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조직에서 뛰쳐나온 아화(장가휘)는 마카오에 숨어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태(오진우), 아묘(장요량), 아비(임설), 화(황추생)는 오랜 친구인 아화(장가휘)를 만나러 마카오를 찾아온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차라리 내가 너였으면 좋겠어

두기봉의 작품이 좋아져서 그의 다른 작품을 하나 더 보게 되었는데, 그의 팬들은 그리고 평론가들은 그의 최고작으로 꼽고 있는 ‘익사일’을 보았고, 무척 재미나게 보기는 했지만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할지는 조금은 망설여지게 되기도 했다.

좋기는 한데,

좀 지나치게 힘을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잉이 충분히 의도하고 있던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어떤 평가를 해야 할지를 망설이게 되기도 하다.

의도한 과잉에 어째서 과잉되었냐고 말한다면 그건 멍청한 질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익사일’을 쉽게 말한다면 말 그대로 총질의 향연이고,

어떤 식으로든 옛 홍콩 액션영화들이 만들어냈던 그런 움직임과 분위기를 다시금 반복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런 반복이 하나의 새로움을 담아내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면 그저 뒤늦은 완성으로서 이해될 수 있는지 쉽사리 판단되지가 않는다.

다만, 두기봉의 작품에 열광하는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후자보다는 전자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든 전자든 어쨌든 지금의 느낌이 아닌 예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묻어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의 작품은 논의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 수준에서 머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재미나긴 엄청 재미나다는 점은 무조건 동의한다.

‘익사일’은 친절하게 무언가를 설명해주거나 아예 하려고 하질 않는다.

어차피 이 작품이 담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에 있다는 듯이 혹은 대충 알아서 생각하라는 듯이 이런 저런 설명에 대해서 귀찮아하는 것 같고, 이야기 자체에 큰 의미가 없다는 듯이 작품은 완성되어져 있다.

‘익사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요한 구성요소 중 첫째는 현란하고 아름다운 액션장면들일 것이고, 둘째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무표정함 속에서 만들어내는 하나의 정서와 분위기일 것이다. 그 허세로 가득하고 보다보면 웃어야 할지가 고민될 정도로 과잉된 진지함으로 넘치는 의도된 분위기는 이 이상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작품을 구성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일 것이다.

‘익사일’의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예감하고 어느 정도는 그 운명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향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운명에 두려움을 갖지 않으며 허무함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간간히 그들의 보이는 발작적인 웃음으로 인해서 애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혹은 운명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듯이 혹은 초연한 것처럼 보이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익사일’은 기본적인 밑바탕이 서부극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문을 두드리는 첫 장면부터 그런 느낌은 들게 되었고, 마지막 호텔 내에서의 총격전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서부극과 기존의 홍콩 액션영화의 움직임과 연출 그리고 정서를 무척 독특한 방식으로 꿰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장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불길함은 딱히 이야기라고 말할 것이 있는지도 의문스러운 이 작품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있으면서 그 긴장의 폭발인 액션장면을 통해서 긴장을 해소하고 있고 다시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면과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은 현대적이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는 그리고 분위기 자체는 고전적인 느낌이 많이 묻어나고 있으며, 총격전 이후에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느닷없는 들뜸을 보이는 장면들과 같이 어떤 전체적인 완결성을 중요시하기 보다는 각각의 장면들을 통해서 이것 저것을 짜맞추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어떻게 본다면 일관성 없이 작품이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런 고민 자체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그냥 같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각기 다른 분위기 속의 장면들을 이어놓고 있어 보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즉, 어떤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을 먼저 생각한 다음에 그들이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들을 만들어보고, 집에서 가구들을 옮기고 정리하는 장면들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황량한 비포장도로를 걸어보도록 하는 등 어떤 캐릭터들을 갖고 담아내고 싶었던 장면들을 담아낸 다음에 하나의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어떤 이야기로서의 설득은 별다른 관심도 없어하고 귀찮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액션장면은 공들이고 여러 고민 속에서 완성되어졌다는 생각인데,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무면허 병원에서의 총격전이야 말로 가장 환상적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커튼이 펄럭이면서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침묵과 고요함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불길함

그리고 눈빛의 마주침과 동시에 펼쳐지는 총격전은 그야말로 황홀함 그 자체였으며 그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이제는 오직 두기봉만이(어쩌면 오우삼도 여전히 가능할지도 모르다)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는 생각이다.

그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공간과 배치 그리고 풍경을 통해서 어떤 움직임을 그리고 연출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움직임과 연출은 하나의 분석의 대상이 아닌 아름다움의 대상이기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고, 놀라움으로 가득한 ‘익사일’의 액션장면들이야 말로 진정한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되었던 총격전을 통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다시금 경험할 수 있었다.

감탄하고 황홀해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