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중엽 일본, 중앙정부의 힘이 악화되자, 각 지방 영주들은 왕도인 쿄오토를 선점하고자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계속하게 된다. 이때 젊은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가장 강력했던 '타케다 신겐'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덴쇼(天正) 원년 1573년. 타케다 신겐(Shingen Takeda/Kagemusha: Tatsuya Nakadai 분)은 토쿠가와 이에야스(Ieyasu Tokugawa: Masayuki Yui 분)의 노다성을 포위하고 있던 중, 어느 날 밤 저격 당해 중상을 입는다. 신겐의 저격 소식은 토쿠가와 이에야스,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Nobunaga Oda: Ryu Daisuke 분), 에치고의 우네스기 겐신(Kenshin Uesugi: Eiichi Kanakubo 분) 등에게 전해지고 그들은 첩자를 보내 신겐의 생사를 염탐한다. 신겐이 죽으면 전국의 판도는 바뀌기 때문이다. 가히에 돌아온 신겐은 최후를 맞이한다. 죽음이 임박한 그는 타케다의 미래를 염려하여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내가 죽더라도 3년 동안 죽음을 비밀로 하고 영토를 굳건히 할 것이며 결코 가볍게 군사를 움직여선 안된다.' 죽음을 비밀로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동생인 노부카도(Nobukado Takeda: Tsutomu Yamazaki 분)는 신겐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카게무샤'를 사용한다. 당시 각 영주들은 전장에 나갈 때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가짜 영주를 데리고 나가는 위장 전술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그 가짜 무사를 카게무샤(그림자 무사)라고 하였다. 신겐의 카게무샤는 무식한 좀도둑이었지만 신겐의 소실들조차 그가 가짜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다 노부나가,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첩자들도 신겐이 건재하다고 보고한다. 카게는 신겐처럼 행동하고 때로는 타케다의 무사들을 격려하고 신겐의 손자인 카게마루(Takemaru: Kota Yui 분)를 사랑해준다. 그는 점차 인자한 영주로 변하여 백성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이를 보고 내심 초조한 것은 신겐의 아들 카쓰요리(Katsuyori Takeda: Kenichi Hagiwara 분)였다. 후계자임에도 실권을 갖지 못한 채 이름도 없는 카게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겐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신겐의 영토에 군사를 출정시킨다. 아들 카쓰요리에게는 아버지 신겐과 같은 통치력과 용병술이 없었으나 가신들의 도움으로 토쿠가와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카게는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도 동요되지 않는 의연한 모습으로 신겐의 존재를 확인시킨다. 덴쇼 2년(1574)이 끝나갈 무렵 카게에게 뜻밖의 사고가 발생한다. 신겐만이 다룰 수 있는 야생마 흑마에서 낙마하고, 카와나카지마의 전투에서 얻은 칼자국이 없는 것이 소실들에게 들통나 버린 것. 신겐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카쓰요리가 영주의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카게는 부랑자 신세로 돌아간다. 덴쇼 3년(1575) 봄, 카쓰요리는 노부나가, 이예야스 연합군과의 전투를 위해 군사 2만 5천명을 이끌고 나카시노로 향한다. 그러나 연합군은 총을 사용하는 새로운 전술로 무적을 자랑하던 타케다 기마대를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고, 용병술이 부족한 카쓰요리로 인해 타케다 군의 피해는 점점 늘어만 간다. 지옥과 같은 전쟁터에서 전멸해 가는 타케다 군대의 뒤를 따라 '풍임화산(風林火山)'의 깃발을 펄럭이며 돌격하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카게였다.”

