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어촌에 사는 남자 유이치(쓰마부키 사토시)는 혼자다. 함께 술을 마실 친구도 사랑을 나눌 여자도 없다. 유일한 취미라고는 미친 듯 속력을 내 드라이브를 하는 정도. 찬바람 가득한 일본 북쪽 마을에 사는 그는 마치 모든 감각이 얼어붙은 사람 같다. 사가의 양복집에서 일하는 여자 미츠요(후카쓰 에리) 역시 유이치와 닮은꼴이다.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기쁨도 슬픔도 저버린 것 같다. 그리고 이 둘이 만난다. 채팅 게시판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둘은 허름한 러브호텔에서 몸을 섞는다.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악인>은 선과 악의 경계를 묻는 작품이다. 차가운 일상을 닫고 사랑의 문을 연 순간 유이치는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한다. 미츠요를 만나기 이전 같은 게시판에서 만난 여자를 그는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이후 영화는 유이치의 과거, 그리고 그의 주변인물을 통해 무엇을 악이라 부를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살인자의 가족, 죄를 벗어난 용의자, 피해자의 가족 이야기 등 유이치의 심정 묘사보다 그의 울타리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는 식이다. 올해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카쓰 에리, 무표정한 얼굴로 이전과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쓰마부키 사토시의 연기가 돋보인다.”

일본에서 2010년에 발표되어 호평을 받은 이상일 감독의 ‘악인’은 최근 일본 영화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선과 악의 모호함과 반성과 성찰에 관한 작품이고, 뒤늦은 후회와 잊고 지내고 있던 주변에 대한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을 갖으려고 하는 그리고 알려주려고 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조금은 궁금증을 만들면서 시작하고 있고,

우연하게 벌어진 상황으로 인해서 일어난 살인과 그로 인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뒤늦은 후회로 가득한 작품이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으로 인해서 점점 괴로워하는 주인공과 그가 뒤늦게 사랑하게 된 여성과의 만남과 이어지는 도주는 서정적이면서 가슴 아프게 진행시키고 있고, 뒤늦게 찾아온 사랑과 낭만 그리고 그 뒤늦음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서로가 함께하고 싶은 욕심 아닌 욕심을 보이고 그렇게 그들의 도주는 슬프게만 비춰주고 있다.

어디로도 향할 수 없고 그저 숨어야만 하는 그들은 막막함과 괴로움 그리고 함께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채워져 있고, 그 간절함 / 애절함은 이 작품의 기본 정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일찍 만났 / 알았더라면...’ 이라는 아쉬움과 우발적으로 벌어진 살인으로 인해서 갖게 되는 괴로움은 어두운 과거에 대한 기억과 함께 살인은 저지른 주인공에 대한 모호한 감정을 갖게 만들고 있다.

반면, 이야기는 사랑에 빠진 남녀와 그들의 도주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조금 더 확장시켜 그들의 주변도 담아내고 있다.

살인을 당한 여성의 부모는 갑작스러운 딸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고 별 뜻 없이 수군거리는 주변 사람들과 다투기도 하고, 서로에게 잘못을 탓하기도 하면서 괴로워하지만 그 괴로움을 이겨내려고 하고 얼마나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것들을 잊고 있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소중한 것을 잃게 되니 소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그들이 잃은 소중한 존재로 인해서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 자신들 곁에 있었는지 그들은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의 할머니 또한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서 괴로워하지만 자식에 대한 애정을 지우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 가장 잔혹한 사람들은 살인을 당한 여성과 그녀가 죽기 직전에 만났고 그녀를 차에서 걷어차고 매정하게 혼자 떠나는 젊은이일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전혀 잘못에 대한 뉘우침 없이 그런 행동을 저지르고 있고, 그 행동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는다(물론, 여성은 직후에 사망하기 때문에 후회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작품에서는 그런 식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과연 누가 나쁜 존재 / 악인인지에 대해서 묻고 있는,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의 모호함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는 ‘악인’은 도주하는 남녀의 애절함으로 인해서 보다 감상적인 기분을 갖게 만들고 잔인한 말과 행동 그리고 반성의 기미가 없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인해서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선인지 악인지를 묻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의 말미에서 죽은 여성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주변에 대한 소중함과 그 소중한 대상을 잃었을 때 갖게 되는 커다란 슬픔에 대해서 큰 공감을 갖게 되고, 작품이 전달하려고 하는 감정과 의미에 설득되기도 하지만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청년과 그가 단순히 나쁜 존재로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사랑으로 인해서 더욱 괴로워하고 그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고 괴로움 속에서 택한 도주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는 흔들리게 되지만 살해당한 딸의 아버지와 같은 설득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남녀의 모습에서 간절함과 반성 혹은 깨달음 보다는 집착적인 느낌을 우선 갖게 되는 것 같고, 살해당한 딸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깨달음도 그리고 허탈함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일의 ‘악인’은 절반의 성공을 이뤄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연출에서는 아쉬움 없이 담아내고 있고 보는 내내 애절함으로 가득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살인을 저지는 청년과 그를 사랑하게 된 여성의 관계를 보다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는 것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선과 악의 모호함을 전달하는 것에는 조금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인’과 마찬가지로 2010년에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던 ‘고백’도 선과 악의 모호함을 다루고 있었는데, 두 작품 모두 구분의 모호함을 얘기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그와 같은 얘기에 맞는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데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알겠지만, 그것을 말하는 방식이 혹은 적절한 사례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데, 둘 다 이런 아쉬움을 다음 작품에서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주제로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어낼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한다면 보다 더 빼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