보고회에 들러 김기덕과 두 명의 배우 이정진과 조민수를 만나게 되었다. 가는 길도 멀고 오는 길도 멀었지만, 김기덕 감독을 공식석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발길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자비를 베푸소서" - 피에타 -
100년도 훨씬 지난 서울 주교좌 성당에서 이례적으로 김기덕 감독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경건(?)한 분위기에서 피에타의 제작보고회를 만끽할 수 있었는데, 제작보고회 이야기를 하기 전 매번 논란의 중심이 되어 온 김기덕의 발자취를 넘겨짚고 가보려 한다.
"김기덕은 한국 영화계의 보물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문장일 수 있다. 그러나 충무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문들이 풍문처럼 넘나들 때면 다시금 귀를 때리는 메아리가 아닐 수 없다. 학연과 지연은 말할 것도 없고, 스탭을 넘어 감독까지도 하루아침에 목이 날아가는 살얼음판의 필드.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기회조차 쉽게 얻지 못하는 가뭄의 한국땅에서 김기덕은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고난도 많았다. 아니, 넘쳤다가 맞겠다. 해외에서는 상업 영화로 개봉하지만 한국땅에서 김기덕의 영화는 출처도 없는 예술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어 돌아다녔다. 호불호라는 선입견의 충신 역할을 해온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흥행은 고사하고 어렵고 불편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자켓의 견장과도 같았다. 어디 그뿐만인가? 자신의 제자에게 깊은 상처를 받으며 은둔까지 하게 된 김기덕 감독. 그의 영화를 호기심 깊게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폐쇄적인 시간 동안에 그가 내놓은 아리랑이라는 작품이었다. 굉장히 투박하지만 직설적이고 고집스러운 이 장발의 감독이 내뿜는 감성. 그 파장의 여운은 역시 꽤 오래 남았다.
다채로운 배경도 없고, 등장 인물도 자신뿐인 이 셀프다큐에서 김기덕은 자신의 감정만으로 플롯과 비극, 감동을 모조리 다 담아내는 아이러니를 토해낸다. 좋은 영화다 아니다를 논하기 전에 가슴을 강하게 때리는 스토리텔러로써의 공감대를 보는 이에게 끌어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기덕의 진정성과 진심이 담겨져 있었기에 가능한 나비효과다.
작품마다 이토록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여운을 남기는 감독 김기덕. 피에타라는 그의 18번째 작품으로 4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복수'라는 테마를 떠나보내고 전통적인 헐리웃 스타일인 '괴수와의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전국의 극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피에타로, 이정진과 조민수를 대동하고 나선 김기덕의 첫 제작보고회 등장이었다. 121년의 역사로 문화적 행사에 이례적으로 문을 열어준 서울 주교좌 성당, 그리고 발걸음 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인 김기덕 감독의 인사로 제작보고회는 시작되었다.
김기덕 감독이 고개숙여 인사하기 약 15분 전의 서울 주교좌 성당. 듣기로는 100명이 넘는 기자들과 블로거 50명, 그리고 김기덕의 영향력을 더욱 실감나게 해 준 유력 외신 기자들까지. 뜨거운 취재 열기가 웅장한 건물 속에 맴돌았다. 아쉽게도 블로거들의 자리는 좌측 구석진 곳이었다. 건물 내의 기둥 때문에 스크린은 1/4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고, '기자석'이라 적힌 피켓은 배우들마저 가릴 판국이었다.
'이래선 안되겠는데 이거...', 불안했다. 진행 스탭분에게 피켓을 조금 옆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하고 자리에 앉았다. '보급형 렌즈 사용자의 비애인가?', or '블로거들의 영향력을 올려야겠구만 이거!' 만감의 교차를 겨우 말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무삭제 예고편은 결국 집에 와서 다시 봐야했다.