형체를 잃은 세명의 그림자에 관한 시대극 / 비극인 구로자와 아키라의 ‘카게무샤’는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마땅한 제작자를 찾지 못해 원하지 않던 침묵의 시절을 뒤로하고 자신의 작품에 열광하던 이들에게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새롭게 창작력을 불태우던 후반기에 발표한 걸작이며, 이 작품 이후에 발표한 ‘란’과 함께 그의 침묵의 시절 이후에 발표한 작품들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그동안의 고생(몸 / 마음)에 대한 보답인지 이 작품을 통해서 그는 수많은 상들을 수상하게 되었고, 안정적인 지원 또한 받을 수 있게 되어 다음 작품 ‘란’을 통해서 그가 그동안 염원하던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기도 했는데, 그렇게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시기의 작품들치고는 작품 속에 담겨져 있는 통찰력과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은 비극적인 성향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일본의 전국시대와 역사에 대한 지식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 다케다 신겐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이 작품에서 다뤄지는 내용들과 실제가 얼마나 동일한지도 모르지만 구로자와 아키라는 여전히 시대극을 통해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비극적 상황과 함께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고 이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비극을 통한 수많은 생각들을 전달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형체를 잃은 세명의 그림자들이 어떻게 그림자로서 살아가는지와 이를 통해서 어떤 깨달음을 알 수 있는지를 전달하고 있다.

신겐과 신겐의 동생 그리고 앞으로 신겐의 그림자가 되는 도둑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기나긴 장면을 통해서 사람을 죽이고 돈을 훔치는 도둑과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영웅으로 칭송받는 신겐과의 대비를 다루며 그들의 밀접한 유사함과 그와 반대되는 깊은 차이를 얘기해주고 있으며, 방심으로 인해서 치명상을 입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신겐이 어떤 꿈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하지만 자신의 가문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며 신겐의 죽음을 보여준다.

신겐의 마지막 유언 / 명령에 따라 신겐의 부하들은 그가 죽었지만 죽지 않은 것으로 하기 위해서 처음 등장했던 도둑을 카게무샤(그림자 무사)가 되게 만들어 신겐이 여전히 존재하도록 하고, 이로 인해서 그들은 영지를 그리고 가문과 자신들의 삶을 지켜내게 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신겐의 적들과 그리고 사실을 모르는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구로자와 아키라는 이전에 다뤘었던 문제들을 다시금 다루고 있다. 그가 ‘라쇼몽’에서 각자의 입장에 따른 진술로 인해 하나의 사건이 얼마나 다양한 관점을 갖고 자기입장을 갖게 될 수 있는지를 다뤘듯이 ‘카게무샤’를 통해서 형체가 사라진 그림자가 어떻게 형체를 대신하여 존재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라쇼몽’이 진실의 다양성과 각기 다른 관점에 따라 얼마나 진실이 다른 방식으로 다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시각 / 언술(혹은 담론)에 관한 작품이었다면, ‘카게무샤’는 원본 없는 가상이 얼마나 원본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형체를 잃은 그림자가 형체를 대신하고 그림자를 넘어선 형체가 되기까지 이르지만 다시금 그림자가 되고 형체 없는 그림자였기 때문에 사라지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의미에서 애초부터 구로자와 아키라는 근대적인 감독(모던)이기 보다는 근대 이후 적인 감독(포스트 모던)일지도 모르겠지만 구로자와 아키라는 그것에 몰두하며 논의를 진행하기 보다는 그런 의문과 물음을 던지기만 할 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만 하고 있기만 하고, 영화적으로도 그 모호함을 증폭시키기 보다는 결국 하나의 진실(라쇼몽)을 알려주거나 그림자가 결국에는 형체를 대신할 수 없다는(카게무샤는 신겐만이 탈 수 있는 말에서 떨어지게 되어 그의 존재가 밝혀진다) 결론을 제시하기 때문에 구로자와 아키라의 시각은 그 둘 사이에(모던 / 포스트모던) 놓여져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평가일 것 같다.

