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의 초기작 중 하나인 ‘달로스’는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작품이며,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공중파 TV를 통해서 처음 접했던 ‘달로스’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분위기였고 이야기 진행을 보여서 무척 기억에 남았었고, 나중에야 이 작품을 오시이 마모루가 감독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만큼 (물론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몇몇 분위기들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달로스’가 계속해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거론되는 이유는 이 작품이 최초로 OVA라는 명칭을 달고 제작된, TV에서 방영하지 않았고 극장에서도 개봉하지 않았던, 순전히 비디오 시장을 목적으로 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인데, 얼마나 이 작품이 계속해서 거론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무척 획기적인 작품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상업적인 고려와 작품성에 대한 고려가 많이 있었을 것이고, 오시이 마모루도 여러 가지 고려와 고민 끝에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것 같다.
‘달로스’는 지금 보아서도 무척 사실적인 설정들이 많은데, Science fiction이 공상과학으로 번역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공상보다는 과학에 많은 비중을 두고 미래세계를 묘사하려고 하고 있던 것 같다.
지구가 아닌 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달로스’는 겉보기에도 단순한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시작부터 잘 짜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고, 달에서의 치안, 지구와의 관계, 내부의 계급구조 혹은 사회구성, 통제와 반란, 지구의 자원고갈 문제 등 미래세계의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주제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려고 하고 있고, 그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에서 우리들은 어떤 생각과 선택을 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고 있다.
‘달로스’는 어떤 식으로 보아도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기 보다는 일종의 과정 속에 있는 작품이고, 시작과도 같은 느낌으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추가되는 이야기가 제작되지 않아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렇게 (추가된 이야기가) 제작되지 못한 이유가 상업적인 성공이 생각보다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달로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생각되는 설정은 아마도 달로스라는 기계-구조물을 신으로 생각하는 달세계의 노동자들의 믿음인 것 같은데, 그들이 달로스를 신으로 섬기고 이해하는 모습에서 신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심리와 어떠한 경이로움을 접했을 때 느끼는 감동 혹은 숭고함을 경험했을 때의 감정이 신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반란군의 저항 그리고 저항에 대한 탄압과 갈등이 주된 이야기이고, 그런 이야기 속에서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정의, 숨겨진 진실 등 여러 보조적인 이야기들이 함께 진행되면서 흥미를 끌게 되기는 했지만 1980년대의 작품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몇몇 내용이나 연출에서는 조금은 촌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 접하는 경우에 느끼게 되는 어쩔 수 없음이지만 (의외로) 액션장면에 좋은 연출력을 보이는 오시이 마모루이고 그 당시에는 좀 더 액션장면들에 많은 공을 들였는지 인상적인 장면들도 많았었고, 4부작으로 구성되어서 긴 호흡의 작품도 아니라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달세계의 개척민들의 모습에서 미국의 서부영화들의 개척민들의 모습들이 떠올려지고 있었는데, 오시이 마모루가 어떤 작품들의 영향 속에서 ‘달로스’를 완성시켰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하지만 달로스라는 상징물이 신으로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파괴되었을 때 달세계의 개척민-노동자들이 보이는 거친-혼란스러운 반응이 유난히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이 작품의 열린 결말이 어쩐지 무언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무척 획기적이었고, 의미심장하거나 진지한 분위기로 일관된 내용이어서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좀 더 확장시킨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은데, 이 작품 이후로 점점 더 애니메이션을 개인적인 사색의-철학적 결론들을 담아내는 과정으로서 작품을 만들어나가게 되는 오시이 마모루의 이후의 활동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그가 어떤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