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에서 택시를 모는 구남은 빚더미에 쌓여 구질구질한 일상을 살아간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6개월째 소식이 없고, 돈을 불리기 위해 마작판에 드나들지만 항상 잃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청부업자 면가에게서 한국 가서 사람 한 명 죽이고 오라는 제안을 받는다. 절박한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남은 빚을 갚기 위해, 그리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황해를 건넌다.
매서운 바다를 건너 서울로 온 구남은 틈틈이 살인의 기회를 노리면서 동시에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목표물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구남은 살인자 누명을 쓴 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친다. 한편 청부살인을 의뢰한 태원은 모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구남을 처리하려 하고, 연변에 있던 면가 또한 황해를 건너와 구남을 쫓기 시작하는데…”
‘추격자’의 기대 이상의 성공으로 인해서 나홍진 감독의 다음 작품은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갖는 작품이 되었다.
평론가도
관객들도
아마도 본인도
기대 이상의 성공이 단지 우연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 기대와 함께 찾아오는 부담감을 ‘황해’는 잘 피하고 있고 떨쳐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추격자’와 마찬가지로 ‘황해’ 또한 그저 좋다고만 평가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찾게 되는 것 같다.
잔혹하고 혹독하기만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처절함과 악다구니를 담아내고 있으면서 거기에 TV 드라마 ‘장미의 전쟁’을 채워 넣고 있는 것 같은 ‘황해’는 나홍진 감독의 장기가 되어버린 사실적인 액션과 연출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장점과 함께 필요 이상으로 야심으로 인한 단점들도 노출되고 있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 중국으로부터 시작해서 한국으로 향하는 초반부의 이야기와
-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도 사랑하는 그리고 사라져버린 아내를 찾는 과정
- 무언가가 꼬인 것 같은 살인과 이어지는 숨 막히는 도망침
- 뒤엉킨 상황과 이로 인해서 속속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등장인물들과 복잡해지는 관계들
- 한없이 엉켜만 가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서 하나씩 죽어나가는 사람들과 그렇게 모든 이들이 참혹하고 잔혹해져만 가는 과정
- 냉소와 잔혹 그리고 씁쓸하기만 한 결론과 함께 일말의 미련조차 남기려고 하지 않는 것 같은 마지막에 보여주는 싸늘한 냉소가 느껴지는 잔인한 결말까지
돈이라는 욕망을 둘러싸고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잔혹하고 악몽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는 ‘황해’는 한국이 이런 곳인가? 라는 놀라움과 충격을 느낄 수 있지도 모르고, 한국은 이런 곳이다! 라며 짜릿함과 씁쓸함도 안겨주는 작품일 것이다.
자극적이지만 단순히 자극만이 아니라 시대의 풍경을 놓치려고 하지 않는 나홍진 감독의 연출은 단순히 자극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도록 밑바탕에는 사회적인 문제점을 채움으로써 좀 더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족-불법체류자라는 한국사회의 이방인들-밑바닥들이라는 거칠고 암울하기만 한 삶을 바라보고 있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척박한 환경을 그리고 지독하고 가혹하기만 한 삶의 주변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가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려고 한국으로 건너 온 주인공 구남의 절박함을 그리고 아내를 찾아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성공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어서 영화는 보다 더 긴장감을 만드는 것에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벼랑 끝에서 줄타기를 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등쳐먹고 등골을 빼먹는 이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어둠 속의 세계를 더욱 잔인하고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구남의 목숨을 노리는 김사장은 동료를(그리고 관련된 모든 이들을) 죽이고 모든 것을 차지하려고만 하고 있고, 누가 어떻게 죽어나가든 문제만 해결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또한 구남을 이용했던 면사장은 거칠고 잔혹한데다 지독한 생명력으로 자신을 방해하고 노리는 이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며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들개들의 개(떼)싸움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의 ‘황해’는 이처럼 등장하는 어떤 이들도 편하게 발을 뻗지 못하고 불안감에 속에 있을 뿐이고, 골머리를 앓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그나마 구남을 동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동정도 쉽게 거두고 있으며 모든 이들에 대하여 일말의 동정을 갖지 않고 있다. 영화는 냉정하게 모든 이들이 잔혹해져만 가는 과정을 그리고 어떻게 하든 살아남으려고 서로를 낭떠러지로 밀쳐내고 있는 모습을 집요하게 뒤쫓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이와 같이 온갖 피와 땀냄새로 엉킨 작품으로만 만들지 않고 무언가가 아쉬웠는지 여기에 남녀 간의 애정과 불륜이라는 요소를 채우면서 조금은 다른 성향을 담아내려고 하고 있다. 애정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육체적 갈증에 대해서 다룬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세명의 여성인 구남의 아내, 죽은 김사장의 아내, 동료를 죽인 김사상의 애인(정부)은 전부 자신의 남편 혹은 애인을 배신하는 존재로 다뤄지고 있고(물론, 구남의 아내는 마지막 장면에서야 그 모든 불신이 오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지만 지속적으로 그녀가 남편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오해를 하도록 하고 있다), 영화에서 벌어진 거의 대부분의 수많은 죽음이 단지 남녀의 불륜으로 시작된 어처구니없는 죽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보다 더 허무함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이를 통해서 무슨 교훈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나홍진 감독은 좀 더 다른 요소를 채우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이전 장면들에서 보여주었던 잔혹함과 피범벅들로 인해서 별다른 인상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저것들을 다 쳐 죽여라’라는 선동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은 암울함과 허무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후자를 의도했다면 나름대로 성공한 것 같다).
