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 메이크피스 타커리의 원작 소설을 큐브릭이 영화화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작. 18세기 아일랜드 청년 배리 린든이 유럽으로 건너와 우여곡절 끝에 귀족과 결혼하지만 결국은 몰락하게 되는 과정을 냉소적으로 그렸다. 미술과 의상, 촬영 등 그가 이 시대극에 쏟아낸 열정은 대단했으나, 개봉 당시에는 3시간의 지루한 시대극으로 낙인찍혀 흥행에 참패하면서 스탠리 큐브릭을 크게 상심하게 하였다. 그 결과, 큐브릭은 자신의 차기작으로 보다 상업적인 스티븐 킹의 베스트셀러 <샤이닝>을 선택하게 된다.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에서 NASA에서 우주 탐사용으로 개발된 렌즈를 개조하여 사용함으로써 자연광과 촛불 조명만으로 18세기 영국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특히 이 작품은 모든 장면에서 카메라 워킹을 배제하고 줌을 사용함으로서, 마치 당시의 풍경을 그린 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평면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화면을 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큐브릭의 많은 작품들과 궤를 달리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테크놀로지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인간군상들에 대한 냉철한 관찰력이라는 측면에서 큐브릭의 완벽주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모든 작품들이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꼽히는 ‘배리 린든’은 한편의 시대극이면서도 거대한 풍경화와 같은 작품이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풍경화들을 담아내듯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도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이지 않을까?

물론, 그 아름답기만 한 풍경들 속에서의 등장인물들은 그다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

주인공은 신분상승과 출세 그리고 성공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애쓰고 있고, 그 야심과 노력으로 인해서 누구도 올라서기 어려운 위치까지 올라서지만 그곳에서 그는 서서히 자신의 몰락을 시작한다.

또한 그와 사랑에 빠지는 여성들은 아둔하거나 욕망에 충실하거나 지나치게 순진할 뿐이고, 그 외의 인물들도 당시의 시대를(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대변하는 존재들이고 그들의 모습은 한편의 소설을 토대로 구성된 인물이기도 하겠지만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그리고 단순하기만 한 삶을 살아가는 듯이 그들은 자신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의 이면의 모습은 철저할 정도로 계산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이는 그 무표정함은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게 되는 것 같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레이몬드 배리가 어떻게 모든 것을 거머쥐게 되고 다시금 모든 것을 잃게 되는지에 대한 흥망성쇠를 퉁명스럽고 냉소적이게 담아내고 있는 ‘배리 린든’은 처음부터 그의 운명이 성공과 몰락을 향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진행하고 있고, 해설자는 감정 없이 그의 삶을 그리고 그 시대의 분위기와 풍경을 말해주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은 그런 해설을 통해서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삶에 대해서 그리고 성공과 몰락에 대해서 차갑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 과정을 섬세하고 서정적이게 담아내고 있다.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이지만 지나칠 정도로 세밀한 화면들이다. 그 차가움과 뜨거움이 잘 결합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자신들의 모습을 화가가 그림에 남기고 있는 듯이 표정 변화를 절제하고 있고, 되도록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카메라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듯이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그들의 표정을 그리고 모습을 가까이서 담아낸 다음에 점점 뒷걸음질 치며 거대한 풍경 속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멀찍이서 그들을 바라본다.

하나의 인물화가 하나의 풍경화로 변하고 있으며,

그 모습을 어떠한 (촬영에) 인위적인 연출 없이 그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고 있다.

널리 알려졌듯이 스탠리 큐브릭은 그와 같은 화면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리고 담기 위해서 특별히 카메라 렌즈를 개조하기까지 하면서 그 당시의 풍경을 바로 그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그 시대 그 자체를 다시금 불러오고 있고, 만들어내고 있다. 얼마나 그 시대를 다시금 재현시키려고 그가 집착했는지는 그에 관한 다큐를 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레이몬드 배리가 어떻게 신분 상승을 이뤄내는지 그 과정을 별다른 개입 없이 퉁명스러운 설명을 덧붙이며 배리의 성공 과정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있으며, 그 과정 속에서 그가 경험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를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듯이 서로를 이용하기만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그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진심과 순수함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서 냉소적이게 되고 부와 명성 그리고 계산적인 관계만을 추구하게 되고 욕망을 따르기만 하는 삶으로 변하게 되는 배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당시의 삶을 바라보듯 지금 시대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만든다.

서두를 것 없이 성공의 과정을 담아내듯이 몰락의 과정 또한 서두르지 않고 어떻게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지 담아내고 있는 과정은 조급하거나 급격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하나의 인물(들)에서부터 전체적인 풍경까지 서서히 모든 장면을 담아내고 있는 영화의 장면들과 같이 레이몬드 배리가 어떻게 배리 린든이 되고 다시금 모든 것을 잃게 된 레이몬드 배리가 되어가는지를 담고 있다.

그 과정을 바라보며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삶은 그저 삶일 뿐이라며 냉소적인 생각도 갖게 되기도 하는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은 그의 유난스러울 정도로의 완벽주의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하나의 영화가 하나의 풍경화가 되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진심으로 사랑한 남성이었고,

이제는 그저 매년 약간의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사람의 위치로 되어버린 레이몬드 배리를 잠시 생각하며 여러 생각이 오가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이후 하고 있던 업무를 계속해가는 린든 부인의 모습처럼 삶에 대해서 그리고 성공과 몰락이라는 흥망성쇠를 잠시 떠올리고 곤혹스럽기도 하고 냉소적이기도 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저 미술관의 풍경화들 사이를 바라보고 떠나는 듯 담고자 하는 풍경을 그리고 화면을 만들어내고 담아내는 스탠리 큐브릭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스탠리 큐브릭의 가장 우아하고 서정적인 그러면서도 차가움을 놓치지 않는 작품일 것이고,

그의 완벽주의가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쉽게도(혹은 당연하게도) 그의 이러한 예술적 성취는 대중들의 호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예술적 성취만을 이뤄냈을 뿐이고, 항상 비평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던 스탠리 큐브릭으로서는 조금은 불만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이제는 어찌 되었든 모든 것이 평등하게 된 시대라고 마지막 말미에서 맺음말을 남기고 있기는 하지만 미안한 소리일지는 몰라도 이제는 모든 것이 평등하게 된 시대가 아니라 모든 것이 평등하다고 오해하는 시대가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오해조차 이제는 오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평등한 시대로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성공을 향해서 앞서나가던 레이몬드 배리가 어떻게 성공을 지속시키는지 그리고 관리할 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몰락으로 향하듯이, 지금 이 시대도 풍요를 이뤄낼 수 있기는 했지만 그 풍요를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고 안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레이몬드 배리가 그렇듯이 이 시대로 점차 몰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만 하는 것 같다.

물론, 스탠리 큐브릭처럼 그 과정을 그저 아름다움에 집착하며 바라보기는 힘들 것 같다. 슬프고 고통스럽기만 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