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정기용은 대장암 판정 후, 자신의 건축세계를 담은 일민미술관 전시회 및 후배양성에 여전히 바쁘기 그지없다. 무주공공프로젝트, 기적의 도서관 등 나눔의 미덕을 아는 공공건축의 대가이자 건축계의 이단아 故정기용은 마지막까지 사람과 자연을 향하는 건축을 알리고자 하지만, 시간은 얼마 남지 않는데…”

참고 : http://www.youtube.com/watch?v=OZbqZdIei1A

건축가 정기용에 대한 추모의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그리고 그의 말년의 모습을 담는데 공을 들이고 있는

얼마 전 개봉되어서 나름대로의 화제를 모았던(그리고 여전히 간간히 어딘가에서 게릴라 상영이 이뤄지고 있는) ‘말하는 건축가’는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지만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보지 못했던 작품이었고, 이런 기다림과 아쉬움으로 인해서인지 약간은 실망스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건축가 정기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작품의 진행-내용은 조금은 무성의하고 불친절한 기분이 들게 된다.

건축가 정기용이 어떤 건축적 입장과 자신의 생각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서 상세한 검토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건축가들과 비평가들의 평가를 통해서 건축가 정기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의도하는 것도 아닌, 그의 대표적인 건축들을 둘러보며 느끼고 깨달음을 전달하지도 못하는, 셋 모두 어정쩡하게 시도하고 있을 뿐 말년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으면서 의미 있거나 깊이 있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못하고 있는 것인지 다른 의도 속에서 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서는 건축가 정기용에 대해서 무척 부분적으로만 알게 되거나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건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느끼게 하도록 하고, 공간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창조하는 건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진 못하고 있다. 이처럼 ‘말하는 건축가’는 건축가 정기용과 참다운 건축에 대해서도 알기가 쉽지 않도록 작품은 꾸며져 있다.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적 의지를 담고 있는 무주 공공 프로젝트와 목욕탕이 설치된 안성 면사무소, 무주 공설운동장에 대한 설명은 빈약하기만 할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 정기용이 말하는 공공성의 중요성과 감응의 건축은 ‘말하는 건축가’만을 통해서는 알게 모르게 느낄 수 있을 뿐 삶의 보살핌으로서의 건축이 얼마나 중요한지와 겉보기에 좋게 보이고 화려함으로 치장된 건축가 또는 건축주만을 위한 건축이 아닌 그 건축을 사용하는 자가 어떻게 쓸 수 있을지를 쓰임을 위해서 어떤 공간을 조직해내야 하는지를 좀 더 깊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무척 애매하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외면하는 공공건축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고 하는 건축가 정기용의 생각을 정돈되게 담아내지 못한 ‘말하는 건축가’에 대한 아쉬움은 무척 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건축을 (돕기는커녕) 망치려는 시도들에 대해서 불쾌함과 분노를 내뱉는 장면이 감정적으로만 이해되는 것 같다. 그의 분노를 단순한 분노로서만 이해하게 된다면 건축가 정기용이 지향하고 있는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동대문야구장 철거와 함께 공원을 만들게 되는 과정 속에서 있었던 이야기 덕분에 진정한 건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건축가들의 발언을 통해서 과연 건축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되고, 건축과 공간을 통해서 시대에 말을 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김중업과 김수근으로 대표되는 1세대 건축가 이후의 2세대 건축가로서 건축가 정기용의 위치와 한국사회 그리고 건축계에서의 이방인으로서 살아왔던 모습들, 야박한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진심어림이 느껴지는 그의 건축에 대한 솔직한 평가는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이 갖고 있는 장점과 한계와 마찬가지로 ‘말하는 건축가’가 갖고 있는 따스함과 함께 부족함을 말해주고 있기도 한 것 같다.

‘말하는 건축가’는 건축가 정기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해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건축에 대해서는 조금은 말해주고 있고, 알려주고 있다.

건축가가 하나의 공간에 무엇을 남기려고 하는지를

어떤 생각과 의도를 공간으로서 그리고 건축으로서 표현하려고 하는지를

건축과 공간으로 어떤 기억들을 담아내려고 하는지를

어떤 지향 속에서 공간과 장소에 건축으로서 대답하는지를

‘말하는 건축가’는 어눌하게 묻고 있고 대답해주고 있다.

또한, 작품 속에서 반복해서 그동안 등한시하고 무관심했던 공공성과 공공건축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처럼 뭔가 의도에 비해서는 부족함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떻게 건축을 바라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도 하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깨달음 또한 얻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