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극(詩劇)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공연후기 #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이번에 첫방문한 소극장이다.
대학로 연극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있지만
지도에 나온것에비해 그리 멀진 않다.
혜화역 4번출구로 나와서 도보로 5분~ 8분 사이면 도착.
지도를 보면 길도없는 위치에 목적지가 표시되는데
육.포차 라는 음식점이 보인다면 잘 찾아간거다.
티켓박스는 공연장 가는길에 잘보이게 설치되어있다.
한시간전부터 티켓팅을 하는데 빨리 도착해서 두번째로 티켓팅을 했다.
티켓팅을 했는데 아직 공연시간은 한시간 가까이 남아버렸다.
공연장 좌석은 개별의자가 준비되어 있어 옆사람과
부대낄일은 없다. 푹신하진 않았지만 나름 만족.
육.포차 라고 뭔가 하나 빠진듯한 이름인데 원래는 육.쌈 포차 였던것 같다. 아마도 체인점인 육쌈냉면에서 태클을 걸어서 바꾼거 아닐까? 실제로 영수증에는 육.쌈 포차라고 찍혀서 나오더라. 개인적으론 육쌈냉면보다 고기가 더 맛있었다. 냉면은 다 비슷한 맛이라서 구별을 못하겠고. 암튼, 최대한 천천히 먹으며 시간을 때운 후 공연장에 입장했다.
▲ 캐스팅 보드
무대는 매우 단조롭다. 특이하게 매달린 전구들과 의자 7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저 의자의 숫자만큼 배우들이 등장할것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공연이 예정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던가? 아마도 5분정도는 늦었던것 같다. 암전이 끝난 후 의자에 앉은 배우들이 보인다. 작업복인지 넝마인지 모를 옷을 입고있는 그들...
저마다 한마디씩 시작한다. 한명의 대사가 끝난 후 다른 배우의 대사가 이어지는것이 아닌, 돌림노래처럼 대사위에 대사가 겹쳐진다. 나중에는 무려 7명이 한번에 말을 하는데 굉장히 시끄럽고 야만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관객들에게 외친다. 자신의 이야기를 좀 들어봐 달라고...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한사람은 양팔이 없는 장애인이다.
양팔이 없는 불구자 말고도 그들은 모두 사회적 불구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 약자로서 당하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래, 눈으로 봐도 바로 몸이 불편해보이는 한명에게 초점을 맞춘다.
<공연中 사진출처: PLAY DB>
그는 양팔이 없다. 그는 오랫만에 어머니를 찾아간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도리어 팔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그에게 모진 소리를 하며 인생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그들은 늑대이다. 그리고 인간이기도 하다. 극을 보고있으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늑대에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어느 장면은 실제 늑대인지 인간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것은 아니다.
공연의 특성상 시(詩)적인 은유를 무대위에서 표현했을뿐 말하고자 하는것은 따로있다. 사회적 약자의 살아가는 모습. 자해공갈을 해서라도 생을 연명해야 하는 그들의 비참한 삶.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은 새 생명을 잉태하고 그렇게 전해진다.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 집안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실제로는 '나역시 그들과 다를게 무엇인가? 그저 입밖으로 표현하지 못할뿐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벗어나고 싶지만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삶. 그렇게 살아가는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것에 위안을 삼으며... 그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간다.
60분정도로 짧은 공연시간이었지만 많은것을 보여주고, 또한 많은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단순하게 생각하기엔 조금 어려운 연극이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독특한 연극. 항상 즐겁기만 한 로멘스코미디에 지쳤다면 한번쯤 권해보고 싶다.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라는 공연을 시극(詩劇)이라고 말한데는 이유가 있다. 시인 김경주의 동명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극이기 때문이다. 시인 김경주는 나이는 그리 많지않지만 특유의 분절된 문체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내가 시에는 문외한이라 공연을 본 후 찾아보게 되었지만 시(詩)를 극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참으로 묘하면서 매력적인 작품이었던것 같다. 작품을 이해하는데는 김경주의 시를 미리 접해보는것만큼 좋은것이 없는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 그의 시를 남겨본다.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 김경주
내 우주에 오면 위험하다 나는 네게 내 빵을 들켰다 기껏해야 생은 자기피를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한 겨울 얼어붙은 어미의 젖꼭지를 물고 늘어지며 눈동자에 살이 천천히 오르고 있는 늑대 엄마 왜 우리는 자꾸 이 생에서 희박해져가요 내가 태어날 때 나는 너를 핥아주었단다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싶어요 네 음모로 네가 죽을 수도 있는게 삶이란다 눈이 쏟아지면 앞발을 들어 인간의 방문을 수없이 두드리다가 아버지와 나는 같은 곳에 똥을 누게 되었단다 너와 누이들을 이곳에 물어다 나르는데 삼십년 동안 침을 흘렸단다 그 사이 아버지는 인간 곁에 가기 위해 발이 두 개나 잘려나갔다 엄마 내 우주는 끙끙 앓아요 매일 발자국 소리하나 내지 않고 그녀의 창문을 서성거려요 자기 이빨 부딪히는 소리에 잠이 깨는 짐승은 너뿐이 아니란다 얘야 네가 다 자라면 나는 네 곁에서 길을 잃고 싶구나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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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3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관람>
(작: 김경주/ 연출: 박정석)