그리고 이어진 '전율의 포스터 메이킹 영상'을 시작하기 전 이정진과 조민수가 등장했고, 영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기둥에 가려져 보지 못해 자세한 이야기를 못 해주는 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상영 내내 몇 번의 감탄사가 터져 나온것을 미루어 볼 때 주연 배우들의 느낌이나 연기가 꽤나 압도적이었지 않았을까 예상해 봤다.
신지혜 아나운서(진행자)가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Q. 진행자 : 먼서 인사 한 말씀씩 부탁드린다.
- 이정진 : (인사) 오늘 오전에는 날씨가 흐렸는데 행사를 시작하니 앞으로 <피에타>가 순항할 것 처럼 날씨가 맑게 갰다. 오늘 제작보고회에서 좋은 글과 사진 잘 부탁드리며 좋은 시간 됐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 조민수 : (인사) 정말 일기예보는 태풍 온다고 햇었는데 이렇게 맑으니 영화 제목처럼 하늘이 자비를 베풀어 준 것 같다. 많이 응원 부탁드린다. 감사합니다.
- 고해성사 :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Q&A -
Q. 진행자 : 조금 전 상영했던 '포스터 메이킹 영상'을 보고 처음 감동을 받았다. 특히, 조민수씨 같은 경우 순간적으로 감정에 이입하셔서 캐릭터의 애통함에 눈물을 바로 흘리셨는데, 정말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같이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이정진씨 같은 경우도 영화 찍는 것보다 포스터 촬영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셨을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신 것 같은데. 처음에 <피에타>의 시나리오를 받고 어떻게 캐릭터 분석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 이정진 : 보통 시나리오를 받으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나라면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에 대부분의 배우들이 고민이다. 사실 이번에 김기덕 감독님과 처음 작업을 했지만, 스스로도 어떻게 내 모습이 비춰질지에 대한 원론적인 것에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피에타> 시나리오 속 '강도'는 지금까지의 캐릭터와는 새로운 어떤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얼마나 다르게 표현해야할까? 가 아닌 과연 어떻게 표현할까?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보여질 영상이나 영화가 스스로도 너무 기대가 된다. 사실 이자리의 많은 기자님들도 궁금하시겠지만, 저 역시도 정말 궁금하다.(웃음)
- 조민수 : 내가 맡은 '엄마'는 '강도'라는 인물 안에 들어가서 그 가슴을 헤치고 나와서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는, 굉장히 미스테리한 인물로 그려졌다. 결국은 쫓아가다가 보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는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생각을 많이 하고 열심히 했다.
Q. 진행자 : 두 분 모두 김기덕 감독과의 첫 작업인데 영화를 찍게 된 계기가 있나? 더불어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 조민수 : 물론 쉬운 분은 아니다. 근데 내가 느끼기에는 까다로운 분도 아니셔서 일하면서 굉장히 즐거웠다. <피에타>를 찍으면서 스스로 많은 것을 얻었다. 다른 곳에서 가끔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를 다른 작품에 참여했을 때 돈을 얻어왔는데,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에서는 열정을 얻어왔다. 그 점이 연기 생활하면서 지금쯤 가장 필요한 것이었는데, 김기덕 감독이 딱 적당한 시기에 전해주신 것 같아서 지금까지도 감사하다.
- 이정진 : 그 동안 실제로 뵌 적은 없었지만, 매체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기덕 감독과 함께하면서 너무 편안하게 해주셔서 즐겁게 촬영하면서 지냈다. 촬영하면서 서로의 욕시 때문에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영화는 파격적인데 촬영 분위기는 조용하고 편안하게 흘러갔던 것 같다.
진행자 : 과연 환상의 팀워크인 것 같다. 배우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감독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진다. 여기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인생을 담은 김기덕 필모영상'을 보고 김기덕 감독을 자리에 모시겠다.
필모영상 상영 후 개인적으로 정말 기다려 온 김기덕 감독이 등장했다. 장발로 머리를 뒤로 묶은 김기덕 감독은 아티스트의 아우라를 풍기는 것만 같았다.
