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부시대에 쇼군의 동생이자 포악한 영주인 나리츠구를 암살하기 위해 13인의 자객이 모인다. 그들은 나리츠구가 에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거사를 행하기로 계획을 짠다.”

당신들이 내게 맡긴 고귀한 목숨 지금부터 제가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무라이 특유의 절도와 살기를 머금은 칼날의 날선 느낌을 전달하고 있으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피와 폭력에 굶주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앞서는, 생각보다는 재미나고 생각 이상으로 잔혹함을 동반한 (전형적인) 사무라이 활극인 리메이크 작 ‘13인의 자객’은 몇몇 잔혹한 장면과 피바람과 칼부림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느껴질 것이다.

원작인 1963년도 작품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21세기 관객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안겨주기 위해서 새롭게 제작된 ‘13인의 자객’은 대혈투를 벌이는 후반부를 위해서 최대한 속도감 있게 앞선 부분을 전개시키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서두르고 있기만 한 전개로 인해서 발생될 수 있는 산만함을 억제하기 위해서 중심 인물인 야쿠쇼 코지를 통해서 이야기 전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노림수는 매우 효과적인 것 같다.

어차피 ‘13인의 자객’은 후반부 대혈투를 위한 전반부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불의에 분노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동료들을 모으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진행시키기 보다는 간략하게 그리고 최대한 각각의 인물들에 개성을 심어주면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이 작품에서는 여성들이 배제되어 있거나 주변에 머물고 있을 뿐이고,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혹은 그저 성적인 노리개) 정도일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남성성을 강조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사무라이가 갖고 있는 충성과 정의 그리고 죽음조차 일종의 자극으로서 받아들이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간간히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가 떠올려지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원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새롭게 만들어진 ‘13인의 자객’의 특징은 단순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와 함께 사무라이 활극에 대한 관객들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제작될지도 모를 사무라이 작품들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와 함께 단순히 사무라이 활극만이 아니라 일본의 시대극에 대해서 일종의 하나의 모범 답안처럼 다뤄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꽤 긴 시간을 채우고 있는 대혈투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그것을 위해서 앞선 장면들을 배치하고 있고,

관객들도 그리고 제작하고 있는 이들도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각각의 장면들과 액션들은 채워져 있다. 생각보다는 살벌함과 긴장감 넘치는 칼부림이 아닌 떼거리 패싸움과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약간은 만화적이면서도 나름대로 날것의 느낌도 갖고 있기 때문에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감과 박력을 잃지 않고 있고,

그것에 충실하려고 애쓰고 있는... 그리고 충분히 그것을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만족스러운 오락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에 대해서 모든 논의를 마무리 짓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조금은 덧붙여서 몇 마디 더한다면, 이 작품에서는 간간히 정치 / 권력적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지배자가 될 인물이 잔혹 / 포악하기만 하고 어떠한 권위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서야 암살을 결심하는 장면과 그 과정을 통해서 지배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잠시 모색을 하고 있다. 현명하고 지배받는 이들을 헤아려주는 지배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와 지배받는 이들은 그저 지배받는 존재일 뿐(일종의 하등 인간이라는 식의)이라는 입장에 대한 말싸움과 같은 논쟁은 칼부림 과정에서의 약간은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면일지도 모르겠지만 분히 고민해볼만한 논의일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많은 기간 평화가 지속되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인 사무라이들이 정의감과는 별도로 죽음을 각오한 혹은 죽음 직전의 스릴에 대한 몰두는 자기 수양 혹은 성찰을 위함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베고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그릇된 칼잡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태함과 무기력 / 무감각함이 작품에 등장하는 쇼군이 될 인물의 잔혹 / 포악함을 통해서 삐뚤어져 분출되거나 극단적인 자극을 찾는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이후에 그와 같은 나태함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는 영화의 끝맺음은 꽤 시사적인 의미도 갖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처럼 진지한 접근을 하기에는 이 작품이 의도하고 있는 액션과 활극 그리고 사무라이들의 대혈투라는 영화적인 재미와 즐거움이 너무 노골적인 것 같다.

참고 : 이런 작품을 보게 될 때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요짐보’와 ‘츠바키 산주로’가 얼마나 열렬한 탐구의 대상이 되는지 더욱 이해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