‘황해’에서는 전작 ‘추격자’와 같이 인상적인 추격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초반 살인 장면 직후에 벌어지는 도주와 경찰들의 추격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짜릿함 그 자체였으며, 이후 장면들에서 보여주는 온갖 도주와 추격 그리고 결투들은 그동안의 한국영화들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을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는지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노렸는지 후반부 면사장과 구남의 차량 추격 장면은 그저 카메라를 (필요 이상으로) 흔들고만 있을 뿐인 것 같이 어지럽기만 할 뿐이었고,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들은 사실적인 화면을 통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감을 줄이고 있을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필요 이상으로 피에 굶주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현실에서 살아가는 밑바닥 삶의 굶주림을 제대로 담는데 성공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이 피에 대한 굶주림은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장점을 많이 무너지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구남과 면사장을 통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밑바닥 / 뒷골목 조선족들로 대표되는 불법체류자들의 척박한 삶을 악취마저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고 만들어내고 있으면서 그 현실감을 다시금 환상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악몽과 같은 롤러코스터를 탔었다는 기분을 들게 만들고 있다는 뜻이고, 이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삶의 환경을 돌아보고 개선의 필요성을 생각하도록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런 의도로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비난의 근거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떼(개)죽음들과 피범벅은 저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현실! 이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는(혹은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받는) 현실과는 지나치게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패싸움이 아니라 떼죽음으로 만들고 있는 장면들과 그 죽음들 한가운데 있는 면사장의 모습은 분명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는 있지만 실감나게 만들지는 않고 있다.
그저 사실감 넘치기는 하는데... 진짜 저럴까? 라는 다가섬과 물러남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황해’는 나홍진 감독이 갖고 잇는 장점과 단점을 오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다른 관객들의 평가와 동일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황해’는 생각보다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만들어냈을 뿐이고, 연기자들의 멋진 연기(하정우와 김윤석의 연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더하겠나? 그냥 최고의 연기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부족함 없이 펼쳤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와 좋은 연출이기는 했지만 뭔가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뒤엉켜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있다.
야심작이고,
나름대로 야심이 성공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실패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는 절룩거린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좋으면서도 흡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처럼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기도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참고 : 1. 개인적으로 그다지 듣기 능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작품 초반과 후반의 대부분의 대사들은 제대로 들리지를 않고 있다. 이건 녹음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대사 전달력에 대한 문제제기다.
2. 항상 한국영화를 보면서 들게 되는 생각이지만 유혈이 낭자한 장면을 보게 되면 잔인한 장면이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이상하게 피가 너무 ‘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을 많이 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좀 더 끈적거리고 찝찝함 느낌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예산 문제로 인해서라면 할 말 없다.
3. 내가 알고 있는 한... 일개 은행 과장 따위가 바람을 피울 시간이 있다는 생각은 영화감독 정도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은 일에 치여서 사람 만날 시간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4. 설마 영화를 몇 개의 장으로 나눈 것이 ‘바스터즈 : 거친녀석들’의 영향은 아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