Q. 진행자 : 오랫만의 공식적인 자리라 많은 기자분들이 반가워 하실 것 같은데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린다.
- 김기덕 감독 : 이렇게 멀리 와주셔서, <피에타>에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진행자 : 4년 만에 <피에타>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감회가 어떤지 궁금하다.
-김기덕 감독 : 개인적으로 소규모로 <아리랑>과 <아멘>을 찍긴 했지만, 이렇게 좋은 스탭들과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은 건 4년만이다. 그 동안 정말 영화를 찍고 싶었다. 비록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동안 찍지는 못했지만 다시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를 찍는다는 일이 행복한 일이구나라는 점을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그 대신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피에타>를 촬영하면서 많이 했다.
Q. 진행자 : <피에타>라는 영화가 과연 어떤 영화인지 짧게 소개해주시고, 영화 제목을 '피에타'라고 지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 김기덕 감독 : '피에타'라는 제목은 개인적으로도 무게가 만만치 않은 제목이었다. 여러가지 제목들이 있었지만 결국 '피에타'라고 제목을 지은 이유는 '지베를 베푸소서'라는 의미 때문이었다. <피에타>를 찍으면서 현대를 살고있는 우리 모두가 신 앞에서 그 자비를 기다려야 되는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현대 사회는 돈 때문에 많은 인간관계들이 엉켜버린 상황인 것 같다. 크게는 전쟁에서 작게는 사소한 다툼까지, 거의 모든 것들이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벌어지는 것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피에타>가 시사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 복수에 대한 이야기 또한 내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공범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현대사회는 거미줄처럼 서로 관계가 엉켜있다는 점을 <피에타>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또 하나는 15살 때부터 청계천 공장에서 약 7년간 일을 했던, 어린 시절의 중요한 공간인 청계천을 그리고 싶었다. 지금의 청계천은 서서히 빌딩이 세워지고 있어서 곧 사라질 것 같다. 지금 한국이 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근본인 기계산업의 아카데미였던 청계천에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흘러 들어가는 청계천을 배경으로 돈과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담아보고 싶었다. 이렇게 보면 '피에타'가 굉장히 복잡한 제목인데, 결론은 '신이여,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Q. 진행자 : <피에타>에 조민수, 이정진을 캐스팅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 김기덕 감독 : 일단, 조민수씨는 개인적으로 팬이다. 그 동안 훌륭한 작품들도 많이 하셨고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배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같이 영화를 하면 그 에너지를 나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캐스팅 후 같이 작업을 하면서 실제로 굉장히 놀랐다. 하나의 장면에 있어서도, 캐릭터에서도 A안, B안, C안이 따로 있을 정도였고 원하는 느낌도 완벽하게 이해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서 혼자 몇 시간을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끌어내서 현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오셔서는 원테이크에 모든 걸 토해내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잘 캐스팅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정진 씨 같은 경우는 그 동안 유쾌하고 멋진 드라마를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쓰지 않은 백지같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피에타>의 '강도'는 겉으로는 강하지만 안으로는 굉장히 약하고 유아적인 캐릭터였는데 그 점을 정말 잘 해내셔서 이 자리르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진행자 : 다음은 '고해성사 :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Q&A' 시간을 준비했다. <피에타> 공식 트위터에서 많은 분들에게 미리 질문을 받았다. OX로 답하면 되는데 장소가 성당인만큼 솔직한 답변을 기대해본다. 우선, 배우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Q. 나는 <피에타> 출연 제의를 받고 솔직히 망설였다.
- 조민수 : (O) 말해도 되나?(웃음) 김기덕 감독에게도 말하긴 했었는데, 감독의 전작들이 불편했다. 연기 할 때 그걸 소화를 못하고, 이해를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선 김기덕 감독을 뵙고 싶었다. 과연 어떤 분하고 작업을 할지 말지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한 번 뵙자고 해서 관찰을 했다.(웃음) 그런데 그 동안 갖고 있던 선입견과는 다르게 느낌이 너무 좋았고 다음날 대본을 보고 결정하게 되었다.
