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광고 카피라이터인 저스틴(커스틴 던스트)은 마이클(알렉산더 스카스가드)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고질적인 우울증으로 인해 이상 행동을 보이며 결국 결혼을 망치고 만다. 상태가 심해진 저스틴은 언니인 클레어(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고 클레어는 그런 저스틴을 극진히 보살핀다. 한편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클레어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과학자의 말을 맹신하는 남편 존(키퍼 서덜랜드)으로 인해 내색은 하지 못한다. 날이 갈수록 더 이상 행동을 보이는 저스틴과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는 클레어. 다행히 과학자들의 말대로 멜랑콜리아는 지구를 지나쳐 다시 멀어지는데….”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던 감독이었고, 남들이 그렇게 좋다고 하는 ‘도그빌’이나 그 밖의 작품들도 큰 감흥이 없었기 때문에 나와는 맞지 않는 감독이라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으로 가득했던 ‘안티크라이스트’도 전혀 무관심했었고, ‘멜랑콜리아’도 커스틴 던스트가 출연한다고 해서 그리고 그녀의 벗은 몸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말을 듣게 되었어도 큰 흥미를 끌지 못했었다.

그랬었는데... 갑작스럽게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서 무척 애매한 발언을 내뱉었다는 소식과 무슨 생각으로 (그런 생각을 평소에도 하고 있었는지 어땠는지 관심 없지만) 어떤 꼴을 당할지 알면서도 그런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발언 덕분에 전혀 관심이 들지 않던 그의 작품에 조금은 관심이 들게 되었고, 몇몇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서 좋다와 괜찮다의 어딘가에서 작품에 대한 평가가 간간히 들려져서 속는 기분으로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내 예상대로 속는 기분으로 보았던 것이 좋았던 것 같고,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이 자기-과대망상과 종말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감상주의로 가득한 작품을 보게 되니 모든 것에 무신경한 지금이 아닌 예민하기만 했고 감상적이고 감수성이 넘쳐흐르던 어린 시절에 보았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궁금함이 무척 궁금하지도 않을 정도로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취한 감수성과 우울함으로 가득한 ‘멜랑콜리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그 우울함이 쉽게 전달되지가 않는 밋밋함으로 가득한 것 같다.

영화는 간단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무척 그 간단하고 단순한 것을 무슨 생각인지 비비꼬고 뒤엉키며 어렵게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어떤 면으로는 은유와 상징 그리고 여러 의미들로 가득한 작품으로 생각할 것이고 이 작품에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감동적으로 칭송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아서인지 이미 어떻게 끝을 낼 것인지를 정한 뒤에 어떻게 그 끝을 향해서 치달을 것인지 무척 이상한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을 뿐인 작품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고민이 효과적으로 담아진 것인지 그리고 그 고민이 충분하고 필요한 고민이었는지도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나마 별다른 만족감을 느낄 수 없고 황당할 정도로 야심만만하고 공허함으로 가득한 작품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이해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커스틴 던스트와 샤를로트 갱스부르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중 한명만 꼽으라면 신경쇠약과 온갖 정신적인 문제들로 가득한 저스틴을 연기하는 동안 어떻게 배역을 표현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힘들어했을 것 같은 커스틴 던스트 덕분인 것 같다.

어차피 (배우로서의) 시작부터 어린 뱀파이어를 연기했었을 정도로 멀쩡한 배역보다는 이색적인 배역들이 더 기억에 남는 그녀였는고,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작품은 물론 ‘엘리자베스타운’ 이겠지만 그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배역이라고 생각되던 작품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는데, 이 작품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만이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이었고 그녀는 부족함 없이 ‘멜랑콜리아’가 만들어내려고 하는 분위기와 정서 그리고 이 작품의 모든 것을 뽐내듯이 보여주고 있다.

‘멜랑콜리아’는 (나치-히틀러 발언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고, 그 음악과 함께 미술과 장식, 양식, 정지된 것 같은 움직임과 지구와 다른 행성과의 충돌을 보여주며 상징과 의미들로 가득한 장면들 이후 이 작품이 어떤 결말과 끝맺음을 보여줄지를 보여준 다음에 시작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저스틴과 클레어 자매의 이름으로 지어진 1부와 2부로 나뉜 ‘멜랑콜리아’는 저스틴을 통해서는 행성과의 충돌을 알기 전 이미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예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저스틴의 (예민한 것인지 지나치게 산만한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그다지 없는 것인지 그리고 아마도 그 모든 것들이 다 맞는 대답이라고 생각되는 조금은 맛이 간)모습과 산만함과 아슬아슬함이 느껴지는 길고 긴 결혼식의 모습은 이 허망한 작품의 결론과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게 느껴진다.

이전과 같이 핸드헬드로 찍어 사실적이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엿보는 듯이 잘 반영하고 있는 화면들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혼식의 혼란과 어지러움이) 이야기의 진행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의문스럽게 느껴진다.

단지 저스틴의 불안정한 심리를 말하려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의 가족들의 이기적이면서 무책임하고 그리고 그 붕괴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염두를 두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게 되고 그것이 과연 행성이 다가오면서 만들어내는 불안감과 두려움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도 알지 못하겠다.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행성이 다가오면서 만드는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해서 점점 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채워진 2부는 1부 보다는 보기가 편하기는 했지만 반대로 왜 그런 혼란스러움과 불안감으로 가득한 것인지는 쉽게 이해가 되지가 않았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과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무척 놀라운 일이고 갑작스러움에 충격을 받았을 수 있기도 하지만 중병이나 치료가 불가능한 병으로 인해서 엄청난 고통 속에서 겪게 되는 끝맺음이 아니라는 것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과민방응과 냉소적인 반응 둘 다 그 혼란스러움을 제대로 담아내지를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호화로운 곳에서 그들이 겪는 모습을 바라보니 도시에서 엄청난 혼란 속에서 끝을 맞이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호강을 누리면서 끝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어떤 의도 속에서 작품을 담아냈는지는 몰라도 ‘멜랑콜리아’가 과연 의도한 결론에 맞는 최선의 진행과정이었는지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 끝맺음 자체만을 그리고 그 끝맺음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과 같은 저스틴과 클레어의 혼란과 괴로움만이 거대함으로 가득하지만 끝없는 공허함으로 채워진 작품을 느슨히 연결시켜주고 있을 뿐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무슨 이유로 이처럼 어렵게 끝을 말하고 종말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를 않았는데, ‘멜랑콜리아’처럼 길고 장황하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에 취해서 끝을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더 쉽고 간단하게 우리들의 끝을 말해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 모르니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 소중함을 최대한 자주 깨달으며 살아가면 된다.

이런 평범하지만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진실을 우리는 항상 잊고 살아가고 있다.

이 이상의 것은 끝을 알게 된 다음이 아닌 살아가면서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 1. 라스 본 트리에의 정치적인 발언 이후에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보아야 할지가 고민되긴 했다. 그의 정치적 발언이 이 작품의 구성에 영향이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전혀 무관하고 그저 영화로서만 다룰 수 있는 것인지는 솔직하게 말해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다만, 그의 발언으로 인해서 이 작품이 왜곡해서 이해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2. 잭 바우어님께서는 이 작품에서 전혀 그 진면목을 보여주질 못하신다. 그라면 행성충돌이 아니라 외계인이 침입한다고 해도 살아남았을 것 같았는데... 내가 오해를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