이와 같은 철학적인 혹은 존재론적인 물음과 함께 앞에서 말했듯이 ‘카게무샤’에서는 그림자 셋의 엇갈리지만 동일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첫 번째 그림자였던 신겐의 동생은 처음에는 신겐의 그림자가 된다는 것에 부담스럽고 힘겨웠던 기억만을 갖고 있었지만 형체가 사라진 이후에야 그 그림자로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고, 그 그림자로서의 자신의 몫에 철저할 정도로 충실하려고 하는 엄격함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신겐에 (외적으로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도둑은 처음에는 신겐에게 반항을 하거나 그의 그림자가 된다는 부담감에 도망치려고 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책임감에 혹은 자신에게 향하는 기대감에 신겐의 그림자가 되기를 선택하고 특유의 순발력과 재치로 인해서 신겐의 진정한 그림자가 되고 어느 순간에는 그림자를 넘어서 형체의 모습까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도 결국 그림자이고 그로 인해서 그 또한 형체가 없음으로 인해 내쫓기게 된다. 하지만 그는 신겐의 동생과는 다르게 자신이 그림자라는 사실을 잊게 되어버리게 된 것처럼 혹은 그림자에서 어느덧 일부분이라도 형체를 갖게 된 것처럼 신겐으로서의 삶을 그리워하고 신겐이 갖고 있을 법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카게무샤가 아닌 신겐으로서의 삶에 여전히 자신을 머물고 있다. 그렇게 그는 신겐은 아니지만 신겐으로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그런 삶이 어쩌면 잘못된 운명일지도 모르고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을 넘어서는 행동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구로자와 아키라는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림자는 (그림자라고 볼 수 없지만) 신겐의 아들인데, 구로자와 아키라는 일종의 인정받고자 하는 그리고 뛰어넘고자 하는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시대극과 비극적 성격에 보다 풍부함을 담고 있고, 아들이 신겐에게 갖고 있는 불만과 함께 그가 그 불만과 인정에 대한 욕망 그리고 신겐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서 ‘산이 산이 아니게 되고, 산이 움직이게 되어’ 몰락하게 되는 파멸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고 작품의 비극적 성격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욕망을 그는 부담스럽지 않게 그리고 평범하지도 않게 담아내고 있고 이로 인해서 이 작품의 다양성은 보다 풍부해지고 있다. 하나의 결말이 담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은 이 작품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그리고 풍부한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작품의 다양성을 시대극 / 비극이라는 장르 속에서 담아내고 있고, 그 표현 방법에서는 표현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은 장면들을 곁들여서(하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구로자와 아키라는 항상 그렇듯이 동양 / 일본적인 성향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보다 예술적인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이를테면 도둑이 악몽을 꾸는 장면과 도둑이 신겐이 되어 전쟁에 참가하여 전장에서의 전투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색감을 통한 그리고 빛과 어둠, 표정 변화를 통하여 관객에게 작품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전달하는 장면들에서 이와 같은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안정감 있게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 구성과 그 속에 담고 있는 철학적인 시각 그리고 구로자와 아키라의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에 거대한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이 화면을 담아내고 있는 연출력 까지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야심이 얼마나 완전무결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일반적인 감독의 작품이라면 한두가지 부분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겠는데 경험할 것 다 경험하고 그동안 어떻게 작품을 완성시킬지 수없이 고심했기 때문인지 부족함 없이 그리고 모든 것들이 짜임새를 유지하며 작품은 완성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후기 작품 중 단연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게 되는 것 같고, 이후의 비극성을 더욱 강조하고 아예 비참함으로 끝맺은 ‘란’으로 향하는 교두보가 되는 것 같다.

엇비슷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카게무샤’가 시대극과 비극의 영역 속에서 고심하고 있는 작품이라면, ‘란’은 그 두가지 속에서 비참함을 더욱 강조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채워 넣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매우 다른 작품이 되어버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후기작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두 개의 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작품을 통해서 그의 인간에 대한 그리고 모든 것들에 대한 철저할 정도로의 허무한 시각을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비극적이고 어둡기만 한 시각에 큰 호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와 같은 작품에 호감을 갖게 될지는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