- 이정진 : (O) 물론 대한민국의 남자배우로서 김기덕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캐스팅 제의를 받으니, 지금의 이정진은 배우로서 김기덕 감독과 작업할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과연 내가 앞으로 김기덕 감독과 작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김기덕 감독을 만나고 나서 결정했고, 캐스팅부터 촬영까지 빨리 진행되었다.
진행자 : 다음은 김기덕 감독에게 묻는 질문이다.
Q. 나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좋다.
- 김기덕 감독 : (O) 일단 개인적인 생각보다도 국내와 비교해 봤을 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빈집>등과 같은 작품들이 프랑스나 미국에서의 스코어가 몇 배나 더 높고 그리고 외국에서는 제 영화가 예술 영화가 아닌 상업 영화로 상영된다는 사실로 봤을 때 그렇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면 프랑스 시내만 돌아다녀도 하루에 몇 명이 사인 요청을 하고, 한국보다 많이 받는 것 같다.(웃음) 한 번은 기차를 탔는데 외국인이 저한테 김기덕 감독을 아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서 그냥 웃었던 적도 있다.(웃음) 참 고마운 일인데, 그 사실만으로 행복하기에는 조금 슬픈 것 같다.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그 때 이탈리아의 영화 동아리 학생들이 주는 '작은 사자상'이라는 그랑프리상도 받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의 고등학생들도 이해하는 영화를 왜 한국 관객들은 이해를 못할까? 이 점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제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보시진 않지만, 불법 다운로드나 비디오 같은 경로로 많이 본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객들은 개인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적어도 50만 이상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웃음) 그래서 사실은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 영화를 좋아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 영화가 조금 더 대중적으로 다르게 이해되었으면 좋겠다. 제 영화를 보면 인생을 알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조금 낯설고 아프지만 접근해보시면 어떨까 추천 드리고 싶다.
진행자 : 이번에는 배우 분들께 여쭈겠다.
Q. 연상녀 조민수, 연하남 이정진. 나는 영화를 찍으면서 서로에게 설렌 적이 있다.
- 이정진 : (O) 평소에 알고 지내던 선배였는데 이 사람과 같이 연기를 할 수 있구나라는 설렘? 김기덕 감독 작품에 함께 한다는 것도 설렜지만, 조민수 선배와 같이 첫 촬영하면서 설렜다. 드라마나 영화를 이미 해봤던 사이였다면 덜했을 수도 있었는데 처음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릴 때 조민수 선배는 아이콘, 우상이지 않았나. 그런 느낌도 있고 해서 처음 촬영을 했을 때 설렜던 것 같다.
- 조민수 : (O) 처음 본 남자가 제일 잘생겼다고 하더라. 처음 정진씨 봤는데 딱 눈에 보였고,(웃음) 극 속에서도 남자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바라봤다. 그래야 더 그런 느낌이 표현도 된다고 생각했다.
진행자 : 다음은 다시 김기덕 감독에게 묻는 질문이다.
Q. 나는 연기에 욕심이 있다.
- 김기덕 감독 : (O) 기자님들도 그렇고 모두가 한 번쯤 카메라 앞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그런데 저는 감독이니까 좀 더 유리하니까.(웃음) 실제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도 20분 정도 나왔고 중간중간 몇 번 나왔는데 아직은 대사를 멋지게 할 자신은 없다. <아리랑>은 개인 다큐멘터리니까 제외해두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배우들에게 미안하지만.(웃음)
진행자 : 다시 배우들에게 질문 드린다.
Q. 나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라고 생각한다.
- 이정진 : (O) 물론 영화 속의 인물처럼 파격적인 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스스로 좋은 남자 같지는 않다.(웃음) 앞으로 좋게 살려고는 하는데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법은 최대한 지키며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웃음)
- 조민수 : (O) 양심상 좋은 여자라고 말은 못하겠다. 인간은 누구나 '악'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 순간에 표출될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감히 못하겠다.
진행자 : 다시 김기덕 감독에게 질문드린다.
Q. 헤어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있다.
- 김기덕 감독 : (X) 고수하는 건 아니고 한 번 머리를 길러보신 분들은 아실 것 같은데.(웃음) 머리를 한 번 길러보니까 '아 이걸로 뭘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머리가 기니까 운전할 때도 바람에 날리고 너무 귀찮다.(웃음) 어쨌든 자르긴 하겠지만 이런 점도 삶의 어떠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짧든, 길든, 모자를 쓰던 그때 그때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그 차이가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로 1980년 대 프랑스에서 혼자 해변에서 텐트 치고 살 때 머리가 이정도 길었는데, 그 때는 돈도 없고 말이 안통해서 못 깎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이미지 하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못 깎고 있긴 한데 곧 깎을 것 같기도 하다.
진행자 :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여쭈는 질문을 드리겠다.
Q. 앞으로 나는 또 이 사람들과 작품을 하고 싶다.
- 김기덕 : (O) 뭐 단역도 많으니까.(웃음)
- 조민수 : (O) 이번에도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캐릭터를 그려주셔서 좋았다. 아까도 김기덕 감독에게 다른 캐릭터를 그려달라고 말씀 드렸다.(웃음) 많이 해보고 싶다고. 김기덕 감독이면 충분히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 많으니까 그려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안 해주신다고 한 글자도 안써진다고 하셨다.(웃음)
- 이정진 : (O)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웃음)
- 김기덕 : 개인적으로 한국의 중견배우들의 역량이 좋다고 생각한다. 브라운관에서 많이 활동하고 계시지만, 이런 중견배우들의 에너지를 끌어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해외 영화제 나갈 때마다 항상 복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연기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또 우리 조민수 씨와 다시 한번 해보고 싶고, 정진씨도 아직 여백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또 다른 캐릭터로 만나고 싶다. 그 부분이 맞을 때 또 같이 할 것이다.
진행자 : 여기서 '고해성사 :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Q&A는 마치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자분들의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다. 질문 부탁 드린다.
Q. 터키의 한국 통신원이다. 이 질문은 개인적인 질문이면서 터키의 감독과 팬들의 질문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 같다. 터키는 도덕적이며 종교 아이템이 들어가 있는 영화들은 선정적인 장면이 들어가 있지 않은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종교적인 소재와 선정적인 장면들이 같이 있다. 특히 <빈집>은 김기덕 감독의 입문으로 많이들 보는데 다들 이 내용을 신기해하고 궁금해한다. 어떻게 이렇게 다뤄질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다.
- 김기덕 감독 : 질문의 요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왜 나눠져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영화를 하면서 지금까지 종교, 사랑, 정치, 경제, 철학, 과학까지도 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카테고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중 하나가 들어가야 한다는 선입견은 없다. 그렇다 보니까 그렇게 영화를 만들고있고 종교라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밀접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섹스도 어떤 우리 삶에 있어서 '하나의 기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점을 이분법 적으로 나누어 생각하기보다는 그 안에 삶이라는 구체적인 덩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질문 고맙습니다.
Q. 로이터통신에서 왔다. 김기덕 감독에게 묻겠다. 해외영화제에서는 명성을 떨치셨지만, 국내 흥행은 크게 하지 못했는데 스스로 어떤 감독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서 어떤 철학이 있는지 궁금하다.
- 김기덕 감독 : 제 영화는 극장에서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몰래 많이들 보는 것 같다.(웃음) 예전에도 <파란대문>이 극장 개봉은 했는데 비디오 대여 수는 굉장히 높았다. 극장에 오시는 수고를 좀 해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솔직히 처음에는 왜 그럴까?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불만은 없다. 제 영화 자체가 어느 나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하나의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굉장히 포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점에 유럽 관객들이든 러시아 관객이든 미국 관객이든 모두에게는 아니지만 국경과 이념을 초월해서 제 영화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내에서도 <나쁜 남자>와 각본을 쓴 <영화는 영화다>가 흥행을 했는데 제 영화 중에 광고비를 더 썼으면 흥행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작품들도 좀 있다.(웃음) 이번에 <피에타>는 <풍산개>에 이어 NEW에서 책임을 져주셨다. 사실 <피에타>로 제작보고회를 하고 있는데 이번이 제작보고회는 처음이다. 촬영 현장에서 촬영 발표회를 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렇게 성대하게 제작보고회를 한 것은 처음이라서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Q. 김기덕 감독에게 묻겠다. 지금까지 많은 남자배우들과 작업해 오셨는데 이번에 이정진씨는 다른 남자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색깔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 <나쁜 남자>같은 경우는 여성에게 가혹한 관점이었는데 이번 <피에타>는 여성에 대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셨는지 말씀 부탁 드린다.
- 김기덕 감독 : 국내에서는 장동건 씨, 조재현 씨 등이 계셨다. 이정진 씨에 대한 장점은 아까 말씀 드렸는데 그런 점이 이번 영화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배우들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재료, 물감이라고 생각한다. 그 물감이 있어서 화가가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그 다양한 물감색깔처럼 배우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색깔들을 영화 속에 쓴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어뻔 부분에 어떤 색깔이 필요하면 그런 색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과 같이 작업을 해왔던 것 같다. 이번에 <피에타>는 <나쁜 남자>의 관점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많이 다른 캐릭터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점은 영화를 보고 판단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Q. 김기덕 감독과 조민수 배우에게 묻고 싶다. 김기덕 감독은 공식석상에서 서신 게 굉장히 오랜만인데 그간 어떠한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조민수 씨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임했는지, 다른 작품과 다른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오랫만에 영화에 컴백하신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하다.
- 김기덕 감독 : 작년 칸에 가서도 한국 기자들을 많이 피해 다니고, 인터뷰도 거절하고 했었는데 속으로는 마음이 아프다. 실제로 영화 하는 동안 알고 있는 분들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들인데 개인의 어떠한 신념 때문에 발언을 삼가하고 인터뷰를 안하고 했던 것은 참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감독은 영화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고, 두 번째 원칙은 때로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어떠한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한 내용을 말하는 건 개인적으로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영화는 정말 깨끗하게 극장에서, 유명 배우가 나오든 안 나오든 영화 한편으로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들이 스스로 정한 규정이었고, 이렇게 자리에 나온 것은 주변에 많은 분들이 <피에타>를 위해 애를 써주시는 점도 있었고 많은 지원을 해주시는 것도 있고, 또 하나는 지금 머리를 기른 것처럼 생각이 좀 바뀌었다. 예전에는 좀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하는 생각을 100% 객관화하지 말가. 동의 받으려고 하지말자. 그 생각은 생각대로 발전시키면서 조금 부드럽게 살아가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렇게 나왔고, 또 언제 변덕을 부려서 숨을지는 모르겠다.
- 조민수 : 확실히 김기덕 감독은 다르고, 현장도 다르다. 그 전에 했던 영화, 드라마와 진행하는 구조도 다르다. 진행이 빠르고 현장에서 조금만 놓치면 못 따라가니까 스스로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으는 작업을 이번에 배웠다. 그래서 김기덕 감독과 작업하면서 제 스스로 다른 모습을 봐서 너무 기뻤고 오랫만에 이렇게 행사를 하니까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Q. 이정진 배우에게 묻겠다. 이번처럼 강렬하고 거친 '나쁜 남자'캐릭터는 처음인 걸로 알고있는데 소화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는지 소감을 듣고 싶다.
- 이정진 :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거친 역할을 한 적은 있었는데 이번처럼 이라고 말씀하신것처럼 저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다른 남자배우가 앉아있어도 똑같은 질문일 것 같다. '거칠다'라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을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사랑을 받으며, 일종의 선택 받으며 살아가는데 '강도'라는 인물은 30년 동안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서도 한 한번도 선택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런 '강도'에게 어느 날 '엄마'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어떤 일그러지고 분출되는 성장통이 기묘하고 괴이하게 드러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Q. 김독에게 묻겠다.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제목이 본인에게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것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다.
- 김기덕 감독 : 일단 스스로를 포함한 말이기도 했다. 그 동안 어떤 말을 할까 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생각한다.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현재를 놓치지 말자. 현재를 느끼자'. 이 말을 최근 3년간 계속 반복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면, 미래에 가서 그 시간을 지나치게 기다리면 분명히 현재를 놓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2012년 7월 19일, 지금 이순간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성장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씀 하셨던 부분은 그러한 한 부분인 것 같고 그런 관계에 있던 분들이 정말 잘되길 바란다. 왜냐면 이 <피에타>의 주제 자체가 바로 그것이다. 돈과 명예와 같은 엉킴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균열들이 적대감을 갖게 하고 작게는 이웃과의 싸움이고, 크게는 전쟁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피에타>처럼 스스로와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의미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기자간담회까지, 모든 차례를 마치고 제작보고회의 마무리인 포토타임이 이어졌다. 배우들의 포토타임은 처음이었는데, 조민수는 앵글안에서 캐릭터가 보이는 듯 했고, 이정진의 모델 포스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김기덕 감독이 포토존에 서있는 보기 드문 장면은 보너스!
포토타임까지 모든 순서가 2시간 정도에 끝이 났다. 조민수의 관객에 대한 무대 매너가 홍일점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무뚝뚝한 비주얼의 김기덕 감독과 시크한 이정진의 중간에서 좋은 다리 역할을 해주기도 했는데, 포토존에서의 성숙미 또한 아름다웠다.
지금 보이는 이정진의 뒷모습이 카메라의 마지막 컷으로 찍혔다.
피에타는 9월 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앞서 돈의 맛이 만든 사생아라는 타이틀은 한국 영화계 속에있는 김기덕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선이다.
플롯, 아이러니, 복선. 이런 기술적이고 미학적인 것들을 논하기 전에 덩치 큰 배급사에 의해 OEM처럼 찍혀가고 있는 헐리웃 스타일의 영화들. 한국 영화의 상업성이 만든 전반적인 고질병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 포화 상태의 먹이 사슬과 상업성 위주의 헐리웃 표방작들은 돈의 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김기덕이지만 어느샌가 그들에 의해 한국 영화계에서 김기덕 감독은 사생아 취급을 받고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것 처럼 해외에서 사인을 받고, 각광을 받는 부분들이 슬퍼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교 2등을 하고 난 뒤 집에서는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는 않는데, 옆 집, 뒷 집, 모든 이웃들이 인정해주고 환영해 준다면 그것이 꽤나 행복한 일일까? 모르긴 몰라도 김기덕의 가슴 한켠에는 한이 사려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영화 한편으로 승부가 나야하고 평가 받아야 한다. 지금의 한국 영화는 정반대다. 언론 플레이가 우선시 되어야 하고, 예능 오락 등의 미디어 노출은 필연적이다. 심지어는 웃음을 섞어 구걸하는 모습도 보인다. 더욱 더 슬픈 일은 그렇게 극장에 들러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요즘 영화가 그렇지 뭐하는 쓸때 없는 면역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피에타>가 어떤 논란을 또 다시 일으킬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에 소울과 진정성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예술영화던, 상업영화던, 같은 극장에서 같은 시간대에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에타의 개봉일 또한 